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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은 환상 아니에요, 죽음 뒤에도 패자부활전 있죠"

淸潭 2021. 9. 11. 16:27

"환생은 환상 아니에요, 죽음 뒤에도 패자부활전 있죠"

한겨레 입력 2021. 09. 11. 15:46 댓글 0

 

14년째 죽음학 연구·강의한 내과 의사
"초반엔 긴가민가했으나 이젠 윤회 믿어"

[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

죽음학 정현채 명예교수

정현채 교수는 2007년 죽음학 강의를 시작해 605회를 넘겼다. 그는 “환생은 환상이 아니고, 죽음 뒤에도 패자부활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당신은 언제 그 생각을 해야 할지, 지금 하는 게 나을지 잘 모른다. 아주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고, 이상하고, 압도적이고, 놀라울 만큼 중요한 것. 악몽처럼 회의적인 것. 이 모든 것의 가장 나쁜 혼합. 바로 죽음에 대해서다.

유물론과 실증적 접근, 환원주의의 세상에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우리가 배운 바 없는 죽음 이면을 들춘다. 죽음이 끝인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정현채 교수가 2007년부터 시작한 죽음학 강의는 주류의 사상도 아닌데 벌써 605회를 넘겼다. 그가 피자 조각처럼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잘라 넣어주는 이야기는 죽음이란, 인생을 잔인하게 쥐어짠 요약에 불과하다는 마음을 차분히 비틀고 있었다.

죽음학의 마스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의 저자. 때로 혹세무민하는 ‘요승’이라는 유머 악플의 대상. 그는 죽음의 황금빛 실마리를 쥐고 있을까? 아니면 목적에 활용할 수 있다면 기꺼이 확증편향 편에 서는 위선자일까?

제주 중산간, 해발고도 230m, 해안에서 15㎞ 거리의 조천읍에서 그를 만났다. 나무들이 보초병처럼 에워싼 뾰족지붕 집은 근대건축처럼 검박해 보였다.

“나무를 130그루 심었어요. 묘목도 50그루 심었어요 퇴직 때 받은 금반지까지 홀라당 팔아 나무를 샀는데, 큰 나무를 심은 것은 제 삶의 종착역이 얼마 안 남았을지 몰라서. 작은 나무 묘목은, 크는 거 보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니까요.”

“공수래공수거란 말은 절반만 정답이죠…이 생의 것을 다음 생에 갖고 오거든요”

기독교 국가에서 환생 더 연구

이름난 소화기 내과 의사의 면류관을 벗고 연고 없는 제주에 내려온 지 5년째. 아내가 죽기 전 나무 집을 짓고 싶어 한데다, 암 수술 받은 대학 동창이 작파하고 내려와 구좌읍에 게스트하우스를 연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의사는 40년간 일했으니까 그때가 그립지는 않아요. 이제 할 만치 다 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늦여름의 비가 뽀얗게 뿌리는 오후, 실내에는 복숭아나무와 녹나무 냄새가 어른거렸다.

“죽음학 강의 초반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현상, 근사 체험(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이 체외 이탈을 해서 공중에 뜬 채 자기 육신을 바라보다 터널을 통과해 빛의 존재를 만나 전 생애를 회고한다는)이나 삶의 종말 체험을 다루는 게 겁나기도 했고, 윤회는 긴가민가하는 정도였는데 이젠 전혀 아니죠. 제가 얘기하는 윤회는 어떤 교리가 아니고, 실제 서구의 연구에 근거를 둔 거죠.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인지과학연구소에 제일 자료가 많아요. 그걸 이끌었던 이언 스티븐슨은 2007년인가 돌아가셨는데,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조사했어요. 통역관 데리고 범죄 사건 수사하듯 모은 케이스가 2400건 정도 돼요. 환생 개념은 인도나 미얀마가 일반적인데 제임스 라이닝어(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중 가장 잘 알려졌다) 사례처럼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 영국에서 점점 많아졌죠. 요새는 3000케이스 이상 될 거예요.” 이언 스티븐슨은 아이의 전생 기억 무대인 마을과 부모를 찾아 면밀하게 교차 검증한 끝에 그 자신도 환생을 확신하게 되었다.

“전생 기억은 대부분 사라지죠. 일부 성인이 되면서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해요. <예스터데이 칠드런>(Yesterday’s Children)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1953년생 여자 주인공이 어릴 때 가본 적 없는 아일랜드 거리하고 교회, 가족을 그렸어요. 다 잊었다가 아들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대요.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아일랜드에 가서 성당 세례자 명단도 들여다보고, 천신만고 끝에 자기가 1932년에 애들 다섯을 두고 세상을 떠난 메리 서턴이었다는 걸 알게 돼요. 21년 만에 다시 태어난 거죠. 놀랍게도 그사이 노인이 된 자녀 다섯을 만나요. 인터넷에 사진 다 나옵니다. 재회 장면도 나오고.”

