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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음식에 손을 댄 부인에게 퇴계 선생은…

淸潭 2013. 1. 2. 15:07

 

제사 음식에 손을 댄 부인에게 퇴계 선생은…

기사입력 2013-01-02 \

 

"퇴계 선생의 낮춤과 섬김의 정신 배워야"
'퇴계처럼' 펴낸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조부의 제삿날 일가친척이 큰집에 모였다. 제사상을 차리느라 모두 분주히 움직이는데 제사상 위에서 배가 하나 떨어졌다. 막내며느리가 재빨리 배를 집어 치마 속에 숨겼다. 이를 본 첫째 며느리가 동서를 크게 나무랐다. 나중에 이를 전해 들은 막내아들은 부인을 따로 불러 치마 속에 배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 부인이 배가 먹고 싶어서 숨겼다고 하자 그는 치마 속에 감춘 배를 달라고 한 뒤 손수 배를 깎아 부인에게 줬다.

조선 시대 대유학자 퇴계(退溪) 이황(1501-1570)과 그의 아내 권씨 부인의 이야기다.

퇴계는 신성한 제사 음식에 손을 댄 부인을 꾸짖기는커녕 직접 배를 깎아 부인에게 줬다.

김병일(67) 한국국학진흥원장은 "퇴계의 이런 태도는 부인인 안동 권씨의 모자람을 채워주고자 했던 것"이라면서 "인간 중심적 사고에 바탕한 배려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퇴계와 여인들의 관계를 통해 퇴계의 삶과 철학을 재조명한 '퇴계처럼'(글항아리)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퇴계의 삶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다"면서 "할머니, 어머니, 첫째 부인, 둘째 부인,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로 이어지는 '퇴계의 여인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거나 큰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2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퇴계 선생이 살았던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자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가부장적 사회였는데 어떻게 여인들에게 그렇게 잘해줄 수 있었는지 처음엔 너무 의아했는데 나중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퇴계 선생을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로 모시면서도 과연 퇴계 선생이 어떤 분이고 어떤 가르침을 줬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퇴계 선생의 삶을 소개하면서 인터뷰 내내 "감동"이라는 단어를 연발했다.

"부인, 며느리, 손자며느리와의 일화, 편지글에서 엿볼 수 있는 퇴계 선생의 모습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을 받았던 퇴계 선생은 아랫사람, 특히 여인들에게 섬김과 낮춤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선생은 우월한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을 낮추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더 받들려고 했습니다. 제가 감정이 무딘 사람인데도 감동,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김 원장은 퇴계 선생의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불과 50년 만에 잘살게 됐지만 삶의 질에서는 조상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잘 살면서도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선비들이 살아왔던 길에서 많은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첫 출발점이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인 퇴계 선생의 삶입니다. 퇴계 선생 당대에는 유학을 도학(道學)이라고 했는데 도학은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다운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퇴계 선생은 평생을 자신을 낮추며 사람답게 살아가셨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원장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국학 진흥 보급에 힘쓰고 있는 김 원장은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 도서 발간, 조선시대 일기 자료를 이야기 소재로 제공하는 '스토리 테마파크' 사업 등을 통해 선비 정신과 우리의 옛 이야기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번에 펴낸 '퇴계처럼'은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나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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