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인간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고 한다.
비 오는 날엔 우산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잠 오지 않는 날이면 술 한 잔이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수면제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계를 탈 차례가 오면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한다.
독감에 걸려도 괜찮다고 한다.
텔레비젼에는 약 광고가 많으니까
약방은 다방보다도 많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광대가 줄을 타다 떨어져도 그것은 서커스니까
괜찮다고 한다.
아이가 자동차에 치여도 그것은 암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한다.
철새들이 죽어도 그것은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한다.
도시의 어스름한 골목길에서
속옷을 벗어야 하는 계집애들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도
나에겐 약혼자가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온실을 가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겨울 가로수의 늙은 가지들을
지붕을 가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노숙자 위에 내리는 저녁 이슬을.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밤마다 대들보를 긁는 극성스러운 쥐들을.
차표나 극장이나 호텔이나 무엇이든
예약을 끝낸 사람들은 근심하지 않는다.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괜찮다고들 한다. 죽음까지도 보험에 들었으니
괜찮다고 하다.
손톱을 다듬다가,귀를 후비다가,양말을 갈아 신고
넥타이를 매다가,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다가
혼잣말처럼 괜찮다고
괜찮다고 중얼거린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한다.
모두 옛날 이야기를 하듯이 말들을 한다.
만화책을 보듯이 말들을 한다.
오늘도 해가 뜨니 괜찮다고 내일도 해가 뜨니 괜찮다고.
"어서 오십시오'라고 백화점 문지기들처럼 말들을 한다.
그런데도 누군가 울고 있다.
전혀 소리없이 눈물을 누군가 흘리고 있다.
해가 뜨는데도,
약 광고가 있는데도,
우산이 있고,
수면제가 있고,
봄이 오고 있는 데도,
크리스마스가 왔는데도....
누군가가 지금 슬프게 울고 있다.
주여! 여기 보세요 아무 말 못하고 기다리고만 있는...
주님 오실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주여! 제 영혼을 '님' 계신 그 곳으로 거두어 가소서...
'제발'...
(식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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