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유고 제1권 / 시(詩)
이튿날 또 십 운(韻)의 장시(長詩)를 읊다
세상에는 일만 년 사는 이 없고 / 世無萬年人
천 일 동안 꽃 피는 나무도 없네 / 樹無千日花
꽃은 져도 애석할 것 그리 없지만 / 花落不足惜
우리 인생 참으로 안타까운 일 / 人生良可嗟
이러한 연유에서 옛 분들 마음 / 所以古人心
여기에서 유독 크게 느낌 받았네 / 見此偏感發
기변은 말이 이미 근심스럽고 / 頍弁辭旣戚
산추 역시 그 뜻이 애틋하였지 / 山樞情亦怛
좋은 모임 잦아도 나쁠 게 없고 / 好會不厭頻
좋은 술은 많을수록 더욱더 좋지 / 美酒不厭多
이렇게 틈이 날 때 즐겁게 놀아야지 / 暇日正堪遊
마시지 않고서 무엇을 할 것인가 / 不飮將奈何
그리고 친족간의 정의를 다지면서 / 因之講親親
전해온 가풍을 실추하지 말아야지 / 庶無墜遺風
효제의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 油然孝悌心
다정하게 웃음 띠고 이야기 꽃 피우네 / 莞爾談笑融
예교는 본디 하늘 법받은 거고 / 禮敎自極天
인심은 화우의 뜻 간직했으니 / 仁心存化雨
진실로 이 이치에 밝아진다면 / 苟於此理明
인간 윤리 무너지지 않게 되리라 / 免俾斯倫斁
슬프게도 시속 날로 야박해지니 / 哀哉俗日薄
이 도는 거의 길이 사라져가고 / 此道幾長湮
너와 나를 따지는 욕심 때문에 / 物我利慾間
골육을 길 가는 사람 보듯 해 / 骨肉如路人
각궁의 풍자를 편안히 듣고 / 甘被角弓剌
상체의 정의를 생각 안 하니 / 罔念常棣情
우리에게 대 이어온 덕이 없다면 / 不有吾世德
후생들을 그 누가 깨우쳐 주리 / 誰能覺後生
반듯하게 윤리가 바로잡히고 / 秩秩倫理正
기쁨으로 독실한 은애 나누세 / 愉愉恩愛篤
지금부터 더욱더 힘써야 할 터 / 從今益自勉
옛날에도 부족하진 않았지만 / 在昔非不足
그리하면 후손들이 복될 것이고 / 豈不裕後垂
선조들도 더욱더 빛나게 되리 / 抑亦光前烈
사방에서 바라보고 본받을 테니 / 法家四方觀
친자손은 남들과는 또 다르리라 / 親炙他人別
바라건대 동거하는 법을 배워서 / 願言學同居
여기 모여 언제나 노래 부르고 / 歌聚恒於斯
종신토록 서로 함께 즐거워하며 / 終身有相樂
영원히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 永世無相離
[주-D001] 기변(頍弁)은 …… 근심스럽고 :
기변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으로, 형제와 친척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시인데, 모서(毛序)에는 “이 시는 제공(諸公)들이 유왕(幽王)을 풍자한 것이다. 난폭하고 사나워 친한 사람이 없어, 동성(同姓)들과 연락(宴樂)하지 못하고 구족(九族)과 친목하지 못한 때문에 외롭고 위태로워 장차 망하게 되었으므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하였다. 여기에서는 형제 친척과 화목하게 즐기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주-D002] 산추(山樞) …… 애틋하였지 :
산추는 《시경》 당풍(唐風)의 산유추(山有樞)를 가리킨다. 이 시는 “그대에게 의상이 있되 입지 않고 끌지 않으며, 그대에게 거마가 있되 달리지 않고 몰지 않으면, 갑자기 죽어버린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리라.〔子有衣裳 不曳不婁 子有車馬 不馳不驅 宛其死矣 他人是愉〕”라고 하여, 때에 미쳐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깊은 근심과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3] 화우(化雨)의 뜻 :
만물을 길러 주는 단비처럼 사람을 잘 교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서 군자의 가르침 다섯 가지 가운데 첫 번째로 이런 종류의 가르침을 일컬은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서는 친족의 부로(父老)들이 자제들을 잘 가르쳐 인도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주-D004] 각궁(角弓)의 풍자 :
각궁은 《시경》 소아의 편명이다. 왕이 구족(九族)을 친애하지 않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여 종족으로 하여금 서로 원망하게 하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즉 종족간에 불화하는 것에 대해서 남의 비난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5] 상체(常棣)의 정의 :
상체는 《시경》 소아의 편명으로, 형제간에 어려울 때 서로 돕는 뜻을 내포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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