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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 정학유'

淸潭 2015. 9. 5. 15:07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 정학유

 

일월령

정월은 이른 봄이니 입춘 우수 절기로다 /

산속 깊은 골짜기에 눈과 얼음 남았으나 /

평야 마을 넓은 들은 풍경이 바뀌도다 /

어와! 우리 임금 백성을 사랑하고 /

농사를 중히 여겨 농사에 힘쓰는 /

간절한 교서를 온 나라에 널리 펴니 /

슬프다! 농부들아 아무리 모른다 해도 /

네 몸을 돌본다고 임금 뜻을 어길소냐 /

논 밭을 서로 나눠 있는 힘 다하리라 /

일년 풍흉은 미리 알지 못하여도 /

있는 정성을 다하면 하늘 재앙 벗어나니 /

제 각각 노력하여 게으름 부리지 말라 /

일년 농사는 봄에 달렸으니 모든 일 미리 라 /

봄에 만일 때 놓치면 한 해 농사 망치니 /

농기구 정비하고 일할 소도 보살피고 /

재거름 재워 놓고 한 쪽으로 실어 내어 /

보리밭에 오줌 주기 작년보다 힘써 해라 /

늙은이 힘이 부쳐 힘든 일 못하여도 /

낮에는 이엉 엮고 밤에는 새끼 꼬아 /

때맞게 집 이으면 큰 근심 덜리로다 /

과일 나무 버곳 깎고 가지 사이 돌 끼우기 /

초하루 새벽에 시험 삼아 하여 보자 /

며느리 잊지 말고 좋은 술 밑 하여라 /

온갖 꽃이 피어 나면 꽃밭에서 취하여 보자 /

정월 보름달 보고 가뭄 장마 안다 하니 /

늙은 농부 경험으로 대강은 짐작한다 / 

새해 세배함은 인정많고 좋은 풍속이니 /

새 옷 차려 입고 친척 이웃 서로 찾아 /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다닐 적에 /

와삭 버석 울긋불긋 옷 차림이 화려하다 /

사내아이 연 날리기 계집아이 널뛰기요 /

윷놀이 내기 하니 소년들 놀이로다 /

사당에 세배 하니 떡국에 술 과일이구나 /

움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

보기에 싱싱하여 오신채가 부러우랴 /

보름날 먹는 약밥 신라에서 온 것이다 /

묵은 산나물 삶아 내니 고기맛에 비길소냐 /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름 삭히는 생밤이라 /

먼저 불러 더위 팔기 달맞이 횃불 놓기 /

내려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이월령

이월은 한 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

초 엿샛날 좀생이로 풍흉을 안다 하며 /

스무날 날씨 보아 대강은 짐작하니 /

반갑다 봄바람이 변함 없이 문을 여니 /

말랐던 풀 뿌리는 힘차게 싹이 트고 /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

맷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와라 /

보습 쟁기 차려 놓고 봄갈이 하여 보자 /

기름진 밭 가리어서 봄보리 많이 심고 /

목화밭 되갈아 두고 제때를 기다리소 /

담배 모종과 잇꽃 심기 이를수록 좋으리라 /

뒷동산 나무 다듬으니 이익도 되는구나 /

첫째는 과일나무요 둘째는 뽕나무라 /

뿌리를 다치지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

담장도 손을 보고 개천도 쳐 올리소 /

안팎에 쌓인 검불 말끔히 쓸어 내어 /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려니 /

온갖 가축 못다 기르나 소 말 닭 개 기르리라 /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어 보자 /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구나니 /

본초강목 참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

낱낱이 적어 놓고 때 맞추어 캐어 두소 /

촌 집에 거리낌 없이 값진 약 쓰겠느냐 /

 

삼월령

삼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 /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

온갖 꽃 피어 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

대청 앞 쌍 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

꽃밭에 범나비는 분주히 날고 기니 /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홉다 /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 잎 난다 /

