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을 그리워 함[억삼봉(憶三峰)] 이숭인
그대를 못 본지가 이미 오랜데 不見鄭生久(불견정생구)
가을바람 또다시 쏴- 하고 부네 秋風又颯然(추풍우삽연)
새로 지은 그대의 시 젤 빼어났고 新篇最堪誦(신편최감송)
내 미친 짓 자네 말고 누가 봐줄까 狂態更誰憐(광태갱수련)
천지가 허락했군, 우리 무리가 天地容吾輩(천지용오배)
강호에서 몇 년 동안 누워지냄을 江湖臥數年(강호와수년)
아득한 그대 생각 한이 있으랴 相思渺何限(상사묘하한)
기러기 사라진 곳, 끝까지 보네 極目斷鴻邊(극목단홍변)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은 막상막하의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스승 격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평을 할 때마다 도은을 삼봉의 앞에다 놓았다.
하루는 그 스승이 도은이 지은 ‘오호도(嗚呼島)’란 시를 보고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해댔다. 허파가 왈칵 뒤집힌 삼봉도 며칠 뒤에 ‘오호도’란 시를 지어 스승에게 보이면서, 시치미를 딱 떼고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의 시에 이런 시가 있던데, 이 작품은 어떤지요?” “참으로 빼어난 작품일세. 하지만 이 정도의 작품은 그대들도 얼마든지 지을 수가 있네. 지난 번 도은의 작품 같은 것은 절대 아무나 지을 수가 없는 거고.” 훗날 삼봉이 정권을 장악하자 목은은 겨우 죽음을 면했고, 도은은 마침내 죽음을 당했다. 사람들은 “아마도 ’오호도‘ 시가 빌미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삼봉과 도은이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다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절친한 친구 같이 지낸 사이였다. 유배살이를 하고 있던 도은이, 역시 유배 중이었던 삼봉을 그리워하며 지은 위의 시에서도 그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느린 말 홀로 타니 나귀를 탄 것 같아/ 채찍을 드리운 채 꾸벅꾸벅 졸았다네/ 말이 멈추기에 잠에서 깨어나니/ 무너진 담·사립문이 바로 그대(=도은) 집이었네” 삼봉이 지은 이 시를 통해서도 그들 간의 교제의 밀도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왕조교체기에 아쉽게도 서로 등을 돌렸다. 정치적 신념의 차이에 따른 것이므로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일일 터. 하지만 정권을 손에 쥔 삼봉이 귀양살이 하고 있던 도은에게 심복을 보내어 곤장을 쳐서 죽였던 것은 짜장 우리를 아연케 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정말 ‘오호도’ 시가 빌미가 되기라도 했던 걸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져서 날아가는 기러기의 날개를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가을이다, 아아!
글: 이종문(시인, 계명대한문교육과 교수)
매일신문 - '이종문의 한시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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