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6년 10월7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영화평이다. 영화 제목은 '아리랑'. 6일 전인 10월1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무성영화 '아리랑'은 '국민 영화'였다. 불우한 현실 속에서 정신이상자가 된 대학생이 고향에 돌아와 가족을 괴롭히는 지주를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된다는 내용의 '아리랑'은 나라 잃은 조선인의 설움과 울분을 달래주었다. 민요 '아리랑'은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일제 치하 조선인의 가슴에 저항의 불을 지폈다. 영화 '아리랑'은 민족혼을 일깨우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주연까지 맡았던 춘사(春史) 나운규(1902∼1937)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나운규는 일제 치하 피폐한 조선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일제강점기 한 일본어 영화잡지는 '아리랑'에 대해 "그 작품 안에는 어떤 꿈이 깃들어 있었다. 그 소중한 꿈에 감동을 받았다"는 평을 소개하기도 했다.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나운규는 35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서른 편 가까운 영화에서 감독, 주연, 각본 등을 맡았다. '아리랑'은 최초의 민족 영화로 평가받지만, 국내에는 원본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일본의 영상수집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가 원본 필름을 소장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아리랑 원본 필름 되찾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리랑'은 1950년대까지 상영됐다고 전해지며 이후 여러 감독의 손을 거쳐 몇 차례 다시 제작됐다. 나운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두용 감독이 '아리랑'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만든 2003년작 '아리랑'은 북한에서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10/01 05:00 송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게시판 등)] ▒☞[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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