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유럽여행

동유럽.발칸(5)아우슈비츠

淸潭 2009. 9. 28. 18:02

     동유럽.발칸(5)아우슈비츠/아우슈비츠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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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발칸(5)아우슈비츠/아우슈비츠 수용소


일  시: 2009.9.12.(비.흐림)
국  명: 폴란드 
코  스: 브로츠와프- 크라코프-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태인 수용소, 아우슈비츠 크라코프 서쪽으로 61km 떨어진 곳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히틀러의 악명이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워져 있다. 우리한테는 아우슈비츠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정확한 지명은 폴란드의 오슈비엥침(Oswiecim)이다. 나치는 오슈비엥침의 유태인 제1수용소가 수용인원이 넘치자 이곳에서 3km 떨어진 브제진카(독일식 표기는 비르케나우) 마을에 제1수용소의 10배 가량의 브제징카 제2 유태인수용소를 만들게 된다. 우리가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보게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은 브제징카 제2수용소를 형상화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되어 있고 약 150만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그 유명한 나치가 개발한 가스는 한 통으로 400명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제1수용소 건물들은 빨간 벽돌건물들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입구의 철문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기만적인 나치의 슬로건이 새겨져 있다. 브제징카(독일식 표기는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다. 아우슈비츠의 10배 규모이며 제2의 아우슈비츠이다. 이 곳의 입구는 '죽음의 문'이라고 불렸으며 열차 노선이 끝나는 부분에 '국제 위령비'가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 제1수용소 입구. 정문에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기만적인 문구가 적혀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3 제 2차 세계 대전에 생겨나 나치독일에 의해 약 5년간 150만명이 학살된 비극의 현장이자 '살인공장'이라고 불리우던 곳,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지가 되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5. 수감 병동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6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7. 붉은 벽돌 건물은 모두 28동이 있었는데, 수용인원의 거처와 작업장 등으로 쓰였고 지금은 일부만이 관광객을 위한 교육장으로 쓰고 있었다. 당시 지리적인 근접성으로 러시아군이 먼저 폴란드에 들어 왔을 때, 발견된 여자 머리카락이 3톤이었고 보통은 6~7톤씩 있었단다. 독일군은 이 머리카락으로 군용모포를 만들어 각 군부대에 보급했다고 한다. 전시실 각 방에는 이 머리카락말고도 고급 가죽신발, 살림도구, 안경, 옷가지 주소가 적힌 가방등등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었는데, 그 당시 유태인들이 얼마나 잘 살았는가를 알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분노가 일고 목이 메어 두번 갈곳은 못된다. 사진 촬영금지라서 그 참상의 자료들을 담진 못했다. 그 때 죽음의 가스실 앞에는 세척실이라고 쓰여 있었고, 입구에서 2인당 비누 한개씩을 나누워 주었다고 한다. 들어 가는 사람들이 씻으러 가는 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8. 나무로 만든 틀 속에는 종이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9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0 2세계대전 당시 수용소 담장에 쳐진 전기철조망과 망루. 많은 사람들의 원망과 통한의 눈초리가 보여지는 듯 하다. 수용소 내에서 죽은 전체 인원은, 유대인 150만명을 포함해 600만이라는 사람이 희생되었다. 유대인이 300만명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시설규모나 시간으로 보아 학자들 사이에서는 150만 명이라는 게 유력하단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1. 사형 교수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 단 한사람의 처형을 위해 가스실 옆에 만들어 놓은 교수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2.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부시설 중 가스실 및 시신소각장 전경. 원래는 폴란드군의 시신안치소였던 것을 독일군이 가스실과 시신화장소로 개조하였다. 오른쪽에는 가스실로 1회 400명의 질식사시킬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고, 쪽 앞 부분은 화로가 있어 시신을 세겹으로 쌓은 후 소각하였다고 한다. 양쪽 뚝은 가스가 새어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독일군이 흙을 덮었다고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3. 가스실 입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5 원래 아우슈비츠수용소는 이것 말고도 인근에 2개가 더 건설되었는데, 두번째로 건설된 것은 규모가 제일 커서 2,000명씩 들어가는 가스실이 4개로 15분이면 8,000명이 질식사하고 30분이면 전부 소각할 수 있는 규모의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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