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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 시골 버스 이야기

淸潭 2016. 7. 21. 10:35

그날도 요즘처럼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완행버스 한 대가 시골 길을

툴툴거리며 달려가다가 남자 한 사람을 태우기 위해 마을 초입에 잠시

섰습니다. 그러자 부지런히 버스 뒤를 따라오던 먼지 더미가 열어놓은

창가를 통하여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으로 코와 입을 가렸지만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몇 번을 더 뒤집어써야만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윽고 허름한 군복을 입은 군인이 올라탔습니다. 군인은 이내 자리

하나 찾아 몸을 깊숙하게 묻었습니다. 기실 깊숙이 묻을 수야 있나요.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자아,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차는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습

니다. 운전수 아저씨의 끗발이 하늘 같던 시절인지라 승객들은 말 놓아

물어보지도 못하고 뭔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며 서로의 눈치만 살핍니다. 

먼지를 피하려 잠시 닫아 놓았던 창문을 소리내 여닫기도 하고 아저씨의

등 뒤로 궁금한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은근히 재촉하지만, 운전수 아저씨는

멀뚱멀뚱 앞만 바라볼 뿐 도무지 출발할 기색을 안 보입니다. 날은 덥고

바람마저 불지 않아 정말이지 화덕이 따로 없는데도 말입니다. 참다못한 

한 아주머니가 기어이 말을 꺼내고야 맙니다.
  "아, 안 떠나유우?"
  운전수 아저씨는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려 차창 밖을 쳐다봅니다. 사람들의

눈도 같이 따라갑니다. 서른 댓쯤 되어 보일까요, 한 아주머니가 멀리서

잰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손을 흔들며 제발 떠나지 말라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승객 중의 누군가가 또 말을 꺼냈습니다.
  "에구우! 저 아줌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것네에."
  먹성 좋아 보이는 꼬맹이 하나도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큰소리로 보

탰습니다.
  "아줌니이! 츤츤이 와유우! 차, 안 떠난대유우!"
  그래도 그 아주머니는 계속 잰걸음으로 바삐 뛰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올라탔습니다. 아주머니는 헉헉거리며 제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운전수

아저씨에게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뉴우. 헉헉, 지, 안 가는 거여유. 헉헉."
  그렇게 숨차게 말을 토해놓고는 승객들을 돌아다보았습니다.

  지금 보니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몸뻬바지를 입어서 그런지 멀리서

볼 때는 나이 들어 보였지만,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는 것을 보니 새 아낙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새아낙은 곧바로 조금 전에 탔던 군인에게로 갔습니다. 고개 숙인 채

소동일랑 남 일이라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그 군인에게로 가서 흔들어

깨우지도 못하고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있지유우! 있잖에유우!"
  군인이 무슨 일 났나 싶어 그제야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워쪄? 여긴 웬일이여? 감자밭에 가 있는 줄 알았는디?"
  새 아낙이 숨을 고르며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기냥유우. 몸 잘 챙기시구유우."
  "......"
  "......"


  이윽고 아낙이 내리고 버스가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승객들은 운전수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등이 유난히 넓어 보이는 운전수 아저씨는

뭐가 즐거운지 연신 히죽히죽 웃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제일 뒷좌석으로 가서 아낙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꼬맹이만 군인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낏 보았을

뿐입니다.
  아낙은 버스가 남겨놓는 먼지 구름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길 양쪽에 둥이로 서 있는 미루나무들이

아낙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는 승객들을 위해 부지런히

부채질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