우로에 느껴 슬퍼함을 술 과일로 펴오리라 /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 /

점심밥 잘 차려 때 맞추어 배 불리소 /

일꾼의 집안식구 따라와 같이 먹세 /

농촌의 두터운 인심 곡식을 아낄소냐 /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

한편에 모판하고 그 나머지 삶이 하니 /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

약한 싹 세워낼 때 어린아이 보호하듯 /

농사 가운데 논농사를 아무렇게나 못하리라 /

개울가 밭에 기장 조요 산 밭에 콩 팥이로다 /

들깨모종 일찍 뿌리고 삼농사도 하오리라 /

좋은 씨 가리어서 품종을 바꾸시오 /

보리밭 갈아 놓고 못논을 만들어 두소 /

들 농사 하는 틈에 채소 농사 아니할까 /

울 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고 /

담 근처에 동과 심어 막대 세워 올려 보세 /

무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파 마늘을 /

하나하나 나누어서 빈 땅 없이 심어 놓고 /

갯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막아 /

닭 개를 막아 주면 자연히 잘 자라리 /

오이 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

시골집 여름 반찬 이 밖에 또 있는가 /

뽕 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되었구나 /

어와 부녀들아 누에 치기에 온 힘 쏟으소 /

잠실을 깨끗이 하고 모든 도구 준비하니 /

다래끼 칼 도마며 채광주리 달발이라 /

각별히 조심하여 내음새 없이 하소 /

한식 앞뒤 삼사 일에 과일나무 접하나니 /

단행 이행 울릉도며 문배 참배 능금 사과 /
엇접 피접 도마접에 행차접이 잘 사느니 /

청다래 정릉매는 늙은 그루터기에 접을 붙여 /

농사를 마친 뒤에 분에 올려 들여놓고 /

눈 바람 추운 날씨 봄빛을 홀로보니 /

실용은 아니지만 고고한 취미로다 /

집집이 요긴한 일 장 담그기 행사로세 /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묻혀 먹세 /

떨어진 꽃잎 쓸고 앉아 병술로 즐길 적에 /

아내가 준비한 일품 안주가 이뿐이라 /

 

사월령

사월이라 한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

비 온 끝에 볕이나니 날씨도 좋구나 /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 바쁘구나 /

남녀노소 일이 바빠 집에 있을 틈이 없어 /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

면화를 많이 하소 방적의 근본이라 /

수수 동부 녹두 참깨 사이심기 적게 하소 /

갈대 꺾어 거름할 때 풀 베어 섞어 하소 /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 /

양식이 모자라니 환곡 타 보태리라 /

한 잠 자고 일어난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

뽕 따는 아이들아 뒷 날을 생각하여 /

오랜 가지 찍어 내고 햇잎은 두고 따소 /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뭄 없을소냐 /

이 때를 이용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 /

도랑 쳐 물길 내고 새는 지붕 손질하여 /

장마를 방비하면 훗날 근심 더 없나니 /

봄에 매는 필무명도 이 때에 널어 말리고 /

베 모시 형편대로 여름옷 지어 두소 /

벌통에 새끼 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

천만이 하나같이 여왕을 받들으니 /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신 도리 깨닫도다 /
석탄일에 등 달기는 산촌에 바쁜 일 아니나 /

느티떡 콩찌니는 제 때에 별미로다 /

앞 내에 물이 주니 고기잡이 하여 보세 /

해 길고 바람 자니 오늘 놀기 좋겠구나 /

맑은 시내 모래밭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

찔레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

가는 그물 둘러치고 은빛 큰 고기 후려 내어 /

 너럭 바위에 노구솥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이 맛과 바꿀소냐 /

 

오월령

오월이라 한여름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

남쪽 바람 때 맞추어 보리 추수 재촉하니 /

보리밭 누른 빛이 밤사이 나겠구나 /

문앞에 터를 닦고 보리 타작 하오리라 /

드는 낫 베어다가 한 단 두 단 헤쳐 놓고 /

도리깨 마주 서서 흥을 내어 두드리니 /

불고 쓴 듯하던 집안 갑자기 벅적인다 /

가마니에 남는 곡식 이제 곧 바닥이더니 /

중간에 이 곡식으로 입에 풀칠 하겠구나 /

이 곡식 아니라면 여름 농사 어찌할까 /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끝이 없다 /

