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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답 사 기 - 5
秋史 金正喜先生 古宅 및 修堂 李南珪先生 古宅
2008년 10월 16일 인터넷博約會
1. 秋史古宅
秋史 金正喜先生(1786-1856),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던가. 나는 거의 평생을 고향을 떠나 살면서 때로 친구들로부터 ‘멍청도’라는 놀림을 받으면 예외없이 반격하는 자료가 있었다. 첫째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요, 고려 말의 崔瑩장군, 조선조 말의 金佐鎭장군을 비롯하여 成三問, 韓龍雲, 沈薰선생이며, 尹奉吉의사와 金大建신부까지도 모두 내고장 內浦의 宗山인 伽倻山줄기의 洪城, 禮山, 唐津에서 배출한 이물들이다.
선생은 그 특유의 글씨체인 秋史體로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널리 알려진 절세의 神筆이었고, 글씨에 못지않게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문장에 못지않게 빼어난 화가였는가 하면 經學과 金石學에도 뚜렷한 업적을 남긴 탁월한 학자이기도 했다.
세도정치에 밀려 남으로는 제주도에서 북으로는 함경도 북청까지 오르내리는 외롭고 괴로운 유형길에 부대껴야 했고, 유배지에서 부인 禮安李氏의 부음을 듣는 슬픔을 겪기도 했지만 전후 13년의 유배기간을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여 대성을 이루신 분이다.
추사고택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옛 양반가의 모습이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동향을 하고 있고 사랑채는 그 옆에 ㄱ자형으로 남향을 하고 있는 것이 좀 이채롭다. 이 집은 서울에서 京工匠(한양에서 나라 건축을 전담하는 목수)을 불러다가 지은 53칸의 저택이다. 추사의 증조할머니가 영조의 큰 딸 和順翁主였다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사랑채 화단 앞에는 자그마한 사각 빗돌에 선생이 직접 써서 새겼다는 石年이라는 ‘해시계’가 서 있고, 고택 옆에 있는 선생의 묘는 봉분도 나지막하고 석물치장도 소박하지만 묘역이 잘 가꿔졌으며, 잘 생긴 반송 한 그루의 운치가 자못 그윽하다.
오른쪽으로 둔덕을 하나 넘으면 추사의 증조모 화순옹주의 묘와 정조가 내렸다는 烈女門이 서 있고, 거기서 또 좀 더가면 잘 가꿔진 선생의 고조부 묘 앞에 선생이 燕京에서 씨를 가져와 심은 200년된 白松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시간에 쫓기어 가보지 못했다.

추사선생 학예술비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것이 정원 한 가운데 서 있는, 아담한 오석 빗돌에 새겨진 그 유명한 歲寒圖이다. “한 겨울이 된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는 뜻의 이 세한도는 선생이 제주도 유배시절에도 변함 없이 찾아주고, 역관으로서 연경에 갈 제마다 새로운 서적을 구해다 준 고마운 제자 李尙迪에게 그려 주었다는 작품이다.

추사고택의 사랑채, 왼쪽에 ㅁ자형의 건물 안채가 보인다.

左: 사랑채 기둥에 걸인 주련, "화법은 장강만리의 기품을 지녔고 서예는 외로운 소나무의 한 가지와 같다.(畵法有長江萬里 書藝如孤松一枝)고한 시를 쓴 선생의 친필. 입구에서 본 秋史先生學藝術碑의 세한도 위에 새긴 것도 같은 글, 같은 글씨이다.
右: 선생께서 직접 쓰고 새긴 해시계 '石年'
2. 修堂古宅
해가 서산에 걸렸으니 못 다 본 아쉬움을 접고 걸음을 재촉하여 수당고택으로 향하야 했다. 修堂 李南珪선생(1855~1907)은 高麗三隱의 한 분이신 牧隱 李穡, 선조조에 大提學과 領相을 지내신 鵝溪 李山海선생의 후예로서 조선 말기의 文臣이요 義士이셨다.
학문과 덕망이 높았으며 1875년 司馬試에 합격하고 벼슬이 參判에 이르렀다. 明成皇后弑害事件 후 永興府使를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고, 후에 홍주의병장 閔宗植을 숨겨준 혐의로 공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지만 다시 일본군에게 잡혀 溫陽의 한 냇가에서 아들 忠求씨와 함께 피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고 한다.
이 고택은 인조 15년(1637) 아계선생 묘소 근처인 이곳에 건립하였고 헌종 12년(1846)에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ㅡ자형 사랑채와 ㅁ자형 안채, 그리고 별당 平遠亭이 있지만 현재 보수중이어서 사진을 찍지 못햇다.
고택 옆의 넓은 대지에는 수당선생의 종손인 李文遠교수가 새롭게 수당교육관을 건립하고 지난 9월 25일에 개관식을 가졌다고 한다. 교육관에 전시된 수당선생의 사적과 유품, 그리고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가보에 대한 이교수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을 들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행한 韓國簡札資料選集의 하나인 '禮山 韓山李氏 修堂古宅篇'을 한 권씩 받기도 했다.

새로 지은 수당교육관


전시된 수당선생 흉상 평원정에서 의병모의하던 선생의 모습

수당선생 부자 순절지 수당성생 문과급제 교지

수당고택 가보1호 목은 이색선생의 친필 한시
人情何似物無情 觸境年來漸不平 偶向東籬羞滿面 眞黃花對僞淵明
인정이 어찌 사물처럼 무정하랴! / 근래에는 닥치는 일마다 점점 더 편치 않네./ 우연히 동쪽 울타리를 향하다가 부끄러움이 낯에 가득하니/ 진짜 국화가 가짜 도연명을 대하였기 때문이라.
* 목은선생의 시 '對菊有感' 3수중의 한 수이다. 국화를 바라보고 도연명의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이라는 시를 생각하며 자신을 가짜 도연명으로 자처하고 있다.
이로서 의욕적이었던 일정을 모두 소화해 낸 셈이다. 走馬看山이었지만 그래도 남는 것은 많았을 것이다. 누가 말했다던가? "살아온 나이와는 관계 없이 추억이 많은 사람이 오래 산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하루는 다른 날의 10일, 20일에 해당하리라. 오늘의 일정을 마련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리고 강행군을 함께한 우리 모두에게 변함 없는 건강이 늘 함께 하기를 빈다. 觀 齋 朴 完 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