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보내다[遣憂] 12장(章) / 丁若鏞
다산시문집 제5권 / 시(詩)
부리가 꼭 외진 지역이 아니며 / 鳧吏未必偏
진조가 꼭 중앙인 것도 아니지 / 震朝未必中
둥글둥글한 지구덩어리가 / 團團一丸土
원래는 서도 동도 없는 것 / 本自無西東
조(朝)는 휘(諱)하기 위하여 그리 쓴 것임
천하 서적을 다 소화하고 나서 / 盡茹天下書
주역으로 귀결을 지우려 했는데 / 竟欲吐周易
하늘이 그 아끼는 것을 내게 주려고 / 天欲破其慳
나에게 삼년 귀양살이 마련했나 보네 / 賜我三年謫
하늘 있어 내 머리 놀릴 수 있고 / 有天容我頂
땅이 있어 내 발도 놀릴 수 있으며 / 有地容我足
물이 있고 곡식도 있어서 / 有水兼有穀
언제든지 내 배는 채운다네 / 自來充我腹
부귀도 모두 한 꿈속이요 / 富貴固一夢
궁액 역시 똑같이 꿈이로세 / 窮阨亦一夢
그 꿈 깨고 나면 그뿐 아니겠는가 / 夢覺斯已矣
육합 모두가 한 장난거리인 것을 / 六合都一弄
이 세상 걸림돌을 하나하나 세어 보면 / 歷數世間累
처자식이 최고 걸림돌이지 / 妻孥居上頭
누가 알랴 집을 나온 자는 / 誰知出家者
이리도 호탕하게 놀 수 있는 것을 / 浩蕩成玆遊
흙밭 돼지와도 상종을 하고 / 塗豕故相逐
똥구더기라도 달게 여기는 판인데 / 糞蛆方自甘
모장이나 순모 정도야 / 毛嬙與淳母
그냥 둬야지 말해 뭘 하겠는가 / 且置不須談
높은 데 오르면 떨어질까 염려지만 / 登高常慮墜
떨어지고 나면 마음 오히려 후련해 / 旣墜心浩然
초헌 타고 의관 갖춘 자들 보면 / 仰見軒冕客
위태위태 거꾸로 매달린 것 같아 / 纍纍方倒懸
부귀 내세워 나쁜 짓을 하면 / 富貴以行惡
호랑이에게 날개를 붙여준 셈이지 / 猶如虎傅翼
나는 지금 깃 잘린 새가 되어 / 吾今鳥鎩翮
사납게 굴지 못하는 것으로 덕 삼는다네 / 寡虐以爲德
고기 먹는 사람을 그대 보았지 / 君看食魚者
맛과 함께 독까지 먹는 거라네 / 味毒俱入腹
그 맛만 먹지 않는다면야 / 旣不享其味
독 때문에 토할 까닭도 없을 텐데 / 亦不吐其毒
어린애가 까닭 없이 울다가 / 孩兒無故啼
까닭 없이 해죽 웃기도 하는데 / 無故孩然笑
기쁘고 슬픈 건 원래 까닭이 없는 것 / 歡戚本無故
나이만 어른 애가 있을 뿐이지 / 年齡有長少
뜻을 못 폈을 땐 사람들이 아껴주다가 / 未展人常惜
일단 써 보이면 말하는 건 단점뿐이지 / 旣施人議短
그렇기 때문에 소보 허유 무리들이 / 所以巢許倫
머리를 흔들고 일을 맡지 않았다네 / 掉頭就閒散
백성들 주려도 날 원망은 않을 것이고 / 民飢不我怨
백성들 무지해도 나로서는 모르는 일 / 民頑我不知
후세에 나를 두고 논하는 자들이 / 後世論我曰
뜻대로 되었던들 무언가 했으리라고 하리 / 得志必有爲
[주-D001] 부리(鳧吏) :
미상.
[주-D002] 진조(震朝) :
원래 진단(震旦)인 것을 작자가 이태조(李太祖)의 휘(諱)인 단(旦)을 피하기 위해 조(朝)로 바꿔 썼다고 했다. 진단은 인도(印度)가 고대 중국(古代中國)을 이르던 말임. 《翻譯名義集》
[주-D003] 모장(毛嬙) :
서시(西施)와 함께 고대 미인으로 손꼽히던 여인. 《戰國策 齊策》
[주-D004] 순모(淳母) :
맛좋은 음식으로 팔진미(八珍味) 중의 하나라고 함. 《禮記 內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