목동은 놀지 말고 농우를 보살펴라 /

 뜨물에 꼴 먹이고 이슬 풀 자로 뜯겨 /

그루갈이 모 심기 제 힘을 빌리리라 /

보릿짚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

땔나무 준비하여 장마 걱정 없이 하소 /

누에 치기 마칠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

누에섶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

고치를 따오리라 맑은 날 가리어서 /

발 위에 엷게 널고 뙤약 볕에 말리우니 /

쌀고치 무리고치 누른고치 흰 고치를 하나하나 나누어서 /

조금은 씨로 두고 그 나머지 켜오리라 /

자애를 차려 두고 왕채에 올려 내니 눈 같은 실오라기 /

사랑스런 자애소리 금슬을 고르는 듯 /

여자들 공을 들여 이 재미 보는구나 /

오월 오일 단오날에 빛깔이 산뜻하다 /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이 젖었으며 /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 볕에 눈부시다 /

목 맺힌 영계소리 연습삼아 자주 운다 /

시골 아녀자들아 그네는 뛴다 해도 /

청홍 치마 창포 비녀 좋은 시절 허송 마라 /

노는 틈틈이 할 일이 약쑥이나 베어 두소 /
하느님 느그러워 뭉게뭉게 구름 지어 /

때 미쳐 오는 비를 뉘 능히 막을소냐 /

처음에 부슬부슬 먼지를 적신 뒤에 /

밤 되어 오는 소리 주룩주룩 하는 구나 /

관솔불 둘러앉아 내일 일 마련할 때 /

뒷 논은 뉘 심으고 앞밭은 뉘가 갈꼬 /

도롱이 접사리며 삿갓은 몇 벌인고 /

모찌기 자네 하고 논삶이 내가 함세 /

들깻모 담뱃모는 머슴아이 맡아 내고 /

가짓모 고춧모는 아기딸이 하려니와/

맨드라미 봉숭아로 너무 즐거워 하지 마라 /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

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 /

새참 때 문을 나서니 개울에 물 넘는다 /

농부가로 답을 하니 격양가 아니런가 /

 

유월령

유월이라 늦여름 되니 소서 대서 절기로다 /

큰 비도 때로 오고 더위도 극심하다 /

초록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

평지 위에 물 고이니 참개구리 소리 난다 /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 내고 /

늦은 콩 팥 조 기장을 베기 전에 심어 놓아 /

땅힘을 쉬지 말고 알뜰히 이용하소 /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 뿐이로다 /

논 밭을 번갈아 삼사차 돌려 맬 때 / 그

 가운데 목화 밭은 더욱 힘을 써야 하니 /

틈틈이 나물밭도 김매 주고 잘 가꾸소 /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 /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 /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채운 뒤에 /

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 있구나 /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

오조 이삭 푸른 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

일로 보아 짐작하면 양식 걱정 오랠소냐 /

해진 뒤 돌아올 때 노래 끝에 웃음이라 /

자욱한 저녁 때는 산촌에 잠겨 있고 /

달빛은 아스라이 발길을 비추누나 /

늙은이 하는 일 아주 없다 하겠느냐 /

아침 일찍 오이 따기 뙤약 볕에 보리 널기 /

그늘에서 누역 만들기 창문 앞에 줄 꼬기라 /

하다가 고달프면 목침 베고 허리 피고 /

북쪽 바람 잠이 드니 좋은 세월이로구나 /

잠 깨어 바라보니 급한 비 지나가고 /

먼 나무에 쓰르라미 해지기를 재촉한다 /

할머니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 못 되지만 /

묵은 솜 들고 앉아 알뜰히 피어 내니 /

장마 때의 심심풀이 낮잠 자기 잊었도다 /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좋은 날이라 /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갈아 국수하여 /

사당에 올린 다음 모두 모여 즐겨 보세 /

아녀자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

누룩을 만들어라 유두 누룩 치느니라 /

호박나물 가지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

옥수수 새 맛으로 일 없는 사람 먹어 보소 /

장독을 살펴보아 제 맛을 잃지 마소 /

맑은 장 따로 모아 익는 대로 떠내어라 /

비 오면 꼭 덮고 아가리를 깨끗이 하고 /

이웃 마을 힘을 모아 삼 구덩이 파보세 /

삼대를 베어 묶어 익게 쪄 벗기리라 /

고운 삼 길쌈하고 굵은 삼 밧줄 꼬고 /

촌집에 중요하기는 곡식에 버금가네 /

산 밭 메밀 먼저 갈고 갯가 밭 나중 가소 /

 

