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이것 저것

[오늘의 세상] 39년만의 만남

淸潭 2011. 7. 13. 14:52

 

[오늘의 세상] 39년만의 만남

1972년 평양 공항의 3人… 김현희·이동복·하기와라(日공산당 기관지 특파원), 그때를 추억하다
이동복 당시 남측 대변인 "꽃준 소녀에 꽃 이름 묻자 조선 꽃도 모르냐며 소리쳐"
김현희 당시 중1 "당시 生花 꽃다발 처음 봐… 갑자기 물어봐 당황했죠"

지난 1972년 11월 2일 오전 평양 근교 역포 지역의 널찍한 공터.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을 태운 헬기가 내렸다.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대변인 자격으로 참석했던 이동복(74)북한민주화포럼 대표, 1987년 11월 KAL기 폭파범 김현희(48)씨.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평양 특파원 하기와라 료(74)씨가 이 현장에 있었다. 김현희씨는 당시 중학교 1학년으로 남측 인사들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기 위한 화동(花童)으로 한복을 입고 줄에 서 있었다. 하기와라 료는 화동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세 사람은 서로가 누구인지 몰랐다.

꽃다발 소녀 김현희…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대표단에게 꽃을 전달하려고 한복을 입고 서 있던 북한 소녀들. 현장을 취재했던 요미우리신문 사진 기자가 촬영한 이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현희다. /국정원 제공
2011년 7월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기구한 인연을 가진 이 세 사람이 다시 만났다. 39년 만의 재회였다. 당시 남측 대표단 일행으로 참석해 김씨로부터 꽃다발을 건네 받았다는 이동복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꽃을 건네주는 아이한테 '꽃이 참 예쁜데, 이 꽃의 이름이 뭐지'하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아이 얼굴이 굳어지더니 대뜸 '조선 사람이면서 조선 꽃도 모릅네까'라며 소리칩디다."

김씨는 당시 꽃다발을 받은 인물이 이 대표인지는 몰랐지만, 이 대화는 생생히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생화(生花) 꽃다발은 그때 처음 봤는데, 난데없이 꽃 이름을 물어봐 엄청나게 당황했었다"며 "조국에 망신을 줘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아 임기응변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기와라씨는 김씨에게 평생의 은인이다.

"꼭 한번 만나뵙고, 감사하단 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지난 정부 시절에 저는 완전히 '가짜'로 몰려서 도망치듯 숨어지내야 했어요. 그때 하기와라씨가 사진을 찾아내 저를 '진짜'로 증명해주셨어요."

김씨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하기와라씨는 비행기 폭파 사건 발생 후 김씨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1988년 일본 공산당 화보집을 통해 화동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하기와라씨는 사진의 한 소녀를 지목해 '김현희인 듯한 소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김현희라고 지목한 소녀는 사실은 김씨가 아니었다. 성인이 됐지만 귀를 비롯한 얼굴 모양새가 너무 달랐다. 북한은 이 사진이 틀렸다며 "사진 속 소녀는 전혀 다른 인물이고, 폭파 사건은 날조됐다"고 공격했다.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대표단 일행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와 당시 이 대표에게 꽃다발을 건넨 KAL기 폭파범 김현희, 김씨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아카하타’의 기자 하기와라 료(왼쪽부터)씨가 사진을 보고 있다. 이들은 39년 만인 12일 서울에서 재회했다.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논란은 이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KAL기 폭파 사건은 정권 안보를 위해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조작한 사건"이라고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좌파 진영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폭파 사건은 완벽한 날조다. 김현희는 북한 출신도 아니고, 공작원도 아니다"는 식으로 몰아세웠다. 사진도 다시 논란이 됐다.

이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사람이 하기와라씨였다. 그는 자신이 지목한 소녀가 김현희가 아니라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다른 증거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현장에서 함께 취재했던 요미우리 신문의 사진기자가 다른 각도에서 화동을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요미우리신문의 기자에게 "내가 틀렸으니 오보(誤報)라고 인정하고 당신이 찍은 사진을 공개하자"고 설득했지만 거부당했다. 북한에 불리한 사진을 공개하면 테러를 당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하기와라씨가 1년 넘게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요미우리신문 기자는 2004년 '위클리 요미우리'에 그가 찍은 새로운 사진을 공개했다. 도쿄 치과대학 하시모토 조교수는 사진을 감정하고 "소녀의 귀와 입술 오른쪽의 종기 흔적이 김현희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하기와라씨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년 넘게 요미우리 신문 기자를 설득한 셈"이라며 "기자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1988년 12월 검찰에 출두할 당시인 20대의 김씨 사진이고, 아래 오른쪽은 11일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새롭게 공개된 사진은 김현희가 북한 출신의 공작원이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2007년 과거사위원회도 "KAL기 폭파사건은 날조된 것이 아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김현희씨는 "지난 정권시절에 나를 가짜로 몰아세우며 거짓 선동을 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활보하고 다니고 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통일도 좋다? 이 땅의 진보는 틀렸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는 지난 2009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건 조작의혹에 대해 “KAL기 폭파 사건은 북한의 테러이며, 나는 더이상 가짜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 오빠인 일본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씨와 면담을 가진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유가족 일부가 조작의혹을 하는데 20년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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