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산책
- 봄 마음
- 이달(李達),呼韻 -운자를 부르기에
曲欄晴日坐多時 閉却重門不賦詩
곡란청일좌다시 폐각중문불부시
墻角小梅風落盡 春心移上杏花枝
장각소매풍락진 춘심이상행화지
날이 맑아 굽은 난간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서
겹문까지 닫아 걸고
시도 짓지 않았네
담 모롱이 작은 매화가
바람에 다 떨어지니
봄빛이 살구꽃 가지 위로
옮겨 가는구나.
♧
이른 봄,
아직 그늘엔 잔설이 남았는데
매화가 나무 가득 꽃을 피웠다.
흐믓함도 잠시,
시샘하는 봄바람에
한 잎 두 잎 꽃잎이 흩지다가 어느새
매화는 다 지고 없다.
서운한 눈길을 둘 데 없더니,
이번엔 마당 저편에서 살구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전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살구나무가
갑자기 어여쁘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라지만
정작 변덕스러운 것은 내 마음이다.
이달(李達)이
허봉(許?)의 집에 놀러갔을 때,
아우인 허균(許筠)이 왔다가 이달의 꾀죄죄한 행색을 보고
업신여기는 빛이 있었다.
허봉이 운(韻)자를 부르자
즉석에서 대답해 부른 시(詩)다.
허균이 이 시를 보고
낯빛을 바꾸고 무릎 꿇고 사죄했다.
허균은 이후 그를
시 스승으로 섬겼다.
시 한 수가 오만한 마음을
싹 씻어가 버렸던 모양이다.
*
이달(李達,1539(중종 34)∼1612(광해군4):
조선 중기의 시인(詩人),
자 익지(益之). 호 손곡(蓀谷)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제자인 허균(許筠)이 그의 전기
<손곡산인전 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밝혀
신평이씨(新平李氏)인 것이 확인되었지만,
서얼(庶孼)이어서
더 이상의 가계는 확실하지 않다.
원주 손곡(蓀谷)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박순(朴淳)의 문인.
동문인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 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었으며,
허난설헌(蘭雪軒)과 허균(筠)은
그의 시 제자였다.
저서에 <손곡시집(蓀谷詩集)>이 있다.
*
서얼(庶孼):
첩(妾)의 자식인
서자(庶子)와 얼자(孼子)를 말한다.
첩의 신분이 양인(良人)이면
서자(庶子)가 되고,
첩의 신분이 천인(賤人)이면
얼자(孼子)가 된다.
서얼 출신은 과거에
응시(科擧應試)도 할 수 없었다.
문중 제사에는 참여 하되 방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절을 올렸다고 한다.
서얼의 신분을 숨기고 양반가의 자녀와
혼인한 것이 밝혀지면
양반을 기만했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으니,
조선조의 신분제도가
얼마나 엄격했는지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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