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을 생각하다 다섯 수〔懷賢 五首〕
어우집 후집 제2권 / 시(詩)○두류록(頭流錄)
선현을 생각하다 다섯 수〔懷賢 五首〕
세상에 전하기를 최자는 금 돼지 자손으로 / 世傳崔子金猪産
학업 닦아 가야에서 훌륭한 문장 이루었다지 / 鍊業伽倻文字工
바다 건너가 당(唐)나라에서 종횡무진 누비고 / 泛海橫行李天下
아름다운 문장 지어 신라 조정에 드리웠다네 / 摛華衣被羅朝中
당년에 달빛 비치는 석문에서 신선이 되었고 / 當年羽化石門月
오랜 세월 청학동 바람 속에 《금심》 읽었네 / 千載琴心鶴洞風
지금도 간혹 보이네, 홍류(紅流)의 잔교를 / 或看至今紅水棧
선동 데리고 푸른 노새로 건너가는 모습 / 靑驢橫渡領仙童
위는 최고운(崔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읊은 것이다.
성대한 광악의 영기 듬뿍 받아 / 堂堂光嶽稟靈優
도학이 당대에서 제일 으뜸이었네 / 道學當時第一流
민증과 같은 행실로 모범 세웠는데 / 行捋閔曾堪立範
주급의 높은 명성은 화만 불렀다네 / 名高厨及只招尤
어찌하여 청계의 풍월을 꿈꾸다가 / 如何風月淸溪夢
끝내 변방 눈 덮인 산에 갇히고 말았나 / 終作關山白雪囚
천 년 세월 문묘에서 제사를 올리니 / 樽俎千年文廟享
남아가 이 밖에 무얼 다시 구하리오 / 男兒此外更何求
위는 정일두(鄭一蠹 정여창(鄭汝昌))를 읊은 것이다.
한생의 관직은 이서의 우두머리로 / 韓生官是吏胥雄
정부에서 오랫동안 상공을 모셨네 / 槐府多年奉相公
민심이 덕 있는 이에게 갈 줄 어찌 알았으리 / 豈意民心歸有德
목숨 바쳐 신하 된 도리 다하지 못하였네 / 未能臣職死於忠
온 산 소나무 계수나무에 전조의 달빛 비치고 / 一山松桂先朝月
만고의 천지에는 열사의 기풍이 남아있네 / 萬古乾坤烈士風
어느 곳 쑥대밭에서 그의 고향을 찾을까 / 何處蓬蒿尋故里
지금도 고사리 나는 수양산 속에 있겠지 / 至今殷蕨首陽中
위는 한 녹사(韓錄事)를 읊은 것이다.
돌아보니 양당엔 봄물 가득 찼는데 / 回首兩塘春水盈
산 중턱 송백 아래는 누구의 무덤인가 / 半山松栢是誰塋
남명의 본뜻이 청구를 맑게 하는 것이라 / 南溟本意澄青壤
북궐 향해 평생토록 붉은 정성 다하였네 / 北闕平生繫赤誠
한번 올린 상소에 간신의 뼈 서늘해지고 / 一奏匭函寒佞骨
평생 즐긴 산수에 높은 명성이 걸리었네 / 百年雲水掛高名
동방에서 드높은 절의 우뚝 세웠으니 / 東方壁立尋千節
영남의 군웅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 嶠外群雄孰使令
위는 조남명(曺南溟 조식(曺植))을 읊은 것이다.
푸른 회나무와 붉은 단풍나무 온 산에 우거지고 / 蒼檜丹楓萬壑陰
푸른 못과 날리는 폭포를 한 대가 굽어보네 / 碧潭飛瀑一臺臨
선생이 자식 가르치던 서루 우뚝 서 있고 / 先生敎子書樓峙
노승이 참선하던 별원 깊숙이 자리하였네 / 長老參禪別院深
자식 위해 지은 서재는 대단한 일 아니나 / 童稚治齋事不鉅
대유가 세운 절개를 선비들 모두 흠모하네 / 大儒植節士皆欽
우리 집 아이들도 예서 공부해야 하리니 / 吾家豚犬亦宜往
한가한 날에 황계로 너희를 찾아가리라 / 暇日黃溪當爾尋
위는 노옥계(盧玉溪)를 읊은 것이다.
[주-D001] 최자(崔子)는 …… 자손으로 :
최자는 최치원(崔致遠)을 말하는데,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최치원의 어머니가 금 돼지에게 잡혀 갔다가 최치원의 아버지 최충의 지략으로 구출된 뒤 여섯 달 만에 최치원을 낳았는데, 최충이 금 돼지의 아들인가 의심하여 아이를 내다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나 말이 피해 가고 밤이면 선녀가 내려와 보살펴 주었으므로 다시 연못에 버렸는데, 갑자기 연꽃 한 송이가 피어올라 최치원을 받들었고 백학 한 쌍이 날아와서 날개로 덮어주었다.”
