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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잡구(山行雜謳) 20수. / 丁若鏞

淸潭 2025. 5. 14. 06:40

산행잡구(山行雜謳) 20. / 丁若鏞

다산시문집 제5 / ()

 

봄을 잡아둘 방법이 없으니 / 無計留春住

오는 여름 맞이할 수밖에 또 있는가 / 何如迎夏來

그렇지 알겠다 절간이 좋겠구나 / 也知僧院好

산 속에 정자와 누대가 있으니 / 山裏有亭臺

 

무슨 생각이 갑자기 날 때는 / 幽懷猝發時

가을 하늘 치솟는 송골매가 되어 / 鷹隼秋天

뉘집 산이고 따질 것 없이 / 不問某家山

무작정 녹음 짙은 곳으로 간다네 / 綠陰多處去

 

안주야 있는 것이 좋지마는 / 誠難少

번잡하여 그거 할 것 없고 / 紛紜且勿爲

오직 한 병의 술만을 / 唯將一壺酒

동자 주어 들고 오게 한다네 / 付與小童持

 

원래 산이 좋아 그렇거니 / 本爲山林好

성 안에 나무 좋은 걸 어이 알리 / 那知城樹奇

하루 이삼 리만 걸어도 / 一行三二里

나무마다 꾀꼬리는 다 있다네 / 無樹不黃

 

넘실넘실 서쪽에 있는 못물 / 瀲灩西池水

연을 심자 말하는 자는 없고 / 無人話種蓮

세세 연년 다 깨진 초가집에서 / 年年破茅屋

둑 쌓을 돈만을 챙긴다네 / 但索築隄錢

 

모래밭 위는 생선 시장이요 / 沙上鮮魚市

다리 가엔 막걸리 집일러라 / 橋邊濁酒家

언제나 목로집 계집들은 / 由來壚上女

붉은 머리털이 왜놈 종자 같아 / 紅髮似夷鰕

 

물가에 자리잡은 초가집 / 臨水黃

그 속에는 약장수 영감이 사는데 / 中棲賣藥翁

한들한들 버드나무 몇 가지가 / 婆娑數枝柳

바람결에 발처럼 흔들거리네 / 搖作一簾風

 

대지팡이 댕글댕글 울리는 / 竹鏗鳴響

산허리로 나 있는 오솔길 하나 / 山腰一徑微

중은 취한 몸 가누며 지나가고 / 野僧扶醉過

아낙은 땔감을 이고 돌아오네 / 溪女戴樵歸

 

몸은 피곤하여 쉬기는 자주 해도 / 體倦休因數

마음이 한가로워 느슨하게 앉았다네 / 心閒坐遂遲

유독 석양빛이 비치는 곳에 / 偏於夕陽處

기이한 봉우리 몇 개 보였네 / 覺有數峯奇

 

산언덕은 첩첩이 바위인데 / 疊疊山坡石

잗단 철쭉꽃이 피어 있네 / 些些躑躅花

해마다 도끼질 액을 당해 / 頻年斤斧厄

괴롭게도 가장귀 진 나무가 되었군 / 辛苦有杈枒

 

점점 취할수록 걷잡기 어려운 광기 / 漸醉狂難禁

어중간히 읊으면 직성이 안 풀려 / 微吟意未通

어부곡 몇 마디를 외우다가 / 數聲漁父曲

새로 만강홍을 지었다네 / 新製滿江紅

 

병 안에 술이 이미 동이 나 / 已竭甁中酒

바위구멍 샘물을 찾기 시작했지 / 初尋石竇泉

자루바가지가 참으로 번거로워 / 癭瓢眞作累

허유가 잘했음을 더 잘 알겠네 / 彌覺許由賢

 

절 아래 천 길 비자나무 / 寺下千章榧

푸른 장막이 깊게 가로막았네 / 深深翠障橫

가련해라 두 갈래 물 위 길들 / 可憐上路

모두가 산골을 걷는 것 같아 / 都似峽中行

 

산길 걸어 피곤하던 참에 / 山路行方困

절 다락 당도하니 내 집과 같네 / 禪樓到似家

야들야들 누른 잎 나무들이 / 嫩黃千萬樹

교교한 꽃보다 훨씬 더 낫네 / 全勝寂蓼花

 

삼경의 비가 나뭇잎 때리더니 / 打葉三更雨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네 / 穿林一炬來

혜공과는 진짜 연분이 있나봐 / 惠公眞有分

바위문을 밤 깊도록 열어뒀다네 / 巖戶夜深開

이때 혜장이 기약도 없이 왔었음

 

언덕 여기저기 동백나무들 / 夾岸山茶樹

아직도 더러더러 붉은꽃이 보이네 / 猶殘晩紅

어떻게 해야 비단장막을 가져다가 / 那將錦步障

연화풍 못 들어오게 막아볼까 / 遮截楝花風

 

밤새워 내리는 영매우가 / 連夜迎梅雨

사람을 잡아 얘기꽃 피웠네 / 淹留喜有言

오나 가나 어차피 객이기에 / 只緣歸亦客

산문을 나설 생각이 없다네 / 無意出山門

 

문에 주련은 김생의 글씨이고 / 門帖金生筆

누각 현판은 도보가 쓴 것인데 / 樓懸道甫書

세대가 멀어 가짜일까 의심하지만 / 世遙疑有贋

무게 있는 그 이름 허전이 아니라네 / 名重覺無虛

 

옛날 비는 왜놈이 깨버렸어도 / 倭奴昔破碣

공자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지 / 公子尙留名

구슬퍼라 구리용으로 장식한 문에 / 惆悵銅龍闥

왕의 형이요 부처 형도 된댔었는데 / 王兄做佛兄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만덕사(萬德寺)에 가 논 일이 있어 드디어 그 절을 원당(願堂)으로 삼고 기적비(紀蹟碑)를 세워두었는데 임진왜란 때 그 비가 깨지고 전해지지 않았으며, 또 양녕대군(讓寧大君)이 효령에게 말하기를, “나는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으면 부처의 형이 될 것이다." 하였음

 

몇 굽이 흐르는 산골 물이 / 數曲山谿水

유유히 돌아가는 날 전송하는데 / 悠然送我回

막상 가려니 천석이 너무 좋아 / 臨辭好泉石

곳곳마다 머뭇머뭇거린다네 / 無處不遲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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