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기다리는 마음 / 이옥봉

淸潭 2017. 4. 8. 11:44

-이종문의 한시 산책-

 

기다리는 마음 이옥봉

 

온다고 하시던 임 왜 이리 늦나?

매화꽃도 어느 듯 지려 하는데...

까치가 깍깍 우니 이제 오실까

부질없이 거울 속의 눈썹 그리네.

有約來何晩(유약래하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원제: [규정(閨情)]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인 이옥봉(李玉峰)의 작품이다. 그녀는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을 한 뒤에 옥천군수로 부임하였던 이봉(李逢)의 서녀로 태어났다. 서녀라는 신분적 조건 때문에 첩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첩이 되더라도 남편만은 자신이 선택하고 싶었다. 이옥봉은 진사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했을 뿐만 아니라 유달리도 멋이 있었던 조원(趙瑗)이란 남자에게 마음을 두었다. 딸의 마음을 눈치 챈 아버지가 조원을 찾아가서 자신의 딸을 첩을 삼아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조원은 그것을 일언지하에 딱 거절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 되자 이봉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조원의 장인을 찾아가서 사위를 좀 설득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딸의 남편에게 첩을 들이라고 설득을 하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요즈음 기준으로 보면 물론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첩을 들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던 그 당시로서는 말이 되지 않을 것도 없다. 실제로 장인은 팔을 걷어 부치고 사위를 설득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이옥봉은 조원에게 시집을 가서 한 동안이나마 깨가 쏟아지게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다림이 없는 첩이 어디 있으랴. 그녀는 지금 떠나간 임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정황으로 보아 사랑하는 임은 뜰에 있는 매화가 피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야흐로 이제 매화가 지려고 하는데도 그 임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애간장이 죄다 찢어질 지경이다. 그 때다. 그 매화 가지에서 목청이 터지도록 깍깍 울어대는 저 까치 소리! 홀연히 들려오는 그 까치 소리에 체념에 젖어있던 여인의 얼굴에 아연 생기가 확 넘쳐흐른다. 그녀는 서둘러 거울 속에 있는 눈썹을 그린다. 돌아오는 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소산이다. 하지만 까치가 깍깍 운다고 해서 정말 떠난 임이 돌아오실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왜 그러냐고? 거울 속의 눈썹을 ‘부질없이’ 그리고 있으니까. 바로 그 ‘부질없이’라는 말 속에 그녀의 절망과 체념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글: 이종문(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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