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길을 가며
- 송익필(宋翼弼),山行
山行忘坐坐忘行 歇馬松陰聽水聲
산행망좌좌망행 헐마송음청수성
後我幾人先我去 各歸其止又何爭
후아기인선아거 각귀기지우하쟁
걸어갈 땐 앉기 잊고
앉으면 가기 잊어
말 멈추고 솔 그늘서
물소리 듣노라
내 뒤의 몇 명이나
나 앞질러 가는가만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니
또 무엇을 다투리요
*
산길을 가면서 느낀 단상(斷想)을
자못 깊은 인생론으로 풀어낸 시다.
우리가 목적지을 향해 길을 가다보면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웬만하면 덜 쉬고
부지런히 걷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지쳐서 잠시 앉아 쉴라치면
또 갈 생각을 잊고 한참을 보내게 된다.
그늘에 앉아 물소리도 들으면서
그 사이 내 뒤에 오던 사람들은 하나 둘
나를 앞질러 간다.
뒷사람이 앞장서는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들 자기가 목적한 곳에 도착하면 그만이다.
뒤처지던 나도 시간이 조금 늦을 뿐
나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찍 가려고 서두를 필요가 있겠는가.
하도 세상이 속도 경쟁을 하다보니
마침내 "느림의 미학(美學)"을 강조하는
역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시는 바로
"느림의 미학'을 가르치고 있다.
설날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 시간에 쫓기며 살아 왔는가,
그 결과 한해를 마감하면서
남는 보람이 얼마나 되는가.
기대했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
너무 실망만 하지 말 일이다.
지금 뒤처졌다고 해서
항상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모두 자기가 타고난 만큼의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이다.
*
송익필(宋翼弼 1534~1599):
학자. 자 운장(雲長). 호 구봉(龜峰).
본관 여산(礪山).
8문장가의 한 사람.
성리학자로서 율곡(栗谷),
우계(牛溪)와 왕래하여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예학(禮學)에도 밝았다.
문하에 김장생(金長生),
김 집(金集)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됐다.
저서에 <구봉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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