칠월령

칠월이라 한여름 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

화성은 서쪽으로 가고 미성은 하늘 복판이라 /

늦더위 있다 해도 계절을 속일소냐 /

빗줄기 가늘어지고 바람도 다르구나 /

가지 위의 저 매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하는가 /

칠석에 견우 직녀 흘린 눈물 비가 되어 /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때 /

눈섭 같은 초승달은 서쪽 하늘에 걸리고 /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다해 가네 /

얼마나 남았으며 어떻게 되어 갈까 /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

꼴 거두어 김매기 벼 포기에 피 고르기 /

낫 갈아 두렁 깎기 선산에 벌초하기 /

거름을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 /

이른 논에 새 보기와 이른 밭은 허수아비 /

밭가에 길도 닦고 덮힌 흙도 쳐올리소 /

기름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깊게 갈아 /

김장할 무 배추 남 먼저 심어 놓고 /

시 울 미리 막아 잃지 않게 하여 두소 /

부녀들도 생각 있어 앞일을 헤아리고 /

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를 위함이라 /

저 소리 깨쳐 듣고 정신을 가다듬어 /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

곡식도 바람 쐬고 옷가지 말리시오 /

명주 조각 어서 뭉쳐 춥기 전에 짜아 내고 /

늙으신 어른 기운 빠져 환절기를 조심하고 /

가을이 가까우니 입는 옷 살피시오 /

빨래하여 바래고 풀 먹여 다듬을 때 /

달빛 다듬이 소리 소리마다 바쁜 마음 /

부녀자 힘들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다 /

채소 과일 흔할 때에 뒷날을 생각하여 /

박 호박 얇게 썰어 말리고 오이 가지 짜게 절여 /

울에 먹어 보소 귀한 반찬 또 있을까 /

면화밭 자주 살펴 일찍 익은 목화 피었는가 /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도 달렸느니 /

 팔월령

팔월이라 한 가을이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

북두성 자루 돌아 서쪽하늘 가리키니 /

서늘한 아침 저녁 가을이 완연하다 /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 사이에 들리는구나 /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은 열매 맺고 만물 결실 재촉하니 /

들 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

백곡은 이삭 패고 무르익어 고개 숙이니 /

서쪽 바람에 익는 빛이 누런 구름 일어난다 /

백설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송이 /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 명랑하다 /

안팎 마당 닦아 놓고 발채 망태기 장만하고 /

면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 이삭 콩 가지요 /

나무꾼 돌아올 때 머루 다래 산 과일이로다 /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차지구나 /

아름 모아 말리어서 철 대면 쓰게 하소 /

명주를 끓어 내어 가을 햇볕에 널어 말리고 /

쪽 들이고 잇 들이니 울긋불긋 하는구나 /

부모님 나이 드시니 수의를 준비하고 /

나머지는 말려 놓고 자녀의 혼수하세 /

집 위의 익은 박은 긴요한 그릇이라 /

대싸리 비를 매어 마당질에 쓰오리라 /

참깨 들깨 거둔 뒤에 중오려 타작하고 /

담배 녹두 팔아다가 필요한 돈 마련하자 /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절 쇠어 보세 /
새 술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

성묘를 하고 나서 이웃끼리 나눠 먹세 /

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 다녀갈 때 /

개 잡아 삶아 내고 떡상자와 술병이라 /

초록 장옷 반물치마 차려 입고 다시 보니 /

여름 동안 지친 얼굴 회복이 되었느냐 /

가을 하늘 밝은 달에 마음놓고 놀고 오소 /

올 할일 다 못하여 내년 계획 짜봅시다 /

밀대 베어 더운 갈이 밀과 보리 심어 보세 /

끝끝이 못 익어도 급한 대로 걷고 가소 /

사람 힘만 그러할까 계절도 그러하니 / 조

금도 쉴 틈 없이 마치면 시작이라 /

 

 

구월령

구월이라 늦가을이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느냐 /

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한다 /

온 산 단풍은 연지를 물들이고 /

울 밑 노란 국화 가을 빛깔 뽐낸다 /

구구절 좋은 날 꽃부침개로 제사 지내세 /

절기를 따라가며 조상 은혜 잊지 마소 /

보기는 좋지만은 추수가 더 급하다 /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

습한 논은 베어 깔고 마른 논은 메 두드려 /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 콩 팥 가리 /

