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한 검찰총장, 도열한 대검 간부들…그들이 화난 이유
"검찰개혁이라지만 검찰청 문 닫자는 것"…위기감도 작용한 듯
폭우가 쏟아진 2일 오후 이원석 검찰총장이 대검 간부들을 거느리고 갑작스럽게 기자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안 발의를 규탄하는 취지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30여분간 "근거없는 자가당착"이라며 열변을 토로했다.
이 총장은 이날 민주당이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한 직후 기자단에 기자회견을 요청했고 불과 1시간 뒤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지난해 11월 손준성 검사장과 이정섭 검사 탄핵안이 발의됐을 때에도 "저를 탄핵하시라"고 공개 반발한 바 있지만, 당시 퇴근길 도어스테핑 형식으로 입장을 낸 것과 달리 이번에는 기자회견 형식으로 한층 반발 수위를 높였다.
이 총장의 양옆에는 신자용 차장, 전무곤 기획조정부장, 양석조 반부패부장, 이진수 형사부장, 노만석 마약조직범죄부장, 김태은 공공수사부장, 정희도 공판송무부장, 허정 과학수사부장 등 대검 간부들이 도열했다.
검찰 조직이 국회의 검사 탄핵안 제출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일 대검 기자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검사 탄핵안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 총장은 입장문을 읽기에 앞서 약 40초간 침묵하며 착잡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총장은 "민주당의 검사 탄핵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이재명 대표라는 권력자를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해 수사와 재판을 못 하게 만들고 권력자의 형사처벌을 모면하겠다는 것"이라며 '위헌·위법·사법 방해·보복·방탄 탄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아마 다른 법치주의가 확립된 국가에서는 해외 토픽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점잖고 정제된 이 총장의 화법을 고려하면 발언의 수위가 상당히 셌다는 평가다.
이 총장은 민주당이 이날 탄핵안 제출을 추진하기로 하자 점심을 거르고 A4 두 장 분량의 입장문을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입장문 발표와 질의응답은 약 36분간 이어졌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이 총장이 이렇게 팔을 걷고 기자회견에 나선 데는 '민주당의 탄핵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탄핵 사유가 이전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은 데도 정치적 목적으로 탄핵이 추진됐고, 검사들에게 '권력자를 수사하면 이렇게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탄핵안이 발의된 검사 4명을 한명씩 거론하며 민주당이 제시한 탄핵 사유를 반박하기도 했다.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에 대해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회유 의혹은 일부 변호인 주장 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했고, 엄희준 부천지청장에 대해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9년이 지났다"고 지적했다.
김영철 북부지검 차장검사와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에 대해선 각각 "국정농단을 계기로 집권한 정당에서 (증거가) 조작됐다고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의혹 사건 수사가) 절차상 위법했다면 (구속영장 발부나 구속적부심 기각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이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데는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는 데 따른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장은 "검찰 개혁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검찰청 폐지법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면 검찰청 문 닫게 하자는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고 아예 문 닫게 하는 것은 사람의 몸뚱이에서 눈과 귀를 도려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탄핵에 대해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가능한지 여부를) 아직 살펴보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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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검사 탄핵 비판’ 총장에 검사들 “함께 하겠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수사 검사’ 탄핵소추안 발의를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위한 방탄 탄핵”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한 데 대해 검찰 내부 구성원들도 “함께 하겠다”며 뜻을 모으고 있다.
