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바로 그게 걱정일세 진묵(震黙: 1562-1633)

淸潭 2017. 3. 3. 10:26

바로 그게 걱정일세 진묵(震黙: 1562-1633)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
하늘은 이불, 땅은 자리, 산은 베개이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이라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크게 취해 얼씨구나, 어절씨구,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봐 걱정일세

*居然: 거리낌 없이. *却嫌: 도리어 걱정이 됨. *崑崙: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다는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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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지은 진묵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작은 화신’이라 불리기도 했던 조선 중기의 고승이다. 그는 스님이었지만, 스님들이 지켜야할 계율들을 내동댕이 쳐버린 채 살았던 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계율을 내동댕이 쳐버린 스님을 파계승(破戒僧)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묵 스님을 파계승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계율을 깨트렸던 스님이 아니라, 계율을 훌쩍 뛰어넘어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절대 자유를 마음껏 숨 쉬다가 훌훌 떠나갔던 무애승(無碍僧)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진묵의 생애는 갖가지 기행(奇行)으로 얼룩져 있고, 실제와 전설이 뒤범벅이 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술을 몹시도 좋아했으며, 스님들 사이에서 술을 곡차(穀茶)라고 부르는 것도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진묵의 생애가 그러하듯이, 이 시의 제목과 창작 동기에 대해서도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짤막한 작품 속에는 세속의 잡다한 현실에서 벗어나, 저 거대한 우주 전체를 손바닥 위에다 올려놓고 놀았던 스님의 삶이 손에 잡힐 듯이 포착되어 있다. 보다시피 스님에게 하늘은 이불, 땅은 자리, 산은 베개에 불과한 존재이고,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가 갑자기 작아진 걸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스님이 한없이 거대해져서 우주 전체를 안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방에서 술독에 들어있는 바다를 퍼마시고, 얼씨구나, 어절씨구, 한바탕 큰 춤을 추다보면, 방구석에 있는 곤륜산 꼭대기에 옷자락이 걸려 확 찢어질 수도 있겠다. 아니면 옷자락에 걸린 곤륜산이 와장창 무너질 수도 있겠고. 상쾌, 유쾌에다 흔쾌를 넘어, 통쾌하고도 호쾌하다, 시여!


뭐라고? 스마트폰 속에 이미 우주가 다 들어 있다고? 우리 모두가 손바닥 위에다 우주를 올려놓고 놀고 있다고? 그 말도 맞네, 그 말도 맞아. 하지만 이 사람아. 자네가 말하는 그 우주는 조그만 상자 속에 갇힌 우주잖아. 스님은 한없이 거대해졌지만, 우리는 한없이 작아졌잖아. 스마트폰 지도 속의 길을 따라서 태평양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잖아.


글 : 이종문(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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