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유명건축물

[창덕궁] 낙선재

淸潭 2009. 11. 20. 10:48

      




[창덕궁] 낙선재

< 2009. 11. 5. 목요일 >







헌종 13년(1847)에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집으로 낙선재 는 헌종의 사랑채와 침전으로,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처소, 수강재는 순원왕후의 처소였다.











고종황제도 이곳에서 지낸 바 있으며,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때 순종황제도 내전 대신 낙선재에 머물렀다.











마지막 황후인 순종효황후가 1966년까지 여기서 기거하다 숨졌으며, 덕혜옹주 역시 어려운 삶을 보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으며, 1989년 사망했다.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1897-1970)과 이방자 마지막 황태자비(1901-1989)가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낙선재의 솟을대문인 장락문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八作)기와지붕. 누마루가 깔려 있고, 모두 17칸 반의 규모이다.











장대석(長臺石) 위에 초석(礎石)을 놓고, 네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모기둥이며,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익공(翼工)을 끼웠다.











낙선재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이고 주련은 추사 김정희 스승인 옹방강이 쓴 글씨라고 한다.











헌종이 자신의 호로 사용했던 보소당(寶蘇당-소동파를 보배롭게 여기는 집) 현판



































누마루 아래에는 아궁이를 내기 위하여 단을 높였고, 아궁이의 벽에는 작은 돌을 불규칙적으로 붙여놓았다.























아궁이 옆의 방화벽으로 얼음조각 무늬를 넣어 화재를 예방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서행각



























































남행각











동쪽은 장수를 상징하는 귀갑무늬 담장이다. 문을 통과하면 석복헌과 수강재이다.



































왼쪽이 석복헌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정면이 수강재로 통하는 문이다.























석복헌은 후손의 생산을 위하여 맞아들인 경빈 김씨(慶嬪金氏)의 처소로 건립되었으며 낙선재가 사랑채에 해당한다면 석복헌은 안채인 셈이다.











'석복'(錫福)의 의미는 임금의 부인이 덕으로서 가정을 바르게 하면 하늘에서 복을 주어 군자의 효행을  길이 전해줄 왕세자가 탄생하게 되고 이는 백성들에게도 복을 주는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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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헌과 수강재 사이의 담장











수강재는 정조9년에 지어졌으며, 동궁의 영역으로 익종이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헌종 14년에 대왕대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를 위하여 중수되었다.











'수강'(壽康)의 의미는 백성들에게 복록을 내릴 왕모가 장수와 강녕을 누려 오래도록 백성들에게 장수와 강녕의 복을 베푼다는 뜻이다.



























































상량정(上凉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