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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먼지 / 김상헌(金尙憲)

淸潭 2025. 5. 31. 08:17

티끌 먼지 / 김상헌(金尙憲)

청음집 제9 / 조천록(朝天錄)

 

연 땅에는 모래 바람 자주 부는데 / 燕地饒風沙

비 안 오는 가을날을 맞은 데이랴 / 況逢秋不雨

흩날리며 사방 들판 퍼지더니만 / 簸揚振四野

그득하게 온 구토에 꽉 차는구나 / 澒洞彌九土

해와 달은 운행 궤도 어그러지고 / 日月錯行度

하늘과 땅 온통 모두 흐릿해졌네 / 乾坤迷仰俯

강수 하수 맑고 탁함 뒤섞여지고 / 江河混淸濁

산악 모습 바라볼 수 없게 되었네 / 山嶽失觀覩

풀과 나무는 꽃과 잎새 더러워지고 / 草木翳花葉

새와 짐승은 털과 깃의 색깔 변했네 / 鳥獸變毛羽

깁 초롱은 누와 대에 격하여지고 / 籠紗隔樓臺

짙은 안개 촌마을에 내려 덮었네 / 漲霧埋村塢

진나라 가려다가 초나라 가겠고 / 之秦誤適楚

대산 위에 올라가도 노 땅 안 뵈네 / 登岱不見魯

갑작스레 일 땐 포위하는 것 같고 / 驟起若合圍

흩날린 땐 아양 떠는 것과도 같네 / 輕飛如媚

온갖 사물 모두 광채 잃어버리고 / 百物盡無光

만 생물들 다 똑같이 고통 당하네 / 萬類同受苦

천왕께서 섬돌 위에 나와 임하고 / 天王臨軒墀

대정에는 문무 신하 모두 모이매 / 大庭集文武

떠다니다 보의 위에 내려 뒤덮고 / 浮游蒙黼

흩어져서 잠조 위를 가리는구나 / 散漫欺簪組

관원들 다 허둥지둥 모이어 들고 / 驅馳衣冠會

아전들 다 내달리며 바삐 모이네 / 奔走吏胥聚

수레 뒤를 따라가며 자취 없애고 / 隨車沒軌轍

책상 위에 쌓여 문서 찍어 누르네 / 堆案壓文簿

누 시계를 맡은 관원 시각 아뢸 때 / 漏司奏時刻

자오조차 분간 능히 하지 못하고 / 未能分子午

장군들은 호령 내려 명령 발할 때 / 軍師發號令

깃발과 북 알아볼 수 없게 하누나 / 不得認旗鼓

변경에선 척후 보는 일을 파하고 / 邊上罷瞭望

행진할 땐 대오 온통 엉클어지네 / 行間亂部伍

논밭에선 밭 갈기를 집어치우고 / 壟畝輟耦耕

시전에선 장사꾼들 문 아니 여네 / 市廛伏商賈

나무꾼은 산이 어디 있나를 묻고 / 樵夫問山林

어부들은 배 댈 포구 못 알아보네 / 漁子疑洲浦

서생들은 붓과 벼루 팽개쳐 둔 채 / 書生閣筆硏

전주함에 훈고하길 중지하였고 / 箋註停訓詁

베를 짜던 여인네는 베틀 내린 채 / 紅婦下機杼

날줄 씨줄 걸린 실을 찾지 못하네 / 經緯暗絲縷

귀가 밝은 사광의 귀 막히었으니 / 師曠塞其聰

무슨 수로 악보 따라 연주를 하며 / 何由理樂譜

눈이 밝은 이루의 눈 흐려졌으니 / 離婁視不明

무슨 수로 정조 알아 분변하리오 / 曷因辨精粗

튕긴 먹줄 흐릿하여 아니 보이매 / 糢糊繩墨內

목수들은 규구 재는 거를 폐했네 / 梓匠廢規矩

귀협 사이 가득하게 쌓이었으매 / 塡委龜

점을 칠 때 종횡조차 틀려지누나 / 卜算謬橫豎

