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농사 노래 / 신경준(申景濬)

淸潭 2025. 4. 4. 07:50

농사 노래 / 신경준(申景濬)

여암유고 제1 / ()

 

비와 햇볕이 알맞아〔雨暘若〕

풍년들지 점쳐보니 / 占年

십 일이나 오 일에 비바람 한 번 몰아쳐 / 十日五日一雨風

창포 잎이 날로 자라고 / 蒲葉日以長

익모초도 날로 무성하네 / 葉日以盛

지금은 어느 때인가 / 今時若孰如

지금은 우리 임금의 성스러운 시절이지 / 今時若我王聖

요 임금 밭은 구 년 홍수 들었고 / 堯田九年墊

탕 임금 밭은 칠 년 가뭄 들었네 / 湯田七年爇

우리 임금의 성스러운 시절엔 / 我王聖

시월 앞 들녘에 세 번 눈이 내렸네 / 十月前郊三番雪

해맞이〔迎陽〕

동쪽에서 아침 해 떠올라 / 東方暾將出

내 벽려 휘장을 비춰 주네 / 照吾薜荔

따스한 햇볕 쬐며 눈 감고 앉으니 / 負暄閉目坐

안으로 녹아내려 온몸이 펴지네 / 內融百骸暢

화창한 기운 남풍보다 나아 / 和氣勝南風

벼와 기장 쑥쑥 자라겠네 / 禾黍勃然興

마루에서 내려와 재배하고 풍년을 비네 / 下堂再拜祝

이슬을 헤치고〔捲露〕

흠뻑 내린 이슬 헤쳐 가니 / 披拂白露繁

내 쇠코잠방이를 적시네 / 沾我犢鼻褌

엿처럼 달콤한 이슬 평원에 가득하니 / 白露甘如飴滿平原

내 기장이 무성하고 / 我黍與與

내 메기장도 번성하리 / 我稷翼翼

옷을 다 적신들 아까울 것 없네 / 盡沾衣不足惜

호미 들고〔提鋤〕

호미 들고 가노라 / 提鋤去

청산에 맑은 물 흐르는 벼논으로 / 靑山白水稻田

호미 들고 오노라 / 提鋤歸

밝은 달 아래 푸른 연기 이는 마을로 / 月明前邨翠煙

백목 끼운 짧은 호미자루 / 白木柄三咫

일 년 삼백육십 일 / 一歲三百六十日

내 목숨 너에게 맡기노라 / 我命托子

김매기〔討草〕

옥수 흐르는 동쪽들에 기름진 논 / 玉水東坪田如脂

옹주의 상상전도 이보다 좋진 못할 터 / 雍州上上未必能勝斯

비 걱정 않고 햇빛 걱정 않지만 / 不慮雨不慮日

가라지 무성하여 뽑을 만하면 / 莠桀秪可拔

마땅히 빨리 뽑아버리세 / 拔宜疾

서로 권면하기〔相勸〕

코 아래 있는 구멍 하나 / 鼻下有一竅

두 손 두 발이 바쳐 섬기네 / 兩手兩脚供事之

두 손 두 발이 / 兩手兩脚

하루에 두 번 바치지 않으면 / 一日不再供

이 구멍에서 긴 탄식 흘러나와 / 此竅長

혹 두 발을 오후의 문에 이르게 하고 / 或使兩脚到五侯門

혹 두 손으로 남의 담 벽을 뚫게 한다 / 或使兩手穿人墻與壁

동짓달엔 바람이 차갑고 / 一之日觱發

오뉴월엔 해가 불꽃처럼 뜨겁네 / 五月六月日如煜

해가 불꽃처럼 뜨거우니 / 日如煜

괴로움을 어찌 말로 다할까마는 / 苦何言

두 발이 오후의 문에 이른 것 보단 나으리 / 猶勝脚到五侯門

저 시내엔 물이 있고 물엔 고기도 있으며 / 伊溪有水水有魚

남산엔 나무가 있고 나무엔 가지도 있지 / 南山有木木有枝

그대여 괴롭다 말하지 마소 / 請君休言苦

우 임금도 두 손 두 발에 굳은살 박혔다네 / 大禹氏兩手兩脚已腁

긴 밭일을 마치고〔竟長畝〕

동쪽 밭은 큰애가 짓고 / 東畝大兒理

서쪽 밭은 작은 애가 짓는데 / 西小兒理

아버지가 웃으며 두 아이에게 말하길 / 阿爺笑道大兒與小兒

큰애야 작은 애야 누가 더 열심히 했느냐 / 大兒小兒孰倍

