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양식(424) : 상기하자! 북한 김일성 군대가 남침한 민족 비극-625 한국전쟁
☆ 6·25전쟁 [六二五戰爭, Korean Conflict]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04:00시에
김일성(金日成)의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기습공격-
남침( 南侵)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 그들이 동족이라는 한반도 수백만 인명은 살상되고,
국토는 폐허가 되어 해방된지 몇 년지난 한반도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어디에도 행복(幸福)은 없었다.
☆ 이들은 이미 동족이 아니며, 오직 우리 국민을 죽이고,
대한민국을 적화(赤化)하려는 주적(主敵)일 따름이다.
☆ 그럼에도 해방전쟁(DJ, 강정구 등), 북침전쟁이라며
역사를 속이는 자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 625 실상을 모르는 젊은 이들에게 가르쳐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김정일 공산도당화 되는 不幸은 막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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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들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아는가 ? **
압록강에 첫발을 딛고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10월26일 오후 5시50분, 함경남도 혜산에 도착한 6사단 7연대 수색대원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 1.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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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분단된 조국과 함께 자유를 찾는 일가족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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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전쟁고아의 모습 1950년 9월 28일 서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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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 한국전쟁 피난민-전쟁고아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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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길에 오른 한국의 어머니-갓난 아기에 젖은 물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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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극장 '한국전쟁'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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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미군 등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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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피난민. 전쟁고아 (조지 풀러 유작전)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게 살아 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슬픈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 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하다.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 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헬로, 쪼꼬�" 소리치며 따라다니던 한국인이었다.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 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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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광경.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피난민들이 `유엔`군의 `LST`를 다투어 타고 있다. 이 사진은 미공개기록사진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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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함정을 타려고 흥남부두에 쇄도한 북한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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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 흥남철수 성공뒤엔 `기적의 배`가... 59명 정원 메레디스 빅토리호 피란민 1만4000명 자유의 품으로 인도. 1만4000명의 피란민은 물도 약도 없이 3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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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남으로... 50년 7월29일 국군의 소개명령으로 지게나 소가 끄는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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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속에서 노숙하는 전란민 가족(195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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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시가와 전난민들(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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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동포의 목숨 건 남하 행렬 - 1950년 12월4일 평양을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북한동포들은 이렇게 부서진 대동강다리를 결사적으로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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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때 서울시민들이 철도에서 피난하고 있는 모습 - 이고지고..피란행렬. 51년 1.4후퇴 때 서울시민들이 철도를 따라 피란하고 있다. 피란 보따리 위에 어린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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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피난생활 "금지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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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철수 당시의 피난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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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 부산의 천막촌.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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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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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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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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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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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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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2. 한국전쟁 전투-한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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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8선(한탄강)을 돌파하고 북진중인 육군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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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으로 긴급 출동하는 국군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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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 전선투입 -인민군을 격퇴하기 위해 국군병사들이 50년 7월5일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몸에 맞지않는 군복과 누비담요, 소총등으로 무장한 것으로 보아 학도병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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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으로 푸는 가마솥밥 -1950년 7월14일 전선에서 국군 취사병들이 임시로 가설한 가마솥에 밥을 지은 뒤 소쿠리에 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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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에 참가중인 해병대 - 1949년에 제주도에서 창설되어 6.25개전이래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한국해병대는 1950년 9월15일 UN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상륙용 주정에서 아군의 함포사격으로 검은 연기 싸인 기슭을 바라보면서 상륙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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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인천상륙작전> 서울에 돌입한 국군선봉대 - 패주하는 인민군을 쫓아 진격을 거듭한 상륙 동진부대 국군과 UN군은 9월15일 드디어 한강을 건너서 9월 26일까지 인민군을 완전 소탕, 서울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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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략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국군1사단 장병들 - 평양 제2의 관문인 보통문이 보인다.(195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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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상의 간이 아치.(1950) 38선돌파 기념으로 우리 국군들이 세운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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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아침. 평양입성...평양. 화신앞 모란봉 가는길. 신상철(7사단장)씨와 함께 인민군의 말을 타고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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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입성을 환영하는 함흥 시민들.(195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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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변에 감격의 태극기 - 1950년 10월26일, 국군 선봉대 용사들이 만주를 눈앞에 바라보는 압록강 기슭 혜산진에 도달하여 감격에 벅차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고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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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출격 - 북한의 상공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공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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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뿜는 무반동총 - 육군이 무반동총을 지급받아 무장한 것은 6.25전란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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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공군기의 출격 -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무스탕 전투기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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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군기의 출격 -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F-51 전폭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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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중 국군을 위문하고 있는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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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2004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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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2004 NARA
# 3. 한국전쟁 전투-인민군 #
美맨스필드硏 한국전쟁 연구서 `잊혀진 전쟁을 기억하며" 출간 - 사진은 부산 인근에서 벌거벗은 채 줄맞춰 이동 중인 인민군 포로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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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격 준비 - 북한 공군조종사들이 긴급 출격을 위해 소련제 야크18 전투기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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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의 망중한 - 북한 인민군 전사가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를 참호속에서 읽고 있다. 시점과 장소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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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초기 한국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인민군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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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를 앞세우고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는 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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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탱크들 - 1950년 6월 28일 중앙청을 거쳐 남대문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인민군 탱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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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하의 서울에서 이른바 `의용군` 끌려가는 장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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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때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T-34-85형 인민군 탱크. 중량32t, 최대시속 50km, 승무원 4명으로 인민군 전력의 핵심이었다.
# 4. 한국전쟁 - 38선. 정전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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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을 긋는 순간 -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 대령(왼쪽)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오른쪽)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정을 시작하고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195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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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하오 10시 정각부터 12분간에 걸쳐 조인된 정전협정문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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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땅 지금의 모습 #
인민들이야 굶어 죽더라도, 자신은 상어지느러미로 포식하며, 핵폭탄을 만들고, 군사력 증강에 열올리는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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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북한의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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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625당시 영등포에 사는 5살 어린이였다. 짐짝같은 피난열차를 타고 간 부산에서는 축대밑에 가마니와 거적으로 친 움막에서 피난생활을 하였고, 14후퇴당시는 김포(지금 신정동)로 어머니 손을 잡고 걸어서 피난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 입은 국군이 동네어귀에서 인민군에게 사살 당한 기억이 새롭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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