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절을찾아

구미 도리사

淸潭 2018. 3. 22. 09:41

구미 도리사

도리사(桃李寺)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 소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


太祖山 桃李寺 沿革

한국불교는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기틀은 이곳 善山의 桃李寺에서부터 비롯된다

흑호자(黑胡子)로도 알려진 아도화상(阿度和尙)은 신라불교의 공인(公認)

(法興王 15年 528年)에 앞서(417~458)에 불교의 포교(布敎)를 위하여

一善郡(善山) 모례장자(毛禮長子)의 집에 머문 바 있다

실로 新羅佛敎는 이 아도화상(阿度和尙)의 전교(傳敎)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善山의 도원(桃園)에서 五色의 복사꽃이 눈속에서 피어남을 보고

그 자리에 비로소 절을 創建하니 이가 곧 海東 最初 搖籃 도리사(桃李寺)이다

오늘날도 도리사와 이웃한 桃開에는 아도화상이 布敎의 前進基地로 삼았던

毛禮長子의 유거지(遺據地)가 있고 집터에는 모례정(毛禮井)이란 우물이 있어

당시의 실상을 생생히 전해준다

그러나 新羅佛敎의 새벽을 연 桃李寺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후

사운(寺運)이 점차 기울다가 큰 화재를 당해 절은 파괴(破壞)되었다

다만 山內庵子였던 金堂이 화재를 면해 이로부터 조금씩 사세(寺勢)를

회복해 그 歷史가 오늘의 桃李寺로 이어젔다

현재 寺中의 建物로는 극락전(極樂殿),적멸보궁(寂滅寶宮),조사전(祖師殿),

삼성각(三聖閣) 등 전각(殿閣)을 비롯하여 태조선원(太祖禪院)과 수선당(修善堂)

설선당(說善堂)등 요사(寮舍)가 있다

극락전(極樂殿)은

正面 3칸, 側面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15평 크기의 건물이다

17世紀에 建立되어 高宗 12년(1875) 龍海和尙이 重修하고

이듬해 단청(丹靑)을 올린 桃李寺의 중심 불전(佛殿)이다

안에는 17세기 중엽(中葉)에 만들어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과 고종13년에(1876)에 造成된

아미타전불탱화(阿彌陀轉佛畵)가 봉안(奉安)되어 있으며

그밖에도 신중탱화(神衆畵)와 지장보살탱화(地藏菩薩畵)가 모셔저 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평 크기이며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한 기도처(祈禱處)이다

1977년 절의 동쪽에 있던 석종영(石鐘影)부도(浮屠)의 사리탑을 境內로 옮겨 모시던 중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 국보 제 208호)과 함께 水晶처럼 맑은

사리1과(舍利 1顆)가 발견되었다

 이에 住持 法聖和尙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창건하고 사리탑(舍利塔)을

세워 발견된 사리(舍利)를 영구히 安置했다

뿐만 아니라 桃李寺 重建 10個年 計劃을 세운 다음 極樂殿을 비롯한 

모든 殿閣을 重建,重修하여 寺域을 크게 一新하였다

寂滅寶宮의 舍利塔은 높이 약 8미터에 달하는 雄壯한 寶塔이다

조사전(祖師殿)은 정면 3칸,측면 1칸 7평 크기의 맞배지붕 건물로 

아도화상(阿度和尙)의 진영(眞影)을 奉安하였다

三聖閣 또한 정면 3칸, 측면 1칸 7평 크기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안에는 삼성탱화(三聖畵) 곧 七星, 獨聖, 산신탱화(山神畵)를 모셨다

태조선원(太祖院)은 정면 7칸, 측면 8칸의 ㄷ자형 建物로 50평의 크기이다

桃李寺가 禪院을 운영하던 지난날에는 海東의 禪客들이 "第一挑李"라

이를 ?ㅅ돈? 이름난 禪房이였으니 太祖禪院은 그때의 모습을 전하는 건물이다

修善堂과 說禪堂은 각각 112평과 140평의 2층 건물로

佛子들의 信行 및 宗敎活動을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이들은 1994년과 1998년 신축되었다