북쪽 마을 장씨 노파 집에 / 北里張嫗家

새로 익은 술이 죽엽주 같으니 / 有酒新熟竹葉似

열심히 일한 애는 세 주전자요 /

그렇지 못한 애는 한 주전자뿐 / 當末者秪一

큰애야 작은 애야 누가 더 열심히 했느냐 / 大兒小兒孰倍

들밥 기다리기〔待

연꽃 향해 햇빛 길게 비치는데 / 日向蓮花一疋

기다리는 들밥은 왜 오질 않는가 / 胡不至

큰 딸 작은 딸 모두 밭에 나왔으니 / 大女小女皆出田

막내딸 홀로 음식을 장만하겠군 / 季女獨主饋

울타리 밑에서 지저깨비를 줍는데 / 籬下拾榾

캐고 캔 개자리는 한 광주리도 차지 않네 / 采采苜不滿

농부가 일어나 바라보니 / 農夫起望

숲 너머에 이는 연기 끊겼다 이어지고 / 斷續煙生隔林翠

배 속에선 종소리처럼 꼬르륵 꼬르륵 / 腹鳴如鍾

부지런히 일하며 추수 때 기다려 / 須勤苦會待西成

하루에 한 말씩 세끼 밥을 먹어야지 / 一日三呑一斗食

비오리 울음〔水雞鳴〕

비오리 울고 / 水雞鳴

벼이삭 무성하게 늘어졌네 / 禾稻彧彧離離

내 누런 갈포관을 벗을 테니 / 脫我黃葛冠

아내여 술 거르길 더디 마소 / 細君釃酒且莫遲

작년 가을엔 추수를 망쳐 / 上年秋無禾

사철 상수리 줍느라 거문고 켜지 않았으나 / 歲時拾橡停琴隅

금년엔 벼이삭 무성하게 늘어졌으니 / 今年禾稻彧彧離離

내 어찌 곤드레 취하고 싶지 않겠나 / 不圖醉似泥吾何須

발 씻기〔濯足〕

강남에 한 보지락 봄비 내리는데 / 春雨江南一

알락왜가리 늦은 아침까지 나네 / 泥滑滑晩朝飛

왼손엔 짚신 들고 오른손은 바지 걷어 / 左執藁鞋右褰粗

굵은 베옷차림에 한가로이 발을 씻네 / 粗大布衣濯足閑

보리이삭 점점 자라고 노랫소리 더디니 / 麥穗漸漸歌遲遲

창랑의 물이 맑다 말하지 마소 / 莫謂滄浪之水淸

농부가 어찌 알겠는가 / 農夫何知

배를 두드리며〔鼓腹〕

아침에 한 사발 먹고 / 朝食一大椀

저녁에도 한 사발 먹으니 / 暮食一大椀

또 무얼 찾으랴 / 又何索

진 시황제도 가소롭네 / 可笑秦始皇帝

진 시황제의 장생 음식들 / 秦始皇帝餐玉飼綺

밤낮으로 올리고 물릴 때에 / 晝宵繼上食下食

시녀들 꽃과 같고 / 侍女如花

피리소리 울렸지 / 咽管籥

그러고도 푸른 바다에 삼신산 불로초를 찾는데 / 又有索碧海瓊島神靈藥

농부가 배 두드리며 또 무얼 찾겠나 / 農夫鼓腹又何索

달빛은 강구에 휘영청 술은 잔에 넘치네 / 月滿康衢酒滿酌

농사 자랑〔誇農〕

큰 수레 긴 배로 금과 옥 팔려 해도 / 大車長舟販金玉

태항산엔 눈이 가득하고 황하엔 교룡이 우네 / 太行雪滿黃河蛟龍

독서하여 경제 술책을 배우려 해도 / 讀書欲學經濟術

자리는 따뜻할 시간 없고 굴뚝은 그을릴 틈 없이 부질없이 고생하네 / 席不煖突不黔亦謾勞

돌아가자구나 / 歸去來

고향 동산 콩밭에 농사짓는 즐거움만 하랴 / 莫如吾山荳田田家樂

닭 울음 개 소리 들려오고 / 數聲雞犬

봄 아지랑이 옅게 피어오르네 / 澹泊春煙

 

[-D001] 농사 노래〔農謳〕 :

신경준의 〈농사 노래〉는 12장 잡체(雜體)로 되어 있는데, 《금양잡록(衿陽雜錄)》에 실린 강희맹(姜希孟)의 〈농사 노래〉는 14장으로 되어 있다. 신경준은 강희맹이 지은 시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였으나 차운한 것은 아니다.

