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하지(夏至) - 감자 캐는 계절 ..
요즘은
감자를 쪄낼 때,
껍질을 벗겨
모양이 매끈하게 곱다.
우리 어릴 적에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쪘다.
뜨거운 감자를
한 손에 들고
얇은 껍질을 벗겨나갈 때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기다리는
그 포만감을 어찌 잊을까.
껍질을 다 벗기고서
매끈한 알감자를 바라보는 여유 ..
그건 더 할 수 없는
눈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껍질을 벗기지 말고 그냥
그대로 쪄라고 한다.
솔직히 말해
남자는 무엇이든
벗기는(?) 재미가 있어야
맛있게 먹는다.
여름밤 평상에 누워
한 손엔 삶은 감자를
한 손엔
호박꽃 속에 가둔 벌을 들고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보던 찬란한 날들을 기억한다.
흙 속에서
아직 덜 여문 감자를
손으로 만져보는 설렘도
야릇한 쾌감이다.
모닥불 속에
던져뒀던 감자를
후후 불며 꺼내는 흥성함도
또 다른 기쁨이었다.
남의 밭에서 몰래 감자를 훔쳐내는 가슴 뜀 없이
소년시절을 보내버렸다면
그대는 통과의례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허전한 어른이다.
30년대 만주에 살던 윤동주(尹東柱)는
이렇게 노래했다.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몽기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
껌뻑껌뻑 검은 눈이
모여앉아서 /
옛 이야기 하나씩에
감자 하나씩 / 이라며..
감자처럼 순박하게 껌뻑거리는
떠꺼머리 총각애들의 잊을 수 없는 눈망울을 보여줬고,
50년대 충주의 권태응(權泰應)은 ..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
파보나마나
자주감자 /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
파보나마나
하얀감자 / 라며..
감자의 성장에서
자연의 엄연함과 순리를 깨닫게 만들었으며,
70년대 안동의 권정생(權正生)도 ..
아무개 아무개도
감자떡 먹고 자랐고 /
또 아무게 아무개도
감자떡 먹고 자랐지 / 라며 노래했다.
요즘 햇감자가 시장에 나오고 있다.
하지(夏至)에 나오는 감자다.
지금 내 앞에는
삶은 감자 세 개가 놓여 있다.
감자를 보면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욕심스럽게
꾸역꾸역 먹었던 날은
속이 아려서
아무도 몰래 우물에 가서
연신 두레박질을 했지 ..
그 밤에는
무논에서 개구리가 울고
달이 참 밝았다.
오늘이
하지(夏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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