그리고 절로부터 4.5km 떨어진 길목에 새워진 山門은

팔작지붕 一柱門 形式의 13평 크기 건물이다

그밖에 寺中에 傳來되는 聖寶文化財로는 桃李寺石塔(보물 제170호)을 비롯하여 

眞身舍利가 奉安되었던 世尊舍利塔, 阿度和尙寺跡碑(인조17년1665년),

阿度和尙이 坐禪하던 곳으로 전해지는 坐禪臺가 있다



해평에서 도리사 들어가는 길 입구 일주문

이곳을 통과해서 4.5km 산길을 올라가면 桃李寺 境內에 도착한다



아도스님이 눌지왕 2년에 신라 최초로 창건한 절로 신라 불교의 발상지이다

큰절의 이름은 남았지만 세상에서 잊혀지기는 매한가지였던 도리사가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어모으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1977년 절 담 밖에 있던 조선시대의 석종형 사리탑에서 뜻밖에

8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사리함과

그 안에 담긴 사리를 발견하게 되어 단번에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은 것이다.






극락전

도리사(桃李寺)의 본당으로 쓰이는 건물로 팔각지붕의 합각을 훌쩍 안으로 끌어넣어

귀마루가 긴 대신 용마루가 짧아 관심을 끈다.



아도화상 좌선대



좌선대

아도스님이 앉아 좌선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바위로 윗면이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다.

나도 坐禪臺에서 坐禪하며 인생을 돌아봤다





세존 사리탑

극락전 뒤편에는 높이 1.3m 남짓의 크기로 세상을 놀라게 한 석종형 부도,

곧 세존사리탑이 있다.

원래 이 사리탑은 1968년 단국대 고적조사단에 의해 조사될 때까지만 해도

삼성각 뒤 담장 밖에서 호젓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뒤 어느 땐가 도굴꾼들의 손길에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져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제자리에 수습되었던 이 탑을 다시 경내로 옮겨 세우는 과정에서

예의 그 사리함과 사리가 발견되었다.

사리공이 이중으로 장치되고 안쪽의 사리공은 석회로 단단히 봉해져 있어

도굴꾼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래의 하층 지대석을 담 밖에 남겨둔 채

새로 만든 대좌 위에 상층 지대석이 놓이고,

그 위에 뚜껑을 덮은 단지처럼 보이는 탑신이 앉았으며,

다시 그 위에 고깔모자와 흡사한 연봉형 보주가 얹혔다.

상층 지대석의 네 귀퉁이에는 사자의 머리를 조각하였고 그 사이로 향로를 새겼다.

탑신에는 위와 아래에 띠처럼 돌아가며 연잎을 새겼는데

그 꽃잎들이 서로 겹쳐지고 있어 특이하다.

보주에도 아래에 앙련을 새기고 그 위로 다섯 개의 원을 마련하여

’이라고 한 글자씩 새겨넣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지고 크기도 작지만 사자 머리 등을 새긴 솜씨가 탄탄한 사리탑이다.




아도화상 상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하신분이며 

향의 의미와 치유 효능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신분이다

도리사에 오신분들은 누구나 아도화상앞에 향을 피워 

몸과 마음을 맑히는 아름다운 불교의 향문화를 체험하실수 있습니다

"이것은 향이라는 것으로 태우면 그윽한 향기가 풍기지요

만일 향을 태우면서 정성이 신성한 곳에까지 이르도록

간곡히 축원하면 무슨 소원이든지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

-삼국유사 아도기라 편-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은 불교를 몰랐던 신라 눌지왕(417~458)때

중국에서 선물로 보내 온 향에 대해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아도화상에게 묻자 이것은 향이라는 것으로 불을 피우면 신비로운 향이 나는데

이것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 이루지 못할 소원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한다

그무렵 눌지왕의 여식인 성국공주가 병이 들어 있었는데 

아도는 일주일간 향을 피워 올리고 정성스럽게 기도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에서 기도하고 내려오는 친구 朴도사


서대에서 본 해평들판과 아름다운 풍경



이곳 서대에서 우리는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놀다 왔다

절을 나오면서 서쪽 산줄기의 모퉁이를 돌아가면 아무런 자취도 없는 좁은 터가 있다.

아도스님이 손가락을 곧게 가리켜 직지사터를 잡았다는 서대다.

여기에 서면 직지사가 있는 황악산이 멀리 건너다보이고 그 사이는 툭 터져 시원스럽다.






 - 원호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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