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손들어준 美 대법원…17개국 136만명 강제 추방 위기
[‘임시보호지위 종료’ 적법 판단]
“행정조치, 사법심사 대상 아니다”
이민국 강력단속 정책에 힘 실려
역풍 맞던 백악관 “엄청난 승리”
아이티 35만명 등 불법체류 전환
값싼 노동력 고용한 기업들 비상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가 재난 등을 이유로 자국에 임시로 머무는 체류자의 법적 지위를 종료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현지에서는 사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조치에 손을 들어줬다며 이번 판결이 136만 명이 넘는 임시 체류자 추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결정으로 이들을 고용한 병원이나 기업 등은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6대3 의견으로 아이티·시리아 이민자들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임시보호지위(TPS) 종료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TPS가 종료된 아이티 출신 총 약 34만 8200명, 시리아인 6100명의 지위가 즉시 불법 체류자로 전환돼 추방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판결의 여파로 미국 행정부로부터 TPS 지위 종료 조치를 받았거나 연내 종료될 예정인 총 17개국 출신 약 136만 2570명이 추방될 처지에 놓였다고 추산했다.
TPS는 이민자들이 무력 분쟁이나 자연재해 상태인 고국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미국이 1990년 마련한 제도다. 18개월간 미국 체류와 이후 갱신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법원이 행정부 조치의 내용은 물론 절차까지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앞으로 문제를 제기할 길이 막혀버렸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에도 베네수엘라인 약 35만 명에 대한 행정부의 TPS 종료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행정부의 TPS 종료가 사법부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추가했다. 담당 부처인 국토안보부가 사법 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TPS 종료를 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날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 외에도 미국 행정부가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망명 신청자들을 제3국에 돌려보내도 된다는 최종심 판결을 내렸다. 이 밖에 대법원은 23일 범죄를 저질렀다면 합법적 영주권자여도 국경에서 입국을 불허할 수 있다고 판시하는 등 줄줄이 이민 단속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통해 강력한 단속을 펼치면서 이에 반대하는 일명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ICE와 각 주(州)의 충돌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기조는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엄청난 승리”라며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이번 판결로 ICE 요원들은 TPS 지위가 종료된 모든 이들에 대해 추방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현지 언론들은 연방대법원이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보수 우위라는 점도 이번 TPS 종료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판결이 내려진 법정에서 반대 의견을 낭독했는데 다수 의견을 작성한 보수 성향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들과 조율 없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고 WP는 전했다.
이번 판결은 국가 재난이나 자연재해 같은 비상사태에 놓인 고국에서 안전을 찾아 미국으로 온 TPS 보유자들을 추방할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잔혹하고 비인간적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에서 TPS 자격으로 고용된 이들은 병원과 호스피스·건설사·소매점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NYT는 “이번 판결은 노인 요양시설에 종사하는 아이티인 수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련 업계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영리 노인 복지 서비스 제공자 협회인 ‘리딩에이지’의 케이티 스미스 슬로안 대표는 “(직원들이 추방돼) 생긴 빈자리가 채워질 때까지 입소를 제한하고 병동을 폐쇄하는 등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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