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法대로'는 직무 방임이다
김정하 前 감사원 사무총장·미국 뉴욕주 변호사
행정 위주의 강력한 성장 정책은 한편으로 사회적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정의 실현이 국가적 과제가 되어 한때 국가 발전의 축을 이루었던 공무원과 대기업은 이제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사정의 주된 표적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 사이에 국가 발전과 국민 복리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보다 소극적으로 법대로만 업무를 처리하여 사정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 낫다는 자조적 의식이 팽배하게 된다. 새마을운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뛰었던 공무원들의 그 적극적이고 과감했던 '행정'이 사라진 것이다.
"억울하면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무원은 무엇 때문에 있는 거야?" 소리치는 어느 민원인의 푸념은 우리 행정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이 법대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법대로'가 냉소적으로 변하면 '복지부동'의 핑계거리로 전락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공무원이 법대로만 하는 것은 '합법적인 태업(sabotage)'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본래 행정은 법의 영역 안에서 법이 예정하지 못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조성·관리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그런데 행정 공무원들이 법이 없어 못한다느니, 법적 의무도 아닌데 쓸데없이 일을 만드느니 하면서 팔짱을 끼고 있으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성공한 모델인 새마을운동이라는 '행정 경험'을 유산으로 갖고 있다. 물론 저개발국 시절의 모델을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이유를 알아야 새로운 발전 모델도 나올 수 있다.
먼저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에서 볼 수 있듯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를 부단히 만들어 내는 '부지런한' 행정이 되어야 한다. 이는 행정의 존재 이유이자 본질적 기능이다. 그렇게 하려면 행정 환경의 변화 추이를 잘 모니터링해 예상되는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살아 있는' 행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과거의 가족계획 정책처럼 우리는 행정이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안주해 있다가 사회적 문제가 가중되거나 악화된 사례를 많이 보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식 개발 행정이 무에서 유를 찾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만들어냈듯 선진국에 맞는 새로운 '맞춤형' 국가 발전 모델을 창조하여 국민적 합의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불균형 성장론으로 잘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낳은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국민 화합'의 행정으로 '모두 잘살아 보세'라는 새마을정신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국식 행정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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