거울에다 예쁨 추함 비추어 보매 / 懸鑑照姸

희미하여 취사조차 할 수가 없네 / 熹微昧舍取

저울대를 들고 경중 헤아려 보나 / 持衡稱輕重

작은 눈금 숫자는 잘 보이지 않네 / 銖兩眩三五

주석에선 술동이에 수건 덮어서 / 酒席尊罍

목이 마른 사람들도 술 못 마시고 / 人渴不酌酤

기연에선 비단 자락 더럽혀져서 / 伎筵涴紈素

밀실에다 노래와 춤 감추어 뒀네 / 密室藏歌舞

들 뒤덮자 노루 사슴 크게 놀라서 / 蔽野麋鹿驚

무턱대고 길 가다가 쇠뇌에 맞고 / 冥行觸弓弩

물에 앉자 물고기들 미혹되어서 / 落水魚鼈惑

어지러이 그물 안에 걸리어드네 / 亂擲投網罟

늙은 말은 길 잃고서 거꾸로 가다 / 老馬反失道

길 막히어 담장 아래 기대어 있네 / 跼促依墻堵

밝은 본성 그 역시도 미혹되어서 / 慧性亦被迷

말 잘하던 앵무새도 입 다물었네 / 能言噤鸚鵡

어둑하여 한낮에도 초저녁 같아 / 窈冥晝如晦

수수에서 신하들은 임금 잃었네 / 睢水臣失主

양쪽 군사 서로 간에 보지 못하여 / 兩軍不相見

사막에서 오랑캐 쪽 향하여 가네 / 沙漠縱犇虜

찌끼 되어 옥로장에 뒤섞이고 / 泥渾玉露漿

먼지 되어 용근포를 더럽히어서 / 屑穢龍根脯

네 노인네 귤나무의 숲 속에 숨고 / 四老隱橘中

뭇 신선들 현포로다 피해 나가네 / 群仙避玄圃

한비는 막 비단 버선 아까운 맘에 / 漢妃惜羅襪

교호 걸어 잠그고서 깊이 숨었고 / 淵居鎖鮫戶

소녀는 또 옥과 같은 자태 거두어 / 素女斂玉姿

도로 백수 물 향하여 되돌아갔네 / 還歸白水滸

그런데도 나는 이런 때를 당하여 / 而我當此時

들판에서 미고편의 시를 읊누나 / 原隰賦靡盬

어찌하면 무홍 부채 펴서 막으며 / 障茂弘扇

무슨 수로 영서 총채 잡고서 털랴 / 那把靈犀

정신과 맘 온통 흐려 몽롱해지고 / 精神頓濛

눈과 귀는 안 보이고 아니 들리네 / 耳目等聾瞽

누런 먼지 수척해진 얼굴에 앉고 / 黃入瘦容

검은 먼지 바짝 마른 배에 쌓이네 / 埃墨積枯肚

때 긁히어 머리 감고 싶은 맘 들고 / 爬垢頭思沐

침 삼킴에 토하고픈 마음 생기네 / 嚥津舌欲吐

답답스런 기운 더욱 심하여지고 / 鬱鬱氣益痞

깊고 깊은 병은 더욱 낫기 어렵네 / 沈沈病難愈

사람들을 소생되게 해야만 하고 / 橫目汔可蘇

하늘 맘이 한번 크게 노할 만하니 / 天心庶一怒

은하수의 물결 끌어 흩뿌리고서 / 浥傾銀漢波

부상 나무 묶어 만든 비를 가지고 / 箒倒扶桑樹

육합이 다 맑아지게 깨끗이 쓸어 / 汛掃六合淸

온 천하에 고루 은혜 흠뻑 적시리 / 湛恩均率普

천구에 또다시 밝은 해가 비추면 / 天衢再照晰

만 리 길에 터럭조차 셀 수 있으리 / 萬里毫可數

아니면 또 서역 나라 불법을 배워 / 不然學西佛

흐르는 물 길어 뱃속 씻어낸 다음 / 流泉洗臟腑

영원토록 이 더러운 속세 벗어나 / 永辭濁穢鄕

청도부를 향해 길이 떠나가리라 / 長往淸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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