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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비의 사원 `보로부드르`

淸潭 2008. 4. 19. 10:07

 

신비의 사원 보로부드르


 보로부두르(Borobudur) 불탑, 
 총 석조물의 무게 350만 톤, 
밑변 120m, 최대높이 42m 현재 지반 침하로35.3m까지 내려 옴.

어떤 사람은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불탑이야말로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말한다. 단 한기의 불탑이면서 불탑 자체가 하나의 사원인 보로부두르...평가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인도의 산치대탑, 캄보디아의 왕코르와트와 함께 보로부드르 불탑을 세계 3대 불탑으로 손꼽는데는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탑이 잠에서 깨어나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무려 천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만 했다.


 적도 바로 아래 동남아 열대의 바다에는 1만 3,7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동서 약 5,000km에 걸쳐 진주를 뿌려놓은 듯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는 250여 가지의 다른 언어, 풍습, 문화를 가진 300여 종족이 모여서 이룬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다. 

 많은 섬 중에서 자바 섬은 수도인 자카르타를 비롯하여 자바문화의 발상지인 족자카르타(Yogyakarta), 옛 왕조의 도읍이었던 솔로(Solo) 등이 위치한 인도네시아의 중심지다.
  보로부드르 사원은 족자카르타와 솔로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데, 족자카르타로부터는 약 42km 떨어져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인의 90%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지만, 8세기 경에는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전파되어 온 불교가 자바 섬에서 활짝 꽃을 피우며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그 전성기 시절 만들어진 것이 바로 보로부드르 불탑이다.

  보로부드르 사원은 약 1천년 동안 열대의 밀림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었지만, 1814년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 총독 라플르가 밀림 속에서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발견 당시 보로부드르는 사원이라기보다는 거의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막대한 예산과 자연재해 등으로 손을 쓰지 못하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1973년에야 아시아 유적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의지원을 받아 복구공사가 행해졌다.

 컴퓨터로 돌 하나 하나에 번호를 매겨 재조립하는 첨단방식을 채택했으며, 복구와 병행하여 유적 반경 300m 내에 있는 350호의 농가를 강제 철거하여 농민들과 지식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85년에는 사원 폭파의 위협 속에 일부가 실지 폭파의 해를 입었으나 곧 복구됐다. 우여곡절 끝에 보로부드르는 우리 눈앞에 1천년 전의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위대한 역사적 가치는 앙코르와트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네시아지만 불교사원인 보로부드르를 아끼는 마음은 각별하다. 전체가 하나의 고고학적인 유적으로 잘 관리되어서인지 인도네시아의 어느 다른 곳보다 여러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주위 환경도 깨끗이 정돈돼 있다.

1983년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면서 사원 주변에 게스트 하우스나 유스호스텔과 같은 숙박 시설과 비디오 상영관 등을 만들어 놓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보로부드르란 산스크리스트 어로 '언덕 위의 승방 (보로-승방, 부드르-높이 쌓아올린 곳)'이란 뜻이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변이 124m인 정방형이다. 안산암을 잘라낸 100만 개 이상의 돌벽돌을 사용하여 전체 9층, 높이 42m까지 내부의 공간 없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라갔다. 규모로만 본다면 세계 최대의 단일 불교탑이다.

  흔히들 앙코르와트를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으로 꼽는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여러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비해 보로부드르 사원은 피라미드처럼 단 하나의 대 석조물로 만들어진 석탑인 것이다.

 
  공간없이 쌓아올린 석조물의 무게는 무려 350만 톤에 달해 지반이 점점 침하하고 있어서 원래 42m였던 사원의 높이는 현재 35.3m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 350만 톤에 이르는 돌덩어리를 어디에서 운반하여 왔을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원을 중심으로 30km 이내에는 같은 재질의 돌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이다.

 사원을 이루는 회랑 벽에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새겨져 있고 부조는 모두 2,500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만 명에 달하며는 '거대한 조각의 숲'을 이루고 있다. 회랑의 부조 조각들은 불교 미술의 최고의 수준과 양을 자랑한다. 


 
기단에는 종모양으로 된 총 73개의 스투파들이 있는데, 스투파 속에 있는 불상의 약지에 손을 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이 기를 쓰며 팔을 뻗지만, 실제로 닿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거대한 사원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그 모습을 우리 눈앞에 드러냈지만 과거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건축하였는지. 그리고 어째서 1천년 동안이나 밀림에 파묻혀 있었는지 확실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이 그림은 보로부드르불탑이 단면도 입니다.
주의할 점: 이 그림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상하로 빠르게 움직일 경우,
마치 그림이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피라미드형 구조로 일체를 이루고 있는데, 최하부의 기단은 한 변이 약 120m에 달하고 높이는 31.5m(복원 전 원형은 42m)에 달한다.
 모두 10층으로 되어 있으며 등신대 크기의 불상 504개와 약 3.5m 높이의 불탑(stupa) 72개가 층별로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에 소요된 돌덩이만 해도 100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보로부두르 사원의 경이로움은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구조물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었고 고도의 상징적인 의미를 그 구조 안에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방형의 회랑으로 이루어진 1층에서 6층까지는 외부를 볼 수 없게 되어 있고, 대신 양쪽 벽에 쉽게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부조(浮彫, relief)를 새겨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그 부조들로 이끈다. 그것을 모두 순서대로 다 보려면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10회를 돌면서 6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위의 그림처럼 회랑이 요철(凹凸)모양으로 되어 있기에 총 길이는  무려 5km에 달한다고 한다.
  

 회랑은 제1∼4회랑으로 구성되고, 제4회랑에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스투파(종모양의 불탑)들이 서 있는 기단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7층에 올라서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산과 대지가 펼쳐지게 된다. 이 정신적 희열감은 바로 1층에서 6층까지 길고 긴 배움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확 트인 둥근 단으로 구성된 7층에서 10층까지는 이제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 된다


  이처럼 보로부두르 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신전이라기보다는 사원을 오르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서 지어졌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미국 태생의 인류학자 존 미크식(John Miksic)도 그의 책 <보로부두르의 미스터리(The Mysteries of Borobudur)>에서 보로부두르를 오르는 육체적 행위는 동시에 ‘세속’에서 ‘법열’로 이어지는 정신적 고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천 년의 잠은 깨어났지만, 아직도 신비는 풀리지 않고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단지 추측일 뿐이며, 보로부두르를 언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는 8세기 중엽에 들어선 불교 왕조 샤일렌드라(Sailendra) 시대에 약 70여년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9세기 중엽에 들어선 힌두 왕조 산자야(Sanjaya) 시대에 보로부두르 사원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1006년에 폭발한 인근 메라피 화산(Mt. Merapi)의 화산재에 묻힘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숨겼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어 확실한 것은 없다. 또 사원의 기초에 쓰인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흙의 성분이 같다는 점을 들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보로부드르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왕의 묘, 왕조의 사당, 승방, 우주를 상징하는 구조물 등 여러 가지 의견이 구구하지만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그러다가 약 천 년 후인 181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나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발굴된 많은 불상들의 머리를 절단하여 태국의 왕에게 선물로 주는 등 오히려 훼손을 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보로부두르 사원에 있는 불상들의 약 35%는 두상이 없다고 한다.


 1천년 전 밀림을 헤치며 대 토목 공사를 벌였던 샤일렌 왕조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자취를 찾는 이방인들만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사원의 원래 주인들은 불가사의와 신비 속으로 사라졌지만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긴 세월을 침묵으로 지켜왔던 인내는 그 보상을 받아 오늘날 보로부드르 사원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susy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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