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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 기록’ 조성기 발견

淸潭 2009. 6. 8. 12:18

‘어사 박문수 기록’ 조성기 발견

창원 성주사 석가모니불 복장서

 
 
 
 
 
 
 
 
 
 
 
 
 
 
 
 
 
맨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729년에 쓰인 ‘개금불사 등에 관한 복장문’. 1655년 불상 조상당시 작성한 ‘신조불상시주기’.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의 모습.
 
 
17세기 조성 기록 발견…寺名도 ‘웅신사’로 확인
 
복장물서 관찰사 박문수 관련 내용도 확인 ‘눈길’
 
 
창원 성주사(주지 원정스님)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석가모니불 복장(腹藏)에서 조선 효종 5년(1655) 불상조성 당시 쓰인 시주기(施主記)와 영조 5년(1729) 개금불사 관련 복장문이 수습됐다. 이 가운데 복장문에서 암행어사로 잘 알려진 박문수(朴文秀, 1691~ 1756)와 관련된 기록이 확인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대웅전 삼존불에 대한 개금불사를 입재한 성주사는 지난 5월28일 경남도문화재위원인 이용현 동아대 교수 등 관계자 입회하에 안심료 염화실에서 주존불 복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가졌다. 이날 개봉된 석가모니불 복장에서 1655년 쓰인 ‘창원 웅신사(雄神寺) 신조불상시주기(新造佛像施主記)’와 함께 1729년 ‘개금불사 등에 관한 복장문(腹藏文)’ ‘(북방불기) 2956년(1929년) 개금불사 발원문’ 등 여러 전적물이 발견됐다.
 
전적류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1665년 시주기는 성주사 목조삼존불상 17세기 중반에 조성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간 조선 후기로만 추정됐던 불상의 편년을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또 당시 성주사의 이름이 ‘웅신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729년 개금기록문에는 사찰의 역사와 당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적혀 있다. 가장 먼저 앞서 ‘경상우도 창원 남면 불모산 성주사…’에서 ‘웅신사’로 표기 됐던 사찰명이 ‘성주사’로 변경됐음을 알 수 있다. 개금 당시 주지 스님의 법명도 확인된다. 당초 성주사는 신라 때 무염스님(800~888)이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이후 진경(眞鏡)스님이 중흥했다고 전해져 왔었다. 그러나 이번에 복장문에서 진정(眞淨)스님의 이름이 확인됨에 따라, 성주사 중흥조가 진경스님이 아닌 진정스님이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또 오늘날 개금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도금(塗金) 또는 면금(面金)으로도 표기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경상우도관찰사인 ‘어사 박문수’와 불교의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록도 나왔다. 박문수는 영조 3년(1727)에 ‘영남 암행어사’를 제수 받아 활약하고 이듬해 경상우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는 문수보살의 가피로 태어나 문수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화개동천 100여개 사찰을 폐사하려고 하동 칠불사 아(亞)자방을 찾아갔다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설화 등이 전해지는 인물이다. 기록문에 나와 있는 ‘본도방백(本道方伯) 박문수’와 동일인으로 추정되는데, 경상우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듬해에 개금불사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는 “그간 박문수와 불교와 연관된 여러 설화가 일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번 개금불사를 통한 복장물의 정밀 번역과 확인에서 많은 학술적 사실이 규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용현 교수는 “불상이 나무로 조성된 것을 감안하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며 “조선시대 목조 삼존불로서 귀중한 가치가 확인된 만큼, 서둘러 문화재지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성주사는 복장물에 대한 보존처리 및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오는 7월2일까지 본존불에 대한 개금불사를 마치고 회향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권순학 경남서부지사장
 
[불교신문 2531호/ 6월10일자]
2009-06-06 오후 5:55:25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