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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교사의 대거 당선을 바라보며

淸潭 2014. 6. 6. 11:05

현대 철학의 여명을 열었던 니체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도 떠올리고

방송을 보면서도 떠올리기도 한다.

그만큼 이 천재가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는 '획일화'를 싫어했다.

기독교도들은  기독교라는 하나의 법리가  온 세상을

덮기를 바라고 있는 데, 왜 그래야 하나라고 반문을 제기하였다.

내가 유신론자라고 하여 무신론자인 상대에게 신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개성의 가치가 서양에서는 개인주의로 발달해왔으나

그 서양의 의식들이  동양에 이식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상대의 개성을 이해하는 문화란

눈을 씻고도 찾아볼 길이 없다. 

중은 목탁을 치고  목사는 설교를 하고 있을 따름이지

마음은  명심보감의 말대로 對面共話 心隔千山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마음은 천개의 산이 가로막혀 있다]격이다.

전교조 교사와  비전교조교사가 한 교무실에서 책상을 맞대고 있으나

참으로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제 그 전교조 교육감들이 이 번 선거에서 대거 당선되었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화 교육을 우려하지는

않는다.  내가 참으로 우려하는 것은   전교조 교사라는 타이틀의 심화이다.

그들은 이번의 승리를 기화로  대척 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논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거나, 그들의 논리를 옳은 것 마저도 뒤집으려고 든다면  우리 교육 현장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 혼란을 우려한다.

요즘 나는 주말하다 하는 드라마 '정도전'을 재밌게 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정몽주 정도전 등이 재세하였던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간혹하게 된다.

정몽주는 요즘의 용어로 쓴다면  강력한 보수주의 정치가였다.  그는  정도전을 중심

으로 하는 진보세력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정도전은  그 섬약한 문인 출신의 정몽주를 폭력으로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고군분투하면서 명분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급진적인 이방원이 정몽주를 해치고

만다. 이때부터 이방원과 정도전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왕이 되고 싶었던

이방원은  조선 개국의 최고의 공신인 정도전마저 해치는 지경에 이른다.

정몽주가 죽을 때도 오십대였고, 정도전이 죽을 때도 오십대였고, 다시  이방원이

죽을 때도 50대였다.  특별히 더 장수하지도 못한 인물들이나 그 죽음의 의미는

酷別하였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자신의 논리에 충실하였지만  이방원은 자신의 

덧없는 욕망을 좇아갔을 따름이다.  그는 정몽주 정도전은 물론이요,자신의 이복 동복의

형제,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  후일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의 장인까지 죽이는,

피에 환장한 흡혈귀에 다름 없었다.  그가  죽기 얼마전에  아들인 세종을 앉혀놓고

"나는 세자의 치세에 장애가 됨직한 자들을 모조리 쳐내어 모든 악명은 내가 들을 테니

세자는 성군이 되세요." 했다지만   궁색한 논리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은 다 죽거나 몰락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자주 그런 살의를 느낀다.

이 사람에게 네로나  연산군이나 한무제 같은  절대무이의  권병이 쥐여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나 싶어질 때가 있다.

지독한 새누리당 지지자를 만나면  모든 민주당나 진보당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게 가능하여  어느날 새누리당 일당만이 우리 나라에 존재한다면

우리 나라는 지상 천국이 실현될까.  그건 마치 미친 불교도 한 사람이 불국토를 바라는

것과 똑 같은 일이리라.

지상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당인 새누리당 내에서 다시 세포 분열 하게 된다.

비둘기파와 매파가 갈라지는 것이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숙명이다.

지독한 진보주의자를 만나면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한다.

50대 이상은 다 죽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이다.

지독한 전교조 교사도  또한  비슷한 경우라 하리라.

그래서는 안된다.

살인자 조차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살인할 수 밖에 없는

그 나름의 필연을  가지는 법인데,  나와 다른 당색, 지역, 논리를

가지고 있는  상대라면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이해되는 부분도

많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전교조라는 이름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일부에서 우려하듯 학생들에게 이상한 이념 교육을 시킬까봐

우려하지는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하지는 않다.

다만 그들의 아집, 주장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전교조라는 아성을 쌓고

교육의 이분화를 더욱 가열화시키지 않을까봐 그걸 두려워한다.

전교조의 논리에 충실할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할 때만이  역설적이게도 전교조 당신들이 바라는 [참교육]이 

살아나지 않을까.

가져온 곳 : 
카페 >한문방(漢文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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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덕조당|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