그의 이야기가 주는 직선적인 흥미로움. 그러나 이성은 낯선 데이터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발달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21년 만의 환생이라니, 어쩐지 주기가 짧게 느껴진다. 600년 뒤쯤이라면 모를까.

“모르죠, 왜 그런지는. 헬렌 웜백이라는 집단 최면 심리학자가 700명 넘는 사람들 통계를 내봤는데 환생 주기가 짧게는 4개월, 길게는 200년, 평균 50년이라는 계산이 나왔다는 거죠.”

정현채 명예교수가 인간의 자존감과 발전을 상징하는 애벌레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전생의 트라우마 앓는 사람들

윤회란 교화 목적으로 발명된 불교식 방편 같은데, 가려진 비밀이 공식적인 지식처럼 발음되는 순간의 어색한 감각, 어떤 전지적인 상태가 주는 불안함. 혹시 잠복된 기억이 문득 촉발되는 건 아닐까? 데자뷔의 오해? 또는 뒤틀린 거짓에 속박된 환영? 그런데 그의 근거는 방대한 자료와 각기 다른 경험들이 갖는 일관성이었다. 허구란 수집할 수 없는 데이터로 하는 실험이니까. 하긴 성경도 다수의 증언을 혼합한 뒤 부동의 필독서가 되었다.

“왜 아이들 중 일부만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심장이 멎었다 살아난 사람의 15퍼센트 정도만 근사 체험을 하는데 왜 누구는 하고 누구는 못 하는지. 그런데 꿈이 대답이 되지 않을까. 어떤 날은 꿈이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어떤 날은 전부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꿈은 달구어진 주전자에서 또르르 흘러내리는 물방울 같은 것. 응고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수증기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는 이어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문제가 어떻게 전생과 결부되는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옆구리가 너무 아픈데 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최면으로 전생을 봤더니 1차대전 때 창에 찔려 죽은 프랑스 병사였다거나, 두통 때문에 병원에서 엠아르아이(MRI), 시티(CT) 찍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전생에서 1800년대 호텔에서 권총 자살을 했던 미국 검사라거나 하는 사례가 있어요. 그걸 아는 순간 통증이 해결된다는 거죠.”

지금의 상흔이 전생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되었거나 카르마 이론이 그렇게 또렷한 인과관계로 드러나는 거라면, 프로이트야말로 완전히 헛짚은 것 아닌가?

모든 사람과 모든 짐승, 심지어 풍경까지 죽는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리란 걸 알면서도 다들 자기만은 안 죽을 것 같은 얼굴들뿐. 그러나 지금 살아 있다는 것 또한 정말로 죽는다는 의미 아닌가. 죽음의 실질적인 공포는 모든 기억이 소멸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몸이 나인 줄 알았던 동일시와 비동일시, 그 틈새를 잇던 의식이 비워지고, 자국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히는 절대 공(空)의 상태.

“육신이 보고 들었던 체험과 기억, 그걸 받쳐주던 모든 게 일시에 사라진다는 생각이 제일 두려운 거죠. 사형선고 받은 소크라테스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흥분으로 가슴이 떨린다고. 친구들이 국외 탈출을 권유했지만 거부하고 독배를 마시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어떤 파도가 이제 곧 없어져서 슬프다고 하니까 옆에 있는 파도가 그게 아니고 이제 바다가 되는 거란다, 하면서 위로하는 장면이 있어요. 즉, 우리가 죽어도 그 특성과 개성이 유지된다고 보는 거죠.”

죽은 뒤에도 모든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정보는 우주 어디에 저장될까? 기억이 남는다 해도 그게 나일 수 있을까? 그래서 우주가 홀로그램이라는 학설이 나온 걸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임종 연구 개척자) 박사의 강연에서 나온 얘기인데, 어떤 남자가 미국 독립기념일에 가족을 기다리는데 가족들이 타고 오던 차가 유조차하고 부딪혀서 다 죽은 거예요. 이 남자는 삶의 밑바닥에서 술과 마약을 하다가 고속도로에 뛰어들어 트럭과 부딪히는 순간 근사 체험을 했는데, 가족들이 우린 여기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는 끝까지 살아야 한다고 얘기했다는 거죠. 영적인 차원으로는 자살한 영혼조차 어서 치유하고 다시 건강하게 태어나라는 영적인 체계가 존재해요. 교회에서는 그렇게 얘기 안 하죠. 영원한 지옥불에 빠진다니까. 저는 자살자 유가족한테 패자부활전이 있다는 걸 많이 강조했어요. 죽음 뒤에도 패자부활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심되는 정보겠어요?”

