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로 한해는 간다.
을씨년스런 겨울 눈 맞은 감나무 마지막 남은 잎사귀를 툭 건드리며 시큼하게 간다.
이 길로 새해가 온다.
누가 시키지도 안 했는데 하얀 눈으로 대지 위를 덮으며
손바닥만한 햇볕에 얼굴 비비는 촌 늙은이처럼 낮은 키로 온다.
간다고 우는 사람 없어도, 온다고 반기는 사람 없어도,
갈 건 가고 올 건 온다.
세상 모든 건 아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돌아간다는 걸 잘 안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세상의 이치를 동네 나무들에게서 배웠다.
그걸 아는 이 마을은 그래서 나무처럼 조용하다.
100년도 채 못사는 인간들만 조용하면, 이 세상은 모든 게 조용하다.
조용하게 살라고 아이들은 어른에게 배웠고,
어른들은 조상에게 배웠고, 조상은 나무로부터 배웠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고
오랜 세월 동네나무에 매달려
한 세월을 ‘웅~ 웅~’거리며 시끄럽게 살다간 바람이 알려줘 알았다.
그런데 요즈음, 이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
동네나무는 어디 가 버리고,
산에 있어야 하는 바위를
갈 건 가고 올 건 오는 동네어귀까지
인간들이 굴러와
부딪치는 소리, 깨지는 소리만 들린다.
바람이 불면 바람소리를, 비 오면 비 소리를
나지막한 토담이 죄다 흡수해 버렸는데.
요즘, 인간들이 제 잘난 맛에 만들어 낸
높게 쌓아 오린 시멘트 벽과 그 위 쇠창살은 공명시켜
더 큰 소리를 만들어낸다.
홍시가 달렸던 감나무가 보이는 동네 흙 길을 걷는다.
지나온 일년을 지나쳐 걷는다
12월 끝자락에 메마른 담쟁이는 더 이상 갈 길을 묻지 않으려 하지만,
인간인 내 발길이 아직도 바쁘다
떠나는 한해, 오는 새해보다 더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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