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의 향기, 나무
고규홍 글·사진, 들녘, 212쪽, 1만3000원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뜻하는 라틴어다. 지난해 한국에선 두 번째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의 사목 지침이다. '나무 칼럼니스트'인 지은이는 '옴니부스 옴니아'를 나무에서 발견한다. 자신의 모든 걸 아무 말 없이 내주는 나무는 그에게 거룩한 성자와 다름없다.
지은이는 지난 10여 년 '말 없는 성자'를 찾아 전국을 순례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떠돌았다"고 말한다. 소위, 나무에 미쳐 살았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면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그 '미침'의 결과를 책.방송.인터넷에 술술 풀어내고 있는 그가 이번에 '주제'를 특화했다. 정자.서원.향교.주막 등 옛집에 숨겨진 '노거수(老巨樹.크고 오래된 나무)' 23그루를 주목한 것. 나이.종류.생김새가 각기 다른 '노목'은 그에게 '거인'으로 다가왔다.
신간에는 나무와 세월,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진다. 깔끔한 문장, 다양한 정보가 맛깔스럽다. 나무라는 작은 프리즘으로 한국이란 큰 명제를 돌아보는 솜씨가 야무지다. 책상과 현학이 아닌 현장과 정직의 글이 우리들 감동시킨다. 대구 도동서원의 은행나무, 담양 소쇄원의 소나무, 화순 물염정의 벚나무, 예산 추사 고택의 백송, 안동 예안향교의 무궁화, 합천 소학당의 감나무, 봉화 청량정사의 고사목 등 어느 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잘났든 못났든, 웅장하든 왜소하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나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은 바로 우리 조상,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박정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