벼 타작 마친 뒤에 틈 나면 두드리세 /

비단차조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

이삭으로 먼저 잘라 종자로 따로 두소 /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 사람 낫질이라 /

아이는 소 몰고 늙은이는 섬 싸매기 /

이웃집 힘을 합쳐 제 일하듯 하는 것이 /

뒷목 줍기 짚 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

한쪽에서 면화 트니 씨아 소리 요란하다 /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

동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 
밤에는 방아 찧어 밥살을 장만할 때 /

찬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

타작 점심 차려 내니 닭국 배갈 없을소냐 /

새우젓 계란찌게 벌어지게 차려 놓고 /

배춧국 무 나물에 고춧잎 장아찌라 /

큰 가마로 지은 밥이 태반이나 모자란다 /

추수하여 흔할 때에 나그네도 대접하니 /

한동네 이웃하여 한들에 농사하니 /

수고도 나눠 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

이 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

아무리 바쁘지만 일하는 소 보살펴라 /

조피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 / 

 

시월령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 /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

창호도 발라 놓고 쥐 구멍도 막으리라 /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

깍짓동 묶어 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

우리 집 부녀들아 겨울옷 지었느냐 /

술 빚고 떡하여라 강신날 가까웠다 /

꿀 꺾어 단자하고 메밀 찧어 국수 하소 /

소 잡고 돼지 잡으니 음식이 널렸구나 /

들 마당에 치일치고 동네 사람 모여 앉아 /

노소 차례 틀릴세라 남녀 분별 따로 하소 /

풍물패 불러오니 광대가 줄무지라 /

 치고 피리 부니 솜씨가 제법이구나 /

이풍헌 김첨지는 잔소리 끝에 취해 쓰러지고 /

최권농 강약정은 체괄이 춤을 춘다 /

잔 들어 올릴 때에 동장님 높이 앉아 /

잔 받고 하는 말씀 자세히 들어 보소 /

어와 오늘 놀음 이 놀음 뉘 덕인가 /

하늘 은혜 그지없고 임금 은혜 끝이 없다 /

다행히 풍년 만나 굶주림을 벗어났구나 /

향약은 아니라도 마을 규약 없을소냐 /

효제 충신 대강 알아 도리를 잃지 마소 /

사람의 자식 되어 부모 은혜 모를소냐 /

자식을 길러 보면 그제야 깨달으리 /

온갖 고생 길러 내어 결혼을 시켰는데 /

제 혼자만 생각하여 부모 봉양 잊을소냐 /

기운이 없어지면 바라느니 젊은이라 /

옷 음식 잠자리를 정성껏 살펴 드려 /

어쩌다가 병 나실까 밤낮으로 잊지 마소 /

섭섭한 마음으로 걱정을 하실 때에 /

삐죽거려 대답 말고 좋은 얼굴 하여 보소 /

들어온 지어미는 남편의 행동 보아 /

그대로 따라 하니 보는 데 조심하소 /

형제는 한 기운이 두 몸에 나눴으니 /

귀중하고 사랑함이 부모의 다음이라 /

간격 없이 합치고 네 것 내 것 따지지 마소 /

남남끼리 모인 동서 틈나서 하는 말을 /

귀에 담아 듣지 마소 자연히 따르리니 /

몸가짐에 먼저 할 일 공손함이 첫째이니 /

내 부모만 공경하고 남의 어른 다를소냐 /

말씀을 조심하여 인사를 잃지 마소 /

하물며 위아래 도리 높낮음이 분명하다 /

내 도리 다하면 잘못 짓지 않으리니 /

임금의 백성되어 은덕으로 살아가니 /

거미 같은 우리 백성 무엇으로 갚아 볼까 /

갚아야 될 환곡이 그 무엇 많다 할꼬 /

기한 전에 바쳐야 사람 구실 한 것이라 /

하물며 전답 세금 토지따라 나눠 내니 /

생산량을 생각하면 십일세도 못 되나니 /

그러나 굶주리면 재해로 줄여 주니 /

이런 일 잘 알면 세금 내기 거부할까 /
한 동네 몇 집에 여러 성씨 모여 사니 /

서로 믿지 아니하면 화목할 수 없으니 /

결혼을 서로 돕고 장례를 보살피며 /

어려울 때 도와 주고 필요할 때 꾸어 주어 /

나보다 잘 사는 이 욕심 내어 시비 말고 /

그중에도 외로운 이 특별히 구휼하소 /

정해진 자기 복 억지로 못 바꾸니 /

자네들 분수 알고 내 말을 잊지 마소 /