대검찰청은 전날 오후 이 총장의 발언 요지를 정리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게시했다. 이 게시글에는 이날 오전 11시까지 검사장급 간부들을 다수 포함해 60개 넘는 응원 댓글이 달렸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위 의혹'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 제출에 따른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박영진 전주지검장은 “무수한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부패 정치인 또는 그가 속한 정치세력이 검사를 탄핵한다는 건 도둑이 경찰 때잡겠다는 것”이라면서 “입법독재를 넘어선 입법 폭력이다. 사리분별력 잃은 정치권력이 폭력 행사한다면 이상동기범죄와 같이 그 피해는 누구에게나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정유미 창원지검장은 “몇 년 새 광기 어린 일부 인간들의 무도함이 빠른 속도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면서 “과연 그들은 훗날 역사 앞에 이 죄를 어떻게 씻으려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박세현 서울동부지검장은 “이런 비정상적이고 무책임한 시도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면서 “법치주의를 지키고 범죄에는 반드시 처벌이 따르도록 우리 본연의 할 일을 흔들림 없이 더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박영빈 청주지검장은 “정략적 목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탄핵을 남발하고, 더욱이 특정 사건의 수사 검사들을 표적으로 해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이리 가벼이 탄핵을 한다고 하니 검사로서 참담할 뿐”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김건희 여사 전담수사팀’에 소속된 김경목 부부장 검사는 “검사는 사건을 고를 수 없다. 어떤 검사에게 이런 일이 닥칠 지 알 수 없다”라면서 “검사 모두의 일이다.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수사·재판 담당 검사도 반발
댓글을 단 검사 중에는 이 전 대표 관련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는 검찰청 간부들도 있었다. 이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등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는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우리나라의 법치가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몰랐다”면서 “삼권분립이 명확히 규정된 대한민국 헌법 하에 입법부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반드시 바로잡혀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의 불법 대북 송금 의혹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는 김유철 수원지검장은 “위헌·위법·사법방해·보복·방탄…총장께서 명징하게 밝혀주신 이 야만적 사태의 본질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안병수 수원지검 2차장도 “물극필반(物極必反·모든 사물은 극에 달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이라면서 “저희는 그때까지 묵묵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검사 회의 개최해 논의해야” 제안도
검사들이 국회의 탄핵소추에 맞서 집단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박철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내부통신망에서 부당하게 탄핵을 당한 검사님들을 응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전국 청별로 검사 회의를 개최해 논의를 하고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정희도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도 “불법적인 탄핵 발의를 당해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응원을 넘어 실질적 도움을 드려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이 총장은 이를 “방탄 탄핵이자, 위헌 탄핵이며, 위법 탄핵, 사법방해 탄핵, 보복 탄핵”이라며 5가지로 정리해 비판했다. 이 총장은 “검사를 탄핵한다고 해도 있는 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며 “검찰은 국회 절대 다수당의 외압에 절대 굴하지 않고,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김웅 전 의원 "검사 탄핵 좋아하는 민주당에 이성윤·박은정·양부남 제보"
부장검사 출신 김웅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이재명 대표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과 한명숙 총리 사건 등을 수사한 검사 4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2일 검사 출신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을 탄핵하라고 민주당에 제보하는 글을 게시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오후 '검사 탄핵 좋아하는, 민주당에 드리는 제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반드시 탄핵을 하고 쫓아내야 할 전 검사들에 대한 제보임"이라고 썼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윤동주 기자 doso7@그는 먼저 "유부녀와 놀아났다는 진정서가 민원실에 접수되었는데 이를 폐기시켰다는 의혹이 있는 자, 최강욱 기소를 막고 변협회장으로부터 '특정 정치, 정치 편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자,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막은 의혹이 있는 자"라고 적었다.
글의 내용에 비춰볼 때 문재인 정부 검찰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성윤 민주당 의원을 저격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들의 수사와 관련해 수사팀과 여러 차례 마찰을 빚으며 대표적인 '친정부' 성향의 검사로 불렸다.
김 전 의원은 또 "수십억 원의 전관예우를 누리는 배우자를 두고 있는 자, 2022년 7월 중순부터 2024년 3월 초까지 단 한 차례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1억 원 이상의 월급을 받은 자, 권력자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수사를 막다 부하검사를 사퇴하게 한 자, 그러면서 기록을 볼 능력이 안 돼 ‘기록 파악이 안 됐다’라는 변명이 사실일 수 있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로 무능력한 자, 감찰 자료를 불법유출하고 조작한 자"라고 적었다.
위 게시글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수사를 놓고 갈등을 빚다 박하영 당시 차장검사를 사퇴하게 만들고, 추미애 전 장관 시절 윤 대통령 감찰 자료를 불법 유출한 혐의로 해임 징계를 받은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에 대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으로 퇴임 직후 1조1900억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을 맡아 22억원의 수임료를 받는 등 사실이 알려지며 고액 수임,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 후보 시절 '전관예우가 있었다면 160억원은 벌었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또 "쿠데타 주역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기 위해 유권해석을 왜곡하라고 몇 달간 부하검사를 조지면서 옷을 벗기려고 한 자, 도박장 수사를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의혹이 있는 자, 정권에 밉보인 검찰총장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수사권을 남용하고 언플하던 자"라고 쓴 뒤 "찾기 쉬울 겁니다, 바로 옆에 있으니"라고 적었다.
이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변호인 출신으로 2008년 법무부 법무심의관으로 근무했던 이건태 민주당 의원과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 단장 시절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부당하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렸던 양부남 민주당 의원과 관련된 내용으로 짐작된다. 양 의원이 문 전 총장과 이견을 보이며 대립하다 재판에 넘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전 의원은 2019~2020년 JTBC가 방영한 드라마 '검사내전'의 원작인 같은 이름의 에세이 '검사내전'의 저자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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