[-D002] 시월 …… 내렸네 :

삼번설(三番雪)은 납일(臘日) 전에 세 번 눈이 내리는 것으로, 삼백(三白)이라고 한다. 이때 세 차례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D003] 벽려(薜荔) :

노박덩굴과에 속한 상록 활엽 덩굴나무인데, 옛날에 은자(隱者)들이 흔히 이것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전하여 은자나 고사(高士)의 처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초사(楚辭)》 〈구가(九歌) 산귀(山鬼)〉에벽려로 옷을 해 입고 여라의 띠를 둘렀도다.[薜荔兮帶女蘿.]” 하였다.

[-D004] 내 기장이 …… 번성하리 :

《시경》 〈초자(楚茨)〉에 나온다.

[-D005] 백목(白木) :

다듬기만 하고 칠하지 않은 나무를 가리킨다.

[-D006] 옹주(雍州)의 상상전(上上田) :

옹주는 중국의 옛 행정 구역으로 구주(九州) 중의 한 곳이다. 《서경》 〈우공(禹貢)〉에옹주의 토질은 황색 땅이어서 그 밭은 다른 주가 미칠 바가 아니다.[雍州之土, 黃壤, 故其田, 非他州所及.]” 하였다. 상상전은 최상급의 토지를 말한다. 토지의 질에 따라 차등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토지를 상ㆍ중ㆍ하로 나누고, 각각을 다시 상ㆍ중ㆍ하로 나누어 모두 9등급을 두었다.

[-D007] 오후(五侯) :

부귀와 권세가 막강한 사람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한 원제(漢元帝)의 후비인 왕 왕후(王王后)의 오라비 왕담(王譚)ㆍ왕상(王商)ㆍ왕립(王立)ㆍ왕근(王根)ㆍ왕봉(王逢)이 성제(成帝)가 즉위하자마자 동시에 후에 봉해져 권력을 독점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오후라 불렀다. 《漢書 卷98 元后傳》

[-D008] 동짓달엔 바람이 차갑고 :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일양(一陽)의 날에 바람이 차갑고, 이양(二陽)의 날에 날이 차니, 베옷도 없고 갈옷도 없으면, 어떻게 해를 마치리오.[一之日觱發, 二之日栗烈, 無衣無褐, 何以卒歲?]”라는 말이 나오는데, 일양의 날은 동짓달이고, 이양의 날은 섣달이다.

[-D009] 아내〔細君〕 :

원래 제후(諸侯)의 부인을 뜻하였는데, 동방삭(東方朔)이 자신의 처를 세군이라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뒤로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 무제(漢武帝)가 관원들에게 하사한 고기를 동방삭이 허락도 받지 않고 칼로 잘라 집으로 가져가자, 무제가 자책(自責)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동방삭이삭아 삭아, 하사를 받고 조서도 기다리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무례한가. 칼을 뽑아 고기를 잘랐으니, 이 얼마나 씩씩한가. 베어 가되 많이 가져가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청렴한가. 돌아가서 세군에게 주었으니, 이 얼마나 인자한가.[朔來朔來! 受賜不待詔, 何無禮也? 拔劍割肉, 壹何壯也? 割之不多, 又何廉也? 歸遺細君, 又何仁也?]”라고 하자, 무제가 그만 웃고 말았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D010] 창랑(滄浪) …… 알겠는가 :

세상의 청탁(淸濁)을 돌아보지 않고 농사지으며 자족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창랑의 물이 맑다는 구절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어부가 굴원을 만나서 세상과 갈등을 빚지 말고 어울려 살도록 충고했는데도 굴원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빙긋이 웃고서 뱃전을 두드리며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면 되지.[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노래하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떠나갔다는 내용이다.

[-D011] 장생 음식들 :

원문의 찬옥(餐玉)은 도가(道家)에서 불로장생(不老長生)하기 위해 옥가루를 복용하는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주머니 속의 옥 먹는 법을 시험하지 못했으니, 내일 아침엔 장차 남전산으로 들어가리라.[未試囊中飧玉法, 明朝且入藍田山.]”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3 去矣行》 사기(飼綺)는 기름진 음식을 뜻한다.

[-D012] 강구(康衢) :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뚫린 큰 거리이다. () 임금이 천하는 잘 다스려지는지, 백성들은 자신을 임금으로 모시기를 원하는지 알고 싶어서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구에 나갔더니, 노인이 〈격양가(擊壤歌)〉를 불렀다고 한다. 《列子 仲尼》

[-D013] 자리는 …… 없이 :

공자와 묵자가 도를 행하고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고 한곳에 머물러 있을 틈이 없었다는 뜻이다. 《고금사문유취》 별집 권20 〈빈희(賓戲)〉에공자의 자리는 따뜻할 시간이 없고, 묵자의 굴뚝은 그을릴 틈이 없다.[孔席不煖, 墨突不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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