이교도 모진 박해, 굳은 신심으로 극복
차별없는 보시실천으로 ‘어머니’ 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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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운데 특히 멘다카는 재산도 재산이지만, 높은 인격과 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장자였다. 원래 푸라나 캇사파라는 외도를 섬기고 있었으나, 부처님께 귀의하여 열성적인 불교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다난자야(Dhanañjaya)라 불리는 아들이 있었고, 다난자야에게는 위사카라는 무남독녀가 있었다.
7세에 깨달음 첫단계 ‘예류과’ 증득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앙가국의 한 도시인 밧디야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멘다카는 사랑하는 손녀딸 위사카를 부처님께 소개하고자 마음먹었다. 멘다카는 위사카에게 말했다.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또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가서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청해 들어라.” 위사카는 500명의 시녀를 동반하고 부처님을 찾아가 예를 갖춘 후 한 쪽에 앉았다. 아직 7세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지만, 고고한 외모나 품위 있는 행동거지가 눈길을 사로잡는 위사카였다. 부처님은 그녀를 위해 법을 설하셨고, 아직 어리지만 총명했던 위사카는 그 자리에서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인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녀와 부처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가 성장해가던 어느 날, 일가가 코살라로 이주해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과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은 서로 여동생을 처로 삼는 등 친하게 교류하고 있었는데, 마가다의 거부 장자를 부러워한 파세나디왕이 그들 가운데 한 명을 자신의 영토로 이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거부 장자의 이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빔비사라왕은 거절의 뜻을 내비쳤지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파세나디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멘다카의 아들인 다난자야와 상의한 끝에 그의 일가가 옮겨 가기로 했다. 파세나디왕을 따라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티로 향하던 다난자야 일족은 도중에 비옥한 땅을 발견하자 왕의 허가를 얻어 그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이 마을은 사케타(Sāketa)라 불렸다.
한편, 사왓티에는 미가라(Migāra) 장자가 살고 있었다. 다난자야의 재산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사왓티에서는 유명한 장자였다. 그에게는 푼나밧다나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결혼 적령기임에도 결혼을 회피하며 속을 썩이고 있었다.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에게 그가 내건 조건은 5가지 요소를 갖춘 미인을 데려오라는 것, 즉, 아름다운 머리카락,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치아, 아름다운 피부, 그리고 젊음이었다.
고민 끝에 미가라 부부는 8명의 바라문에게 돈을 주고 그런 조건을 갖춘 여인을 찾아오라고 부탁했다. 인도 곳곳을 찾아 헤매던 바라문들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위사카였다. 인연이었던 것일까, 위사카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다난자야는 딸의 의견을 존중하여 미가라와 사돈을 맺는다. 그런데 미가라 장자가 아들 결혼식 축연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의 집 근처의 정사에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가라는 다른 종교의 나체 수행자들을 불러 공양하려 했다. 이 나체수행자들은 자이나교도 혹은 아지비카교도라고 한다. 미가라는 불교신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가라는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맛난 음식을 준비한 후 나체 수행자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위사카를 불렀다.
“위사카야, 이리 와서 아라한들에게 인사드려라.” 위사카는 그녀 자신 예류과에 도달한 불제자였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의미의 아라한이라는 말을 듣자 뛸 듯이 기뻐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공양을 받고 있는 자들은 나체 수행자들이었다. 그녀는 아연실색하여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은 아라한이 아닙니다”라며 자신의 처소로 가버렸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난 나체 수행자들은 미가라에게 당장 며느리를 쫓아내라고 부추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미가라는 큰 의자에 앉아 금으로 된 그릇에 담긴 달콤한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마침 그때 한 비구가 탁발하러 장자의 집으로 들어왔다. 미가라에게 부채질을 하며 곁에 서있던 위사카는 자신이 직접 먹을 것을 내주고 싶었지만, 나설 자리가 아니라 생각하며 시아버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미가라는 모른 척하며 계속 주스만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위사카는 비구에게 말했다.
