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스님들 소식

비구니승의 삶과 수행

淸潭 2007. 5. 24. 12:45

김영옥씨가 펴낸 비구니승의 삶과 수행
 
불교가 이 땅에 뿌리내린 지 1700여 년. 한국 불교 교단의 절반을 이루는 비구니승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포교와 사회복지, 수행의 분야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구, 즉 남성 스님 중심으로 불교와 불교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구니 스님들은 비구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참선, 강경 뿐 아니라 울력 등을 통해 정진수행을 하고 있다. 사진은 청도 운문사의 비구니 학승들이 울력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허경민 (오래된미래 제공)
기록되지 않으면 전설이 된다 했던가. 5년 전 비구승들의 삶을 책으로 묶어냈던 김영옥씨가 비구니를 찾아나선 이유는 바로 묻혀진 반쪽 불교를 전해주고 싶어서다. 그녀는 지난 5년 간 전국의 사찰과 강원 등지에서 활동하는 비구니 스님들을 고루 만났다.

김씨가 최근 펴낸 ‘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오래된 미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비구니 9명에 대한 기록이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선종의 가풍이 강한 한국 불교에서 살림살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온 승려들은 제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김씨가 미리 연락을 넣고 찾아가도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부지기수였다.

“강원(전통 불교학교)이 있는 사찰은 그런 일이 드물었지만 참선을 하시는 스님들의 경우는 굉장히 낯가림이 심하셔서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야단만 맞고 그 자리에서 돌아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이 받아온 교육에 충실한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책에 모신 분들이 이 땅에서 애쓰고 계신 스님들의 보통명사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에는 다양한 방편으로 불법을 실천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삶이 섬세하고도 정갈한 언어로 쓰여 있다. 방송을 통해 불법을 전하는 불교방송의 진명스님은 일반인에게도 꽤 알려진 축에 속할 터다. 전남 고흥군 금탑사의 서림스님은 산사의 삶을 시로 써내려가고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강사인 묘엄스님을 은사로 모신 불영사의 일운스님은 사미니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그간 대만, 이탈리아, 러시아 등 여러 명의 외국인 비구니승들에게 불법을 가르쳤다. 경북 김천 청암사의 상덕스님과 청도 운문사 주지 혜은스님에게서는 후원과 울력 등을 통해 절집의 살림살이를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가하면 비구니 선방으로 잘 알려진 경북 울주군 석남사 금당선원의 고즈넉한 풍경은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가장 새겨 읽게 되는 대목은 중앙승가대학 부설 한국비구니연구소장인 본각스님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이 시대 비구니승들의 현실이다. 2000년 연구소를 설립할 당시 “종립학교에 비구승 연구소도 없는데, 비구니승의 연구소가 개설될 수는 없는 것”이라는 반발과 싸워야 했고, 그를 따라 비구니사 정리를 하던 비구니 스님들마저도 노승들로부터 박대를 당할 정도였다. 불교에서 비구니승에 대한 차별은 불교 초창기 만들어진 불평등조항인 ‘팔경법’의 탓이 크다. 아무리 법력이 오래된 비구니승이라 하더라도 갓 수계를 받은 비구승에게 절을 하고 자리를 내드린다는 내용을 포함해 8가지의 불평등계율은 현재 조계종 승적을 가진 승려 1만2000여명 중 절반이 비구니이고, 조계종 종헌에마저 ‘본 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바이, 우바새)가 함께 승단을 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20년 가까이 절집을 드나든 김씨는 “산중을 찾아다니는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며 “나이 드신 스님들의 경우 그대로 산 역사가 되시는 분들이 많은데, 문중별로 행장기를 준비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아서 행장을 기록하는 일을 누군가 나서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살아있는 스님들의 기록이면서 책에 ‘행장기’라고 부제를 붙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