‘영원불멸’ 수용한 과학자들

그의 강의에는 근사 체험이 빠지지 않는다. 근사 체험을 한 사람들의 특이성은 공통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산다는 것인데, 강의나 책을 통한 간접 경험만으로도 그들을 닮아간다는 이유였다. “근사 체험은 사랑과 친절을 퍼뜨리는 바이러스 같다는 거죠.”

우리가 삶의 끝까지 놓고 싶지 않은 것은 정말이지 내세의 희망과 사랑의 영원성일까? 긴박한 듯 부드럽게 흐르는 연유(煉乳) 같은 어조, 변화 없는 표정이 감춘 장난기, 일본 미중년 풍의 고딕적인 얼굴, 그리고 휘파람 부는 소년 같은 허심탄회함. 그건 필시 개연성 95퍼센트가 넘지 않으면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과학의 언어였다.

“2014년 2월에 300명 넘는 과학자들이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 모여 18개 조항을 선언했어요. 과학은 어떤 도그마가 아니고 관찰되는 현상을 포용하고 새 이론을 만드는 거니까 물질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거죠. 1년 반 뒤 같은 장소에서 의식의 비국지성, 의식은 뇌라는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육체가 죽은 후에도 존속된다고 발표했어요. 우리가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말기 환자가 임종을 평화롭게 맞는 데 적용하자는 획기적인 목적이었죠. 인상 깊었던 건 ‘영원불멸의 의식’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 뒤에 가게 될 여행’이라는 말이었어요. 의학은 근거 중심 분야이고, ‘영원불멸’이나 ‘여행’은 과학에선 안 쓰는 말이거든요.”

사춘기 때 그의 별명은 벙어리였다. 말이 없고 노는 것엔 젬병인 채 공부만 파던 고등학생 땐 스스로 하잘것없는 존재라는 자의식 때문에 한강에도 갔었다. 그때의 자살 충동은 지금 그의 죽음학에 긴요한 목차가 되었다. 서울대 문리대에 의대가 있던 동숭동 시절 내내 ‘박정희 물러가라’, ‘유신 철폐하라’는 함성이 소용돌이쳤다.

“인턴으로 소아과를 돌 때 열네살 소년이 고열로 입원해 있었는데 몇달이 지나도 병명이 안 나오다가 마침내 골수 검사에서 혈액암 진단이 나왔어요. 그리고 한달 반 뒤쯤 결국 임종을 맞았죠. 걔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울음이 복받쳐 올라와서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하도 우니까 오히려 걔 누나가 저를 위로해주던 기억이 나요.”

두려움과 연민은 그가 처음 본 죽음의 얼굴이었을까. 이윽고 저명한 소화기 내과 전문의의 치세를 누리는 동안 그는 크고 작은 수술을 네차례 받았다. 2018년, 퇴임 2년을 앞두고는 네번째로 방광암 수술을 받았다.

“아버지는 쉰둘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24년 뒤 뉴질랜드 관광을 갔다가 대동맥 박리라는 급성 심장 질환으로 돌아가셨어요. 두 분이 똑같이 11월달에 가슴 통증 나타난 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죠. 형님 한 분도 몇년 전 대동맥 박리로 응급 수술을 받아서 저도 틀림없이 심장 질환으로 갈 줄 알았는데 떡 하니 방광암 진단을 받아서 의외다 생각했죠. 암 진단 받으면 대부분 그래요. 하필이면 내가? 그런데 이게 내가 태어나기 전에 계획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철학자는 사람이 그냥 세상에 던져졌다고 하지만 죽음 공부를 하면 우리가 부모의 유전자 조합으로 그냥 태어난 게 아니고, 그 전에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지 자기가 결정했다는 걸 알게 돼요. 힘든 삶을 기획하는 건 성장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라는 거죠.”

미리 준비된 정현채 교수 부부의 수의가 서랍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죽은 이 살리는 기술은 성공 못할 것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는 배뇨 장애 탓에 세시간 반마다 한번씩, 매일 밤 두번 깬다고 했다. 잘못하면 젖으니까. 방광이 없어서 방광에 탈이 안 생길 거란 얘기는 자구책의 위트.

시대는 마음을 거슬러 슈퍼 휴먼이 가까이 다가왔다. 유전자 공학, 전자 이식, 신약으로 노화가 사라질 거라는 관측, 기억을 칩에 이식해 전자 마을에서 영생하리라는 의지가 작열한다. 냉동 시신은 죽음이란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어떤 상태에 불과하다는 은유 같다.

