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滿月臺歌(만월대가)-홍세태(洪世泰) 만월대에서 滿月臺前落木秋(만월대전락목추) 西風殘照使人愁(서풍잔조사인수) 山河氣盡姜邯贊(산하기진강감찬) 日月明懸鄭夢周(일월명현정몽주) 만월대 앞 낙엽 지는 가을에 서풍에 남은 낙조 사람을 근심하게 하네 산하에는 강감찬의 기상이 사라졌고 일월처럼 정몽주의 이름만 걸려 있네. 이 시는 1705년 황해도 옹진군(甕津郡)의 둔전장(屯田長)으로 부임해 가는 길에 개성(開城)의 만월대에 올라 읊은 것이다.
낙엽이 지는 가을에 만월대에 올라보니, 가을바람에 지는 낙조가 사람을 근심하게 한다. 근심은 무엇인가? 거란의 침략을 물리쳤던 강감찬 장군의 기상이 사라졌고, 고려와 함께 절의를 지키며 사라져 간 정몽주의 이름만 남아 있다. 옛 고려의 궁궐터인 만월대에서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도 이들처럼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조(正祖)는 『홍재전서』 「일득록(日得錄)」에서, “대개 인재란 원래 문벌의 귀천이 없다. 근세의 홍세태(洪世泰)도 위항(委巷) 출신으로 시로써 크게 이름을 날려서 농암(農巖)이나 삼연(三淵)이 칭송하였고, 당시 사람들이 간이의 문장에 비유하기까지 하였다(大抵人材(대저인재) 元無門地貴賤之別(원무문지귀천지별) 近世洪世泰(근세홍세태) 亦以委巷之人(역이위항지인) 大以詩鳴(대이시명) 爲農淵輩所推詡(위농연배소추후) 時人至擬之簡易之文(시인지의지간역지문)).”라 하여, 홍세태의 시(詩)가 최립(崔岦)의 문장에 비견(比肩)될 정도라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시읽기(下), 원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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