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원담서실

덕숭총림 원담 대종사 원적

淸潭 2008. 3. 19. 15:58
덕숭총림 원담 대종사 원적
 
18일 오후 9시 수덕사 염화실에서
22일 원로회의장으로 영결식 엄수
기사등록일 [2008년 03월 18일 화요일]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 진성 대종사(조계종 원로의원)가 3월 18일 오후 9시 경 수덕사 염화실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랍 83세 법랍 76세.

원담 스님은 1926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32년 수덕사를 찾았다가 정진하는 스님들의 청정한 모습에 환희심을 느껴 부모를 졸라 33년에 출가한 이래, 오랜 세월 수행정진을 거쳐 덕숭총림에서 후학들을 제접하며 수행풍토 확산에 주력해왔다.

원담 스님은 어머니 꿈에 신승이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여 몽술(夢述)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화주하러 온 스님의 목탁과 염불 소리를 듣고서야 울음을 터트렸을 정도로 불연이 깊었다.

어려서 이모를 따라 수덕사를 찾아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환희심을 느껴 출가한 스님은 천장사와 전월사 등에서 만공 스님을 시봉하며 행자생활을 하다 33년 벽초 스님을 은사로, 만공 스님을 계사로 수계득도했다.

원담 스님은 일평생 수행에만 전념하여 농선도인(農禪道人)으로 불렸던 스승 벽초 스님의 가풍을 계승하여 현대시대에 맞는 ‘선농일여’의 새로운 가풍을 진작시키며 선지식으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스님은 만공 선사로부터 전법게를 받은 후 가행정진하다 1970년 수덕사 주지로 취임해 덕숭총림의 기반을 다자기 시작했으며 1983년 총림의 위의를 갖춰 덕숭총림을 열었다.

이후 스님은 ‘만공법어집’을 발간하며 덕숭총림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선풍을 계승하기 위한 수행에 힘써오다 혜암ㆍ벽초 스님에 이어 지난 1986년 덕숭총림 3대 방장에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총림의 정신적 지주로서 수행가풍을 널리 펴는 등 총림의 어른으로 역할을 다해왔다.

총림의 방장으로 주석하는 동안 수많은 수좌들을 제접하면서 1700 공안에만 매달릴 뿐 진정으로 공부한 수행자가 없음을 걱정하기도 했던 스님은 평소 “ ‘도인’이라는 헛 껍데기 이름에 만족하지 말고 진실한 수행자가 될 것”을 후학들에게 주문하며 옛 조사들로부터 이어져온 수행가풍을 이어갈 것을 당부해왔다.

원담 스님은 입적에 들기 전 문도들이 마지막 한 말씀을 청하자 '그 일은 언구에 있지 아니해, 내 가풍은 (주먹을 들어보이며)이것이로다!'하고 마지막 법을 편데 이어


來無一物來(올 때 한 물건도 없이 왔고) 

去無一物去(갈 때 한 물건도 없이 가는 것이로다.) 

去來本無事(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 

靑山草自靑(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름이로다.) 


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홀연히 입적에 들었다.

한편 원담 스님의 영결식은 3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수덕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 후 수덕사 연화대에서 다비장이 거행된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942호 [20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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