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인물초대석

8년 만에 교사 신축 북경한국국제학교 / 김태선 교장

淸潭 2010. 2. 9. 14:12

[초대석]8년 만에 교사 신축 북경한국국제학교 김태선 교장




중국 베이징에 한국국제학교가 생긴 지 8년 만에 최근 학교 건물을 마련하고 한숨을 돌린 김태선 교장. 2002년 말 부임 이후 학교 건물을 완공하기까지 휴식 없이 살다시피 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맘 푹 놓고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30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시 차오양(朝陽) 구 왕징(望京)의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 만난 김태선(54) 교장의 아랫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교사(校舍) 신축공사 마무리를 위해 밤늦게까지 무리를 하는 바람에 몸이 아직까지 회복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힘과 웃음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징의 한국국제학교가 문을 연 지 8년 만에 ‘내 집’을 마련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결혼 12년 만에 어렵게 장만한 서울 상계동의 34평형 아파트보다 북경한국국제학교를 더 아낀다. 그만큼 그의 땀과 정성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31일 북경한국국제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뒤부터 20일 학교 건물을 완공하기까지 그는 쉬어 본 날이 거의 없다.




교사 신축 자금을 모으기 위해 중국에 진출한 기업을 뻔질나게 들락거렸고 돈이 모일 만한 한인(韓人) 모임은 절대 빠지지 않고 챙겼다. 이런 그의 노력에 호응해 베이징의 10만 교민과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십시일반으로 낸 돈이 전체 공사비의 41.1%인 350만 달러에 이른다.

공사가 시작된 2004년 6월 이후엔 평일은 물론 토요일, 일요일에도 자금 및 자재 조달을 위해 공사 감독과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 건물이 거의 완공돼 올해 3월 6일 세 들어 살던 창핑(昌平) 구의 중국인 학교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맘 졸이며 부르던 애국가도 이제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목청껏 부른다. 예전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건물 3층 대강당과 운동장의 태극기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것인지 중국에 오기 전에는 그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한번은 중국인 학교에서 수업 도중 “VIP가 갑자기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으니 빨리 문을 닫고 나가라”고 해서 수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2004년 12월엔 탈북자가 학교에 진입하자 건물을 빌려 준 중국 학교가 한국국제학교의 정문을 봉쇄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울면서 되돌아간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선 지난일의 회한과 함께 미래를 향한 다짐이 묻어난다.

“애국 교육을 통한 정체성 확립,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 목표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은 한국의 일반 학교와 약간 다르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조국을 잊기 십상이다. 현지 국가 위주로 배우다 보면 조국의 언어와 역사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래서 그는 실과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교과과정을 모두 그대로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이곳 학생들은 한국 학생보다 수업 시간이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많다. 한국의 정규 수업을 그대로 진행하면서 영어와 중국어를 매일 한두 시간씩 배우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 어린이들이 또래 탈북자 친구들에게 우유와 과자를 갖다 주는 것을 보고 애국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자기들 수업을 방해한 탈북자들이지만 이들도 똑같은 한민족 한겨레라는 것을 배웠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학교 환경은 전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학생은 유치원생(117명)부터 초등학생(516명), 중학생(161명), 고등학생(113명)까지 총 907명에, 교사가 전임교원 56명을 포함해 총 83명이다. 영어 교사는 절반이, 중국어 교사는 85%가 원어민이다.

대입 합격률도 좋다. 지난해 15명의 고교 졸업생 가운데 한국 소재 대학에 들어가기를 희망한 11명 중 9명이 시험에 합격했다. 베이징 소재 대학을 가려는 4명 중 한 명은 베이징대에 합격했고 나머지 3명은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미국처럼 9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우리 학교 덕분에 미분양률이 50%를 넘던 주위 아파트들이 모두 팔렸습니다. 한국국제학교에 떨떠름해하던 중국인들도 집값이 오르면서 아주 좋아합니다.”

김 교장에게 이제 예전의 설움은 모두 추억이다. 교사 생활 30년째인 그에게 남은 일은 후세를 잘 가르치는 것뿐이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