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검'에서..문 대통령 겨누는 '검'으로
심진용 기자 입력 2021. 11. 05. 15:09 수정 2021. 11. 05. 16:49 댓글 1703개
윤석열은 누구
9수 끝에 합격…‘특수통’으로 승승장구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 수사 지휘
‘파격적 인사’로 검찰총장 임명됐지만
조국 수사 본격화하면서 정권에 반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후 후보 점퍼를 입고 두 팔을 들어올리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61)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한 반전의 연속이었다.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길 바란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한게 불과 2년3개월 전이다. 당시만 해도 윤 전 총장이 ‘반문(재인) 연대’의 상징으로 부상하며 야당 후보로 대선에 등장할 것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 전반이 반전의 연속이었다.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강골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알렸지만 항명 파동으로 좌천됐고, 박근혜 전 정권의 몰락과 함께 ‘적폐청산의 기수’로 비상했지만 다시 현 정권과 충돌하며 검찰총장직을 던졌다. 그리고 사퇴 8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제1야당 후보로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신림동 신선’ 사시 9수생 윤석열
윤 전 총장은 1960년 12월18일, 서울 연희동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다. 대광초와 중랑중, 충암고를 나와 서울 법대에 진학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 셈이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충남 논산과 공주 출신이라 충청 출신 인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서울 법대 시절 그는 ‘신선 같은 고시생’이었다.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서 번번히 낙방했다.윤 전 총장을 아는 이들은 워낙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친구들과 족발집 가서 소주 한 잔 할 생각에 마지막 형사소송법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오면서 0.04점 모자란 과락으로 불합격하고, 2차 시험 사흘전 서울에서 대구까지 친구 함을 지러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학 2학년이던 1980년 학내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991년 ‘9수’ 끝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 찍은 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인스타그램
■강골 특수통
윤 전 총장은 31세 되던 1991년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그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6), 강용석 전 의원(52) 등이 연수원 동기다. 박범계 현 법무부장관(58)도 윤 전 총장과 연수원 생활을 같이 했다.
윤 전 총장은 1994년 대구지검 형사1부에서 초임검사를 했다. 당시 부장검사가 윤 전 총장 결혼 때 주례를 했던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윤 전 총장의 정치 입문부터 지금까지 물밑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검사 시작은 늦었지만 수사 능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대구지검 이후 서울·부산지검을 거쳐 광주지검과 의정부지검 등에서 근무했다. 대검 검찰연구관, 대검 중수 2과장, 대검 중수 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특수통’으로 인정받았다. 1999년 경찰 치안감 뇌물수수 사건, 2003년 불법대선자금 사건,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 2007년 변양균·신정아 사건, 부산저축은행 사건, 2008년 BBK 주가조작 사건 등 수사를 주도했다. 2001년 돌연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1년 만에 검사로 복귀했다.
■좌천과 부활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그의 검사 인생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특별수사팀장을 맡았지만 국정원 직원 체포 강행으로 항명 논란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수사팀에서 전격 배제됐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이 그해 10월 국정감사 현장에서 나왔다.
2016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답변을 위해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뒤를 걸어나오고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여기서 나왔고, 윤 전 총장은 이후 한직을 떠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한직을 떠돌던 윤 전 총장은 2016년 국정농단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임명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정권이 바뀐 이듬해에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을 위해, 청와대는 고검 검사이던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켰고, 서울중앙지검장 직급을 고검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내렸다. 전례 없던 파격 인사였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은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횡령·배임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민간인 댓글부대 사건, 세월호 유가족 사찰 사건 등에 대한 수사도 이어졌다.
■문재인의 검찰총장에서 ‘반문연대’ 구심점으로
2019년 또 한차례 파격 인사가 단행된다. 청와대는 직전 문무일 검찰총장보다 5기수 아래인 그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한다. 그해 7월 문 대통령은 임명식에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그를 부르며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끝까지 지켜주시라”고 당부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검찰총장 임명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환담을 하러 문 대통령과 함께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윤 전 총장은 정권과 불화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조국 일가 사건이 불거지면서다. 조국 전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정권과의 마찰 또한 심화했다. ‘검찰주의자 윤석열’이 정권의 검찰개혁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비난이 여당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조 전 장관이 임명 2개월 만에 사퇴하고 후임으로 추미애 장관이 임명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2020년 11월 추 장관이 검찰총장 징계청구와 직무정지명령을 내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야당 대선 후보 윤석열’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2021년 3월4일 그는 전격사퇴한다. 이후 석달 간의 잠행이 이어졌지만,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검찰총장 사퇴 사흘 만에 그는 차기 대선 지지율 1위에 오르며 파괴력을 보였다. 그는 6월 정치 선언으로 대선 도전을 공식화했고, 11월5일 끝내 제1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내년 3월 대선까지 남은 4개월. 윤 전 총장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반문연대’ 구심점으로 정권교체의 대표주자로 떠오르면서 단숨에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정치 입문 이후로 경험치의 부족을 적잖게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경쟁자들이 제기했듯, 검증되지 않은 그의 국정수행능력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른다. 잇따른 실언과 구설로 인한 ‘윤석열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중대과제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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