“지금 러시아, 미국의 냉동 질소통에 들어간 시신이 몇백 구죠. 언젠가 의학이 발달해서 병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해동을 해 다시 살겠다는 건데, 죽은 사람을 냉동했다가 살리는 기술은, 아마 안 될 걸로 봅니다. 바람직하지도 않고요.”

인터뷰의 막간, 그는 이층 서재에서 서랍장 위칸을 열었다. 색채 없는 빛의 수의 두벌이 수평으로 가지런했다. 아래칸 서랍에는 우연히 둔 여행 가방. 그렇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죽음의 한 세트가 완성되었다.

“동대문시장 수의 하는 조그만 가게에서 면으로 지었어요. 평상복으로 하려다가 화학 섬유도 많고 플라스틱 단추가 타면 다이옥신이 나오니까. 마음이 심란할 때 수의를 들여다보면 많이 안정돼요. 4년 전엔 빛을 받아 광선 에너지로 저장했다가 동력 에너지로 바꾸는 시계를 샀어요. 수명이 12년에서 15년이라는데, 좀 낮게 보면 앞으로 8년쯤 남았구나. 내 삶의 종착역이 이 정도 남았구나, 그 생각이 위안이 돼요.”

그는 올해 예순여섯살. 일흔 중반까지 사는 게 적당하다지만, 우주 나이 138억년에 비하면 그야말로 우주의 어린이 아닌가.

“스콧 펙이라는 미국 정신과 의사에게 청중이 물었어요. 우리에게 무슨 은총이 있을까? 그의 대답은, 죽을 수 있다는 게 은총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을 3, 400년 살아야 한다면 있는 돈 다 털어 죽는 쪽에 투자하겠다. 놀이터에서 실컷 놀았으면 저녁 해 기울기 전에 나가야지, 계속 죽치고 있으면 다음 사람이 못 들어와요. 후손들이 못 태어나는 것과 같죠. 보통 공수래공수거라고 하지만 반밖에 안 맞는 게, 아이가 태어날 땐 빈손이 아니라 전생에서 쌓았던 것들을 이번 생에 갖고 와요. 갈 때도, 살면서 행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사랑, 쌓았던 수양, 다 갖고 가죠.”

정현채 교수는 인생에 대해 “공수래 공수거란 말은 절반만 정답”이라고 했다. “이 생의 것을 다음 생에 다시 갖고 오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성공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떠나는 것

유리창 밖으로 멀구슬나무가 비에 젖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후와 저녁 사이의 어디쯤, 그는 캘리포니아 가이저피크 와인을 꺼냈다. 제일 좋아한다는 카베르네 소비뇽. 조금 뒤, 다시 보르도 마르고의 지스쿠르를 따랐다. 몇분 뒤, 아꼈던 2008년 나파 세인트헬레나의 에머스를 땄다. 그는 정말로 전생에 루마니아에서 와인을 빚던 수도사였을까. 아니면 마을을 술독에 빠뜨릴 작정인 사악한 화학자였을까?

“제주 생활은 좋은데 와인 애호가가 별로 없어요. 앞집에 있는 분은 담배만 피워요. 저쪽 집에 있는 분은 막걸리만 마시고.”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작년에 황매실로 담근 매실주를 꺼냈다.

“후배 교수가 제가 암 진단 받았다는 소식 듣고 알코올이 방광암 발병에 영향을 주는지 전세계 논문을 다 뒤졌는데 관련 논문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의 위트가 불그스름해졌다. 같이 취하니 비밀스러운 동료애가 생겼다. 아무것도 추가할 수 없는 닫힌 전체로서.

“카잔차키스가 그랬죠.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저도 자주 읊어봐요. 요새 카잔차키스 심정하고 비슷해서.”

서울로 돌아오는데 배를 젓듯이 나아갔다 오는 것 같았다. 가끔 그가 나무 캐비닛에 인두로 새긴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을 떠올렸다. ‘진정한 성공이란 자기가 태어난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어느 날 그는 곶자왈에서 찍은 사진 몇장을 보내주었다. 카메라는 제자가 퇴임 선물로 준 라이카 Q. 나뭇잎과 풀과 버섯 위로 오린 듯 동그란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빛의 입자들이 죽음의 두께를 뚫고 들어가 기억의 양지 속에서 한데 엉키고 있었다. 아니 광휘로 춤추고 있었다.

작가. 전 <지큐 코리아> 편집장.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18년 동안 써온 ‘에디터스 레터’를 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