[주-D002] 바람 …… 읽었네 :
최치원과 청학동을 결부시킨 것이다. 본서 후집 제6권 〈두류산을 유람한 기록〉에 “비지(秘志)에, ‘최고운(崔孤雲)은 죽지 않고 지금도 청학동에서 노닐고 있어, 청학동의 승려가 하루에 세 번이나 고운을 본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믿을 수 없으나, 만약 이 세상에 진짜 신선이 있다면 고운이 신선이 되지 않았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고운이 과연 신선이 되었다면 이곳을 버리고 어디서 노닐겠는가.”라는 내용이 있다. 《금심》은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의 별명이다. 《황정내경경》 〈서(序)〉에 “《황정내경》은 일명 《태상금심문(太上琴心文)》이다.” 하였고, 〈상청장(上淸章)〉에 “금심을 세 번 읽자 학이 춤춘다.[琴心三疊舞胎仙]” 하였다.
[주-D003] 지금도 …… 모습 :
본서 후집 제6권 〈두류산을 유람한 기록〉에 “비지(秘志)에 “근년에 어떤 사람이 최고운이 푸른 나귀를 타고 외나무다리를 나는 듯이 건너가는 것을 보았는데, 강씨(姜氏) 집안의 노복이 고삐를 잡고 만류하였지만 채찍을 휘두르며 돌아보지도 않았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D004] 광악(光嶽) :
삼광(三光)과 오악(五嶽)의 준말이다. 삼광은 일(日)ㆍ월(月)ㆍ성(星)이고, 오악은 중국의 태산(泰山)ㆍ화산(華山)ㆍ형산(衡山)ㆍ항산(恒山)ㆍ숭산(嵩山)인데,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명산을 뜻한다.
[주-D005] 민증(閔曾)과 같은 행실 :
민증은 효자로 일컬어진 공자의 제자 민자건(閔子騫)과 증자(曾子)의 병칭이다. 정여창은 부친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다 전사하자, 18세의 나이로 함경도로 달려가 시신을 찾아 돌아왔으며, 모친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주위의 염려를 무릅쓰고 염습과 빈전(殯奠)을 모두 예에 맞게 하였으며, 1년 동안 죽을 마시고 3년 동안 여막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1490년(성종21) 윤긍(尹兢)에 의해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다. 《一蠹遺集 卷3 神道碑銘》
[주-D006] 주급(厨及) :
팔주(八厨)와 팔급(八及)으로, 후한(後漢)의 사대부들이 당시의 명사들을 부르던 칭호이다. ‘팔준(八俊)’, ‘팔고(八顧)’, ‘팔급(八及)’, ‘팔주(八厨)’라는 호칭이 있었는데, ‘준’은 빼어난 자를 가리키고, ‘고’는 덕행으로 사람을 이끌만한 자를 가리키며, ‘급’은 추종자를 이끌 능력이 있는 자를 가리키고 ‘주’는 재물로써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주-D007] 청계(淸溪)의 풍월을 꿈꾸다가 :
정여창의 고택이 함양(咸陽)에 있는데, 그 근처에 청계가 있다.
[주-D008] 끝내 …… 말았나 :
정여창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종성(鍾城)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은 것을 말한다.
[주-D009] 민심이 …… 줄 :
조선의 건국을 말한 것이다.
[주-D010] 전조(前朝) :
고려를 말한다.
[주-D011] 지금도 …… 있겠지 :
함양에 수양산(首陽山)이 있으므로, 주(周)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뜯어 먹었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고사와 연결시켰다.
[주-D012] 한 녹사(韓錄事) :
한유한(韓惟漢)으로, 고려 신종(神宗) 때의 은사(隱士)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한유한이 개성에 살다가 최충헌(崔忠獻)의 정사가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난(亂)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 처자를 데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뒤에 나라에서 서대비원 녹사(西大悲院錄事)를 제수하여 불렀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종신토록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유한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많은데, 고려 말엽에 나라가 혼란해 질 것을 예견하고 은거하다가 조선이 건국되자 더 깊이 숨어버린 인물이라는 설도 있는데, 여기서는 후설을 취한 듯하다.
[주-D013] 양당(兩塘) :
두류산 덕산(德山)에 있는 마을로, 조식(曺植)이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살았던 곳이다.
[주-D014] 청구(靑丘)를 …… 것 :
우리나라의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5] 푸른 …… 굽어보네 :
본서 후집 제6권 〈두류산을 유람한 기록〉에 “낭떠러지에 접한 바위가 자연스레 대(臺)를 이루었는데 대암(臺巖)이라 한다. 그 아래에는 깊은 못이 검푸른 빛을 띠고 있어 무서워서 내려다볼 수 없었다.” 하였다.
[주-D016] 선생이 …… 서루(書樓) :
본서 후집 제6권 〈두류산을 유람한 기록〉에 “정룡암(頂龍菴)의 북당(北堂)은 거처하는 승려 말로는, 노 판서(盧判書)의 서재라고 하였다. 옥계(玉溪) 노진(盧禛) 선생이 자손을 위해 지은 것으로 선생도 봄이면 꽃구경 하고 가을이면 단풍놀이 하러 흥이 나는 대로 왕래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하였다.
[주-D017] 노옥계(盧玉溪) :
노진(盧禛, 1518~1578)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응(子膺), 호가 옥계이다. 1546년(명종1)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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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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