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 59. 지혜로운 사람

淸潭 2009. 4. 8. 21:19

[천불만다라] 59. 지혜로운 사람
 
자신을 다스리면 세상이 변한다
기사등록일 [2009년 03월 30일 17:53 월요일]
 

지혜로운 이는 몸을 억제하고
말을 삼가고
마음을 억제한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잘 지키고 있다.
 - 『법구경』

이 게송은 ‘현자는 자기의 행동을 다스리고, 현자는 자기의 언어를 다스리고, 현자는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나니, 그는 완전히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야 말로 현자(賢者), 곧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가르침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자신을 폐망(廢亡)에 으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끝없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현자가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화엄경』에서 설하는 보살의 수행 차례 중마지막으로 닦는 열 단계인 십지품이 있다. 이 십지품의 제2단계는 이구지(離垢地)이다. 이구지의 의미는 모든 더러움을 다 여의고 맑고 깨끗해진 단계라는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처럼 맑고 깨끗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이구지에 머무는 보살이 자신을 맑고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십선도(十善道)를 수행해야 된다고 한다. 십선도란 곧 위의 게송에서 말하는 몸을 억제하는 데에 세 가지와 말을 삼가는 데에 네 가지,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세 가지의 수행을 말한다.

몸-말-마음 맑힘이 보살의 수행

몸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일 중에 다른 이의 생명을 죽이려는 일과 다른 사람의 노력을 착취하려는 훔치는 마음과 욕망에 찌들어서 살아가는 남녀 간의 애정이다. 남녀 간의 애정행위는 최우선으로 서로를 끝없이 경애(敬愛)하고 거룩한 생명을 잉태하는 맑은 마음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이 일을 잊어버리면 더러운 애욕만이 난무하고 세상이 어지럽게 된다. 생명이 함부로 잉태되고 그 결과 서로를 존중할 줄 모르는 세태가 되어버린다.

 다시 말하면 악업으로 태어난 인간에 의해서 고귀한 생명 질서가 파괴되고 서로를 죽이고 착취하는 일을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독한 말은 보이지 않는 화살이 되어 다른 이를 정신적으로 손상시킨다. 요즈음은 인터넷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거침없이 독기어린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나쁜 말은 보이지 않는 파장이 되어 우리의 주위를 나쁜 기운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욕설이나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은 어진 사람이 살기 어렵다. 어질고 착한 사람은 도태되어버리고 악한 사람들이 판을 친다면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극락은 최고로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다.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손해를 끼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천당이라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천당과 극락에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현재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찬 세상의 마음들을 상상해 보라.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미움만이 움틀거리는 마음들이 이 세상에 꽉 차 있다면 우리의 삶에 희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나쁜 마음의 주인공보다는 고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때로는 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남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어진 사람들이 아직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물질에 매달려서 가시적인 물질의 소유만으로 삶의 질을 논한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이미 마음 따위의 고귀함이라던가, 마음이 어진 사람 따위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이 더 나빠지기 전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는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계는 금덩이에서 금빛 찾는 길

 위에서 살펴온 것과 같이 우리가 다스려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내 몸으로 짓는 악행과 성냄을 먼저 다스리고 나의 이 몸으로 모든 선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나의 말로 짓는 악행과 성냄을 다스리고 선한 말로서 악한 말을 이기는 일이다. 나의 마음으로 짓는 악행과 성냄을 다스리고 마음으로 짓는 악업을 이김으로서 선업(善業)을 쌓는 마음이 비로소 세상에 충만하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면 세상의 악은 곧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을 『화엄경』 이구지에서는 지계(持戒)바라밀을 성취한 것이라고 한다. 지계바라밀을 성취한 사람은 마치 땅 속에 묻혀 있던 금덩어리가 단련을 통하여 모든 이물질을 다 떨쳐버리고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이 세상에 금빛이 고귀한 존재라면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모든 악행과 더러움을 떨쳐버리는 일이야말로 불순물을 떨쳐버리고 빛을 발하는 순금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금빛의 찬란함은 좋아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발산하는 고귀한 빛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현자(賢者)가 이미 아니다. 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적어질수록 세상은 암흑 속에서 서로 아귀다툼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열 가지 선업을 스스로 실천해서 천상세계를 바로 자신의 주위에 건설하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992호 [2009년 03월 30일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