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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런 사람이었어요?” 암 진단 뒤 딸에게 온 ‘현타’카드

淸潭 2024. 6. 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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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저는 제 딸이 시집가는 것은 보고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잘 치료해 주세요.” 그러면 옆에 있는 따님은 쿨하게 대답한다. “아니요. 결혼 생각 없어요. 우리 엄마 말 무시하세요. 엄마, 또 시작이다. 주책스럽게….” 정말 결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따님이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아시나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내가 키웠고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서 봐왔기에, 부모들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딸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방귀 소리만 들어도 어제 저녁에 무얼 먹었는지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이 들며 변해 가는 딸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마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며, 최소한의 노력과 대화마저 안 하게 된다.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딸아이와는 그렇게 멀어진다. 어른이 되어 심리적으로 엄마로부터 독립한 딸이 남처럼 느껴진다. 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진 셔터스톡

이런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었는지 처음 알았어요.” 따님은 암을 진단받은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보며 놀랐다고 했다. 환자는 임상시험 신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신약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기다리는 동안 암이 커질까 봐 따님과 나는 불안했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평온했다. “저는 별로 불안하지 않아요. 다 내려놨어요. 치료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알아서 잘해 주실 거고, 좋은 결과가 있을지는 하늘에 달린 거고, 저는 그저 저에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거예요. 설령 안 좋은 결과가 있더라도 할 수 없는 거죠. 어떻게 다 제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겠어요.”

따님 말로는 아버지가 원래 성취욕이 많고 아등바등 살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조바심 많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암에 걸린 후의 아버지 모습은 따님이 알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따님은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보면서 소위 심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고 한다. 아… 나는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도대체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후로 따님은 병원에 함께 오면서 아버지를 유심히 살피고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해 알아 나가기 시작했다. 모른다고 생각하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 셔터스톡

환자의 의식이 없어지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환자가 의식이 없어진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어떻게 할지를 정하기 위해 보호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종종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기를 원하셨을까요?”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내가 관찰해온 바로는 오히려 가까운 가족이라고 주장할수록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할수록 상대방을 몰랐다. 오히려 가족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답한 가족일수록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환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놀라곤 했다.

이런 말을 하는 보호자도 많다. “저희 어머니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것을 모르고 계세요. 아시게 되면 실망하실 테니 안 좋은 이야기는 저한테만 해주세요.” 이런 경우도 보호자가 없을 때 환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백이면 백, 본인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미 환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보호자 말과 달리 나쁜 소식에 별로 실망하지도 않았다. 실망하는 것은 보호자들이었고,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도 보호자들이었다. 오히려 환자들은 자녀들이 너무 여리고 예민해 선생님께 자주 물어볼 텐데 이해해 달라는 말도 했다. 참으로 묘했다. 알수록 모르고 모를수록 안다.

나도 그랬다. 교수 발령을 받고 처음 몇 년간은 환자들이 물어보는 질문 중 모르는 것이 있어도 ‘제가 잘 모르겠네요’ 이 말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모른다고 하면 보호자가 나를 무시할 것만 같았고, 실력 없는 의사라고 나를 비난할 것처럼 느꼈다. 명색이 서울대병원 교수인데 모른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잘 몰라도 마치 아는 것처럼 아는 척을 했다. 괴로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알고 모르고의 경계가 명확해졌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모르는 것이 명확해지니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를 알게 됐고 연구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도 환자분께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면서 ‘아… 이거를 연구해야겠구나…’라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확실히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다. 잘 안다고 생각할수록 모르게 되고 반대로 모른다고 생각할수록 잘 알게 된다. 그래서일까? 암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삶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모르기에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숭산 스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오직 모를 뿐. Only don’t know. 이 마음을 계속 간직하세요.

에디터

  • 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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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암병원 교수

    think@joongang.co.kr
    항암치료를 하며 시간을 버는 종양내과 전문의. 의미 있는 삶이 연장되도록 암 환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의사이자 교수, 연구자, 임상시험전문가, 그리고 글쓰는 사람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