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
모든 길 가운데서 부처님이 말씀한 여덟 가지 바른 길이 뛰어나고 모든 진리 가운데서 고통을 없애는 네 가지 진리가 뛰어나며 모든 덕 가운데서 욕망을 버리는 덕이 뛰어나고 모든 사람 가운데 눈 밝은 이가 가장 뛰어나다 - 『법구경』 |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말할 때도, ‘길에서 태어나서 길을 걸으며 길을 가르치다가 길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일생을 예언하듯 어머니 마야부인이 출산을 하기 위하여 친정으로 길을 재촉하다가 길가 룸비니 꽃동산에서 부처님께서 탄생하셨다.
그리고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이룩하신 이후 45년간 길을 걸으면서 길(道)을 가르치시다가 사라쌍수 길가에서 참으로 고요히 생을 마감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 세존이시다. 그분이 걸으신 일생의 길은 모든 집착을 버린 길이며, 허영과 탐욕을 벗어던진 길이기도 하다. 자신이 걸은 길을 뒤에 제자들이 잘 따라서 걷게 하기 위하여 진리의 길을 교법(敎法)으로서 정형화 시켜놓으셨다.
걸식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그날 종일 걸은 길에 대해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기위하여 온종일 걸어 다닌 길은 밖에 펼쳐진 길이지만, 우리의 삶을 진리로 이끌어 주는 교법의 길인 여덟 가지 올바른 길(八正道),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참다운 길을 제시하는 네 가지 진리의 길(四諦)이 참으로 중요한 길이라고 깨우치셨던 것이다.
길에서 일생 보낸 붓다의 가르침
이 네 가지 진리의 길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苦集)과 괴로움을 소멸한 열반과 그 열반에 이르는 8정도(滅道)를 의미하는 진리의 길이다. 이 네 가지 진리의 길을 걸어서 편안하고 고요한 열반의 세계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꼭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부처님은 가르치셨다.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은 곧 8정도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내다볼 수 있는 견해(正見)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면 첫 시작부터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올바른 생각, 정사유(正思惟)이다. 매 순간 떠올리는 생각이 올바르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이 올바르지 못하면 생각을 쫓아서 나타나는 모든 행위가 다 올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생각을 쫓아서 나타나는 첫 번째의 현상은 우리들의 언어이다. 오고 가는 언어가 진실하고 어질(正語) 때, 세상은 순화된다. 거칠고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는 제일 먼저 우리들의 언어가 거짓말, 남을 헐뜯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잡담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언어의 뒤를 이어서 올바른 행동(正業)이 따르게 된다. 살생이나 도둑질 등 문란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곧 선한 삶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올바른 행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활방법인 정명 (正命)이 필요하다. 바른 생활방법이란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의 의식주를 채워가는 일을 뜻한다. 올바른 생활방법을 선택하고 하루하루를 참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곧 정정진 (正精進)인 것이다. 올바른 노력이란, 사정근(四正勤)이라고 하는 네 가지 바른 노력이 있다. 곧 이미 생긴 악은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하려고 노력하고,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자라게 하려고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는 것을 올바른 노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이들 모두를 끊임없이 지속시키고 유지시켜가는 사념처(四念處)라고 하는 정념(正念) 수행이 필요하다. 곧 올바른 기억으로서, 우리의 신체는 깨끗하지 못한 부정(不淨)한 물건이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과 우리의 밖을 향한 감각은 매순간 괴로운 것이므로 떨쳐버리려는 생각, 마음은 항상 변화하여 영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모든 현상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관찰을 떠올리는 것이 정념 수행이다.
팔정도는 고통 뛰어넘는 지혜의 길
마지막으로 이 모두를 올바른 선정으로서 심화시켜 가는 일이다. 곧 이는 정정(正定)이며, 바른 선정으로서 바르게 마음을 집중하는 것 즉 삼매(三昧)의 경지를 얻은 정신적 상태이다. 이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은 세상의 고통을 뛰어넘어서 열반의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길이며 진리의 길인 것이다.
부처님은 고통에 허덕이는 우리 모두에게 초지일관 이 여덟 가지 정도(八正道)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열반에 나아가라고 가르치셨다. 여래는 이와 같이 길을 제시하셨을 뿐, 그 길을 걷고 걷지 않는 것은 길을 가는 우리 각자의 몫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스스로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불교의 냉엄(冷嚴)함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는 부처님이 제시하신 이 진리의 길을 각자 묵묵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청허휴정선사는 우리들에게 주의를 주신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踏雪野中去) 모름지기 자신의 발길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今日我行跡)가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遂作後人程)’이라는 경책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진리의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1001호 [2009년 06월 09일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