이대로 살아가면 딴 생각 아니 나리 /

주색잡기 하는 사람 처음부터 그랬을까 /

우연히 잘 못 들어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 /

마음이 방탕하여 그칠 줄 모르나니 /

자네들 조심하여 적은 허물 짓지 마 /십일월령

십일월은 한겨울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되었던가 /

몇 섬은 환곡 갚고 몇 섬은 세금 내고 /

얼마는 제사 지내고 얼마는 씨앗 하고 /

도지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 /

꾼 돈 꾼 벼를 낱낱이 갚고 나니 /

많은 듯하던 것이 남은 것 거의 없다 /

그러한들 어찌할꼬 양식이나 아껴 보자 /

콩기름 우거지로 죽이라도 다행이다 /

여자들아 네 할일이 메주 쓸 일 남았구나 /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

동지는 좋은 날이라 양(陽)이 생기기 시작하는구나 /

특별히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

새 달력 널리 펴니 내년 절기 어떠한가/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

공채 사채 다 갚으니 관리 면임 아니 온다 /

사립문 닫았으니 초가집이 한가하다 /

짧은 해 저녁되니 자연히 틈 없나니 /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

여러 소리 재잘거림이 집안이 재미구나 /

늙은이 일 없으니 돗자리나 매어 보세 /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

짚 넣어 만든 두엄 자주 쳐야 모이나니 /

 

십이월령

 십이월은 늦겨울이라 소한 대한 절기로다 /

눈 덮힌 산봉우리 해 저문 빛이로다 /

새해 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가 /

집안 여인들은 새 옷을 장만하고 /

무명 명주 끊어 내어 온갖 색깔 들여 내니 /

짙은 빨강 보라 엷은 노랑 파랑 짙은 초록 옥색이라 /

한편으로 다듬으며 한편으로 지어 내니 /

상자에도 가득하고 횃대에도 걸었도다 /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장만 하오리라 /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

설날 고기는 계에서 나오고 북어는 장에 가서 /

납평일에 덫을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가 /

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 /

깨 강정 콩 강정에 곶감 대추 생밤이라 /

술동이에 술 들이니 돌 틈에 샘물 소리 /

앞뒷집 떡 치는 소리 예서 제서 들리네 /

새 등잔 세발 심지 불을 켜고 새울 때에 /

윗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떠들썩하다 /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 세배 하는구나 /
어와 내 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

일 년 내내 힘들지만 그 가운데 즐거움 있네 /

위로 나라를 받들고 아래로 부모를 봉양하니 /

형제 처자 혼인 장례 먹고 쓰고 하는 것을 /

농사 짓지 아니하면 돈 감당 누가할까 /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

배 부려 일을 삼고 말 부려 장사하기 /

전당 잡고 돈 꿔주기 장날에 이자 놓기 /

술장사 떡장사며 주막차리고 가게 보기 /

아직은 잘살지만 한 번을 실수하면 /

거지 빚쟁이 살던 곳 남은 자취도 없다 /

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느니 /

계절도 가고 오고 농사도 풍흉 있어 /

홍수 가뭄 바람 우박 없기야 하랴마는 /

열심히 힘을 쏟아 온 가족이 한마음 되면 /

아무리 흉년이라도 굶어 죽지 않으리니 /

내 고향 내가 지키고 떠날 뜻 두지 마소 /

하늘은 너그러워 화를 냄도 잠깐이로다 /

자네도 헤아려 십 년을 내다보면 /

칠분은 풍년이요 삼분은 흉년이라 /

가지 생각 말고 농업에 오로지 하소 /

하소정 빈풍시를 성인이 지었는데 /

이 뜻을 본받아서 대강을 기록하니 /

이 글을 자세히 보아 힘쓰기를 바라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