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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近(권근). 有感(유감)-감회가 있어 ? 大道有興替(대도유흥체) : 대도는 성쇠가 있고 浮生多是非(부생다시비) : 덧없는 인생은 시비도 많다. 仲冬天氣暖(중동천기난) : 동지에 날씨가 따뜻하니 宿霧日光微(숙무일광미) : 묵은 안개에 햇빛이 희미하다. 朝市風流變(조시풍류변) : 조정과 시정은 풍속도 변하고 郊墟煙火稀(교허연화희) : 들녘에는 연기조차 드물구나. 時危無補效(시위무보효) : 시대는 위태로운데 보탬되는 일도 없이 袍笏?牙緋(포홀만아비) : 헛되이 관복에 큰 띠만 둘렀구나. 權近(권근) 1352(공민왕 1)~1409(태종 9)] 여말 선초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가원(可遠)이며, 호는 양촌(陽村)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368년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듬해에 전시병과에 합격하여, 춘추관검열에 제수되었다. 이후 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374년 공민왕이 죽자,정몽주,정도전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背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89년 6월 사신으로 북경으로 갔다가 9월 돌아왔다. 10월에 언사(言事)로 우봉(牛峰)으로 내쳐졌다. 12월 영해(寧海)으로 옮겼고, 1390년 2월에는 경주(慶州) 옥사에 갇혔다가, 흥해(興海) 로 옮겼다. 4월에는 김해(金海)로 옮겼으나 5월에는 체포되어 청주(淸州) 옥에 갇혔다. 6월 갑작스러운 홍수로 방면되어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7월에 다시 익주(益州)에 유배되었다. 거기서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지었다. 11월 석방되어 1391년 정월 서울에 올라가 임금에게 사은하고 3월 이후 충주 양촌(陽村)에 우거하여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지었다. ? |
왕안석(王安石). 등보공탑(登寶公塔) ? 倦童疲馬放松門(권동피마방송문) : 지친 동복과 피로한 말을 송문에 놓아두고 自把長?倚石根(자파장공의석근) : 홀로 긴 대지팡이 짚고 올라 돌벽에 기대어선다
江月轉空爲白晝(강월전공위백주) : 강 위의 달은 공중을 빙돌아 대낮같이 비추고 嶺雲分暝與黃昏(령운분명여황혼) : 고개 너머 구름은 어둠을 갈라 황혼빛과 함께 한다 鼠搖岑寂聲隨起(서요잠적성수기) : 새앙쥐는 정적을 깨고 쉬지 않고 바스락거리고 鴉矯荒寒影對?(아교황한영대번) : 황량하고 추운 달빛 속을 갈가마귀 짝지어 날아간다 當此不知誰客主(당차불지수객주) : 누가 객이고 주인인지 모를 이 때에 道人忘我我忘言(도인망아아망언) : 스님은 나를 잊고 나는 할 말을 잊는다. 왕안석(王安石) 송대의 정치가이자 이름난 개혁가인 왕안석은 자가 개보(介甫), 호가 반산(半山)에 무주 임천(지금의 강서성 무주) 사람이다. 1021년에 태어나 1086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왕익(王益)은 원외랑을 지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왕안석은 무엇이든 한 번 보거나 읽은 것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문장은 호방하고 날쌔 얼핏 보면 별 생각 없이 쓴 것 같지만 다 읽고 또 읽으면 아주 기묘하여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시는 맑고 고상하며 산문은 장작을 패듯 웅건하다. 정치 논설은 간결하면서 힘이 있다. ? |
茶山 丁若鏞. 春雲(춘운)
? 冷屋溪橋畔(냉옥계교반) 시내다리 언저리 궁벽한 집에 春雲演?新(춘운연양신) 피어나는 봄구름 신기하구나
乳鷄時獨語(유계시독어) 병아리랑 이따금 말을 나누고 睡鴨故相馴(수압고상순) 꾸벅이는 오리랑 함께 어울려 漸與興居懶(점여흥거라) 차츰차츰 행동이 게을러지니 那堪薦謁頻(나감천알빈) 고관을 어찌 능히 자주 뵈오리 深慙違素志(심참위소지) 너무도 부끄럽네 본심을 어겨 書帙有棲塵(서질유서진) 서책 위에 먼지만 소복이 쌓여
茶山 丁若鏞 1762(영조 38)∼1836(헌종 2). 조선 후기의 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 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 (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 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 경제·사회·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혁명론’ 이었다기보다는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량하여 조선 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 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
松江鄭澈. 贈梧陰(증오음) 오음에게 주다
一別年應換(일별년응환) 한번 이별 후 해 바뀌었더니 三年路益迷(삼년로익미) 삼년이라 길 더욱 희미하네. 客心春?北(객심춘안북) 객의 마음은 봄 기러기 북쪽에 가고 歸夢漢江西(귀몽한강서) 돌아갈 꿈은 한강의 서로 가네. 黃閣多新面(황각다신면) 황각엔 새 얼굴 많고 靑山有舊棲(청산유구서) 청산엔 옛 집이 있나니 寧同問津?(녕동문진수) 차라리 나루 묻는 늙은이랑 長與白鷗兮(징여백구혜) 흰 갈매기 오래도록 더불었으면.
松江鄭澈(송강정철)
조선 중기 때의 문신 · 문인. 서울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 누이와 계림군유(桂林君瑠) 의 부인이 된 둘째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10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杖流) 도중에 죽고 아버지는 유배당하였는데, 그도 관북(關北) · 정평(定平) · 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 아버지가 귀양살이 에서 풀려나자 그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간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서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김인후(金麟厚) · 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이이(李珥) · 성혼(成渾) ·송익필(宋翼弼) 같은 유학자들과 친교를 맺었다. 17세에 문화유씨(文化柳氏) 강항(强項)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 1등을 하였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
南孝溫. 天陰籬外夕烟生(천음리외석연생)
天陰籬外夕烟生(천음리외서연생) 하늘흐려 울 밖으로 연기 피어나는데 寒食東風壁水明(한식동풍벽수명) 한식날 따스한 바람불고 물도 맑아라 無限滿船商賈語(무한만선상가어) 배에 물건 가득실은 뱃사람 말 들으니 柳花時節故鄕情(류화시절고향정) 어릴 때 내고향 버들잎 피는곳 그리워라
추강(秋江) 南孝溫(남효온, 1454~1492) ? ? 평생동안 정치적인 불우를 면치 못한 채 강개한 시문을 시문 및 산천경개와 더불어 자적한 시인이었습니다.생육신(生六臣) 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이며 김종직(金宗直)의 문하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數汝昌)·김시습(金時習)·안응세(安應世)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합니다. 1478년(성종 9)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 의 능인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소하였으나, 도승지 임사홍 (任士洪),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저지로 상달되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유랑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김종직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 복위를 상소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였던 분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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