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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사도세자, 장인에게 보낸 편지 첫 공개

淸潭 2007. 6. 15. 11:07

비운의 사도세자, 장인에게 보낸 편지 첫 공개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 데다, 지금 또 더위를 먹은 가운데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긴장돼)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우울증을 씻어 내는 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1753년 또는 1754년 어느 날)

 

사도세자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아 장인 홍봉한(洪鳳漢)에게 보낸 편지들이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사도세자의 병세와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을 명확히 설명해 주는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권두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조선시대 영조 장조 정조 3대의 편지를 촬영한 흑백사진 자료 11첩을 발견해 ‘장조’인 사도세자의 편지 내용을 번역했다고 14일 밝혔다.

 

현재 남아 있는 사도세자의 편지는 거의 없으며 알려진 자료도 개인적 고백이 아닌 공식 문서가 대부분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1910년대 초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홍봉한의 5대손인 홍승두 집안의 원본을 거간꾼에게서 구입해 일본에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원본은 야마구치(山口)현립도서관에 보관돼 있고 도쿄대 동양사학과 다가와 고조(田川孝三) 교수가 이를 사진으로 촬영해 1965년부터 이 대학에 보관해 오다 퇴직 후 유품으로 남겼다.

 

 



 

권 교수는 “혜경궁 홍씨가 ‘친정에 있는 3대 임금의 필적과 서찰을 첩으로 만들어 후세에 전하라’고 밝혔다는 홍씨 가문의 글이 이 편지가 사도세자의 친필임을 보여 주는 명확한 증거”라고 전했다.

 

비운의 주인공인 사도세자는 1735년에 태어나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27세의 나이로 뒤주에 갇혀 죽었다. 아들 정조가 장헌(莊獻)이란 이름을 올렸고 1899년 고종 때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됐다.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조선왕실 여인의 회고록으로 유명한 ‘한중록’에서 남편의 비화를 소개했다.

 

○ 아버지 영조에 대한 불만

 

“내 나이 올해로 이미 15세의 봄을 넘긴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아직 한번도 숙종대왕의 능에 나아가 참배하지 못했습니다.”

 

사도세자가 만 14세인 1749년 어느 날 장인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나는 겨우 자고 먹을 뿐 미친 듯합니다” 탄식▼

 

 

권 교수는 “사도세자는 숙종대왕의 능에 참배하지 못하니 자신이 세자인지 자격지심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도 이 같은 내용이 전하지만 이 편지는 사도세자가 직접 고백하는 내용이므로 아버지와의 갈등을 더 정확히 보여 준다는 설명이다. 안대회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사도세자에 관해 아들 정조가 만든 문집은 있지만 개인 자료는 전하지 않는다”며 “이 편지가 사도세자의 친필이 맞는다면 역사의 모호한 부분을 해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도세자

 


경기 화성시 태안읍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 융릉.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기 화성시 태안읍에 있

“나는 한 가지 병이 깊어서 나을 기약이 없으니, 다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민망해할 따름입니다.”

 

1756년 2월 29일 21세의 사도세자는 장인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6년 전의 고백이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궁내에서 의관에게 자신의 병세를 하면 갈등을 빚고 있는 아버지 영조에게 전해질 것이 두려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사도세자가 자신의 병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역력히 나타난다.

 

“이번 알약을 복용한 지 이미 수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습니다.”(1754년 10월 또는 11월 모일로 추정)

 

특히 “나는 겨우 자고 먹을 뿐, 허황되고 미친 듯합니다”라는 내용은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네 번 정도 반복됐다.

 

○ 끊임없는 국정에 대한 관심

 

사도세자는 편지를 통해 병중에도 나라살림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나타냈다. 사도세자는 병을 앓을 때는 불안한 심리를 보이다가도 이성을 되찾을 때는 합리적으로 국정에 임할 것에 대비했음을 알 수 있다.

 

“(보내 주신) 지도를 자세히 펴 보니 팔도의 산하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고인이 말한 바 ‘서너 걸음 문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강남 수천리가 다하였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표할 길이 없어 삼가 표피 1영을 보내니 웃으며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1755년 11월 회일)

 

사도세자는 편지 여러 통을 장인에게 보내 국가의 제도와 규칙이 설명된 서적과 지도를 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권 교수는 15일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술발표회에서 번역 내용과 편지 고증 과정을 발표한 뒤 학자들과 자료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토론한다. 권 교수는 사도세자가 아내의 출산을 걱정하는 내용, 장모에게 바친 제문 등도 번역해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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