“스님, 부디 다른 곳으로 가서 탁발해 주세요. 지금 저의 시아버님은 오래된 것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를 들은 미가라는 격노했다. 나체수행자들이 그녀를 쫓아내라고 했을 때 이를 만류했던 그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화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하인들에게 위사카를 끌어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위사카의 편이었던 하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위사카는 말했다.
“아버님, 이 정도의 일로 저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제가 무슨 하녀로 이 집에 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저의 아버님이 저를 시집보낼 때 8명의 상인을 함께 보내며 만약 딸에게 무슨 과실이 있다면 잘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분들을 불러 제 과실을 조사하도록 해 주세요.”
승단에 사원 보시…포교에 큰 기여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미가라는 8명의 상인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그들의 판단을 구했다. 사실여부를 묻는 그들에게 위사카는 대답했다.
“저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탁발승이 문 앞에 서있는데도 아버님은 달콤한 주스를 마시며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이 세상에서 보시하는 공덕은 쌓지 않고, 그저 과거에 행한 공덕으로 지금 달콤한 주스를 마시고 있구나. 말하자면 오래된 것을 마시고 있는 셈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여 말한 것입니다. 제가 잘못입니까?”
그녀의 대답을 들은 8명의 상인은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미가라에게 잘못은 없다고 했다. 미가라는 무언가 트집을 잡기 위해 계속 그녀를 비방했지만 결국 아무런 과실도 찾지 못했고, 8명의 장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 위사카를 쫓아내려 했다며 미가라를 질책했다. 친정으로 가겠다는 위사카를 만류하는 미가라에게 그녀는 말했다.
“아버님,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앙하는 집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저희들은 승가 없이는 생활할 수 없습니다. 만약 마음껏 승가를 돌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저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미가라는 대답했다. “알겠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가 존경하는 스님들을 돌보아라.”
어느 날 위사카는 부처님을 초대한 후, 시아버지에게 오시라는 전갈을 보냈다. 나체 수행자들의 방해로 미가라는 천막 밖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부처님의 목소리는 마치 각각의 한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듯 했다. 마치 달이 하늘 한 가운데로 왔을 때 모든 사람이 자기 위에 달이 있다고, 달이 자신을 비추고 있다고 여기듯이, 부처님은 그 누가 어디 있든 그 사람을 마주하고 법을 설하시는 것만 같았다. 천막 밖에서 듣고 있던 미가라의 귀에도 부처님의 설법은 도달했다. 그리고 그 역시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인 예류과를 얻고 부동의 신심을 갖추고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견고해졌다. 환희심을 일으킨 미가라는 며느리 위사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어머니이다.”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 위사카는 ‘미가라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미가라마타’라 불렸다고 한다. 미가라는 부처님 앞으로 다가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까지 보시의 공덕을 몰랐습니다. 며느리 덕분에 이제야 그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위사카가 우리 집에 들어온 덕분에 저는 여기 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미가라의 집은 불법으로 충만했고, 위사카도 더욱 더 보시 등의 선행에 힘썼다. 수닷타 장자가 우바새 가운데 보시제일이라면, 위사카는 우바이 가운데 보시제일이었다. 그녀는 부처님과 승가를 위해 보시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사왓티 동쪽 성 밖에 있던 풉바라마(Pubbārāma)에 세웠던 정사는 당시 수닷타가 사왓티 남서쪽에 세웠던 기원정사와 더불어 코살라국의 2대 교화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불심 깊은 집안에서 자라 7세에 할아버지인 멘다카의 권유로 부처님을 만난 그녀. 그녀의 신심이 허술한 것이었다면, 결혼 후 시아버지와의 갈등에 좌절하며 그 신심의 끈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보고 또 그 진리의 실천 속에서 다시 진리를 보았던 그녀는 불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부처님과의 만남을 권유하며 멘다카가 말했듯이 그녀와 부처님의 만남은 그녀뿐만이 아닌, 그녀 주위의 모든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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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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