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심곡서원(深谷書院)을 중건할 때의 상량문

淸潭 2018. 12. 9. 14:31

심곡서원(深谷書院)을 중건할 때의 상량문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용인(龍仁)에 있는 선생의 묘 곁에 있다.

 

사람의 도에 있어서는 스승을 높이 받들고 학문을 강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것이 없으며, 문(文)이 여기에 있으니 경건한 마음으로 영혼을 모실 장소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여러 사람들이 계책을 합하고 순하게 협조하여 예전의 집에 광채를 더하게 되었다.

문정공(文正公) 정암(靜庵) 선생께서는 도통(道統)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종주로 삼고, 학통(學統)은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에게 전해 받았다. 집 안에 거처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천연히 효성스럽고 우애로운 품성으로 하였으며, 덕을 진보시키고 학업을 닦을 때에는 스스로 성현이 될 것으로 기약하였다. 학문의 연원은 일찌감치 한훤당(寒暄堂)에게 사사(師事)하였으며, 실천하는 것은 날마다 진실에 나아갔는바, 신명(神明)에게 질정할 수 있고 사림(士林)들이 의지하는 바이다. 그러니 어찌 오직 의리의 정미한 사이에서만 살피지 않는 일이 없었겠는가. 대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즈음에도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종(中宗)께서 교화를 새로이 펼 때를 당하여 한나라 조정에서 선비를 천거하던 것과 같은 거조가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불차탁용(不次擢用)의 예로 대접하였으나, 겸손하게 사양하고서 대과(大科)를 통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이에 서로의 뜻이 꼭 들어맞아서 하는 일마다 모두 환히 빛나게 되자, 드디어 등용하고서 강기(綱紀)를 책임지는 자리를 맡겨 주었다. 밝은 임금께서 총애하여 장차 가뭄이 들었을 때에 임우(霖雨)가 되게 하고 국을 끓일 적에 염매(鹽梅)가 되게 하려고 하였으며, 선생의 마음은 당우(唐虞) 시대보다도 더 뛰어난 시대로 만들어 임금으로 하여금 요 임금이나 순 임금이 되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필부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집집마다 정표(旌表)하여 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뭐가 어려웠겠는가.

아, 우리 도가 행해지지 않음이여, 참언의 망극함이 애통하다. 동도처사(東都處士)는 걱정스러워 진췌(盡悴)의 시를 읊조렸고, 남국소인(南國騷人)은 맘 슬퍼서 초혼(招魂)의 부(賦)를 읊었다. 그러나 공론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백 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으며, 사문(斯文)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일맥(一脈)에 의지하였다. 이에 청오(靑烏)의 옛 자리를 택하였으며, 이어 백록(白鹿)의 새로운 규모를 회복하였도다. 남쪽을 향한 자리에 위패를 모셨으니 두 기둥 사이에 앉은 꿈에 완연히 부합되었고, 가을 하늘의 기운이 상쾌하니 아성(亞聖)의 자태를 상상할 수 있겠다.

도는 참으로 세상을 따라서 더러워지거나 높아지는 법이고, 일은 혹 때를 인하여 거행되거나 폐해지는 법이다. 병화(兵禍)의 뒤끝이라 쓸쓸해졌으며, 현송(絃誦)의 장이 적막해졌다. 조두(俎豆)의 의용에 있어서 오래도록 중정(仲丁)의 예가 폐해졌으며,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학문을 함에 있어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는 정성이 부족하였다. 유학(儒學)의 풍조가 이로 인해 척박해졌으며, 선비들의 공론이 상심하여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다. 경영하여 새로 건립하매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매 낮아 축축한 곳을 버리고 상쾌하고 밝은 곳으로 나아갔으며, 공을 꾸미고 일을 헤아리매 승묵(繩墨)을 엄격히 하고 규모(規模)를 바르게 하였다. 당실(堂室)에 오르면 우러르는 마음이 더욱더 부지런해지고, 간책(簡策)을 보면 묻고 답하는 의리가 그 안에 있다. 이는 실로 후생들이 성현을 우러르고 도를 지키려는 뜻인 것이며, 또한 역시 성대한 조정에서 학문을 일으키고 문을 숭상하는 공인 것이다. 장차 긴 대들보를 올리고자 하여 길한 날짜를 가리었다. 송(頌)은 적이 진(晉)나라의 장로(張老)를 본받고자 하나, 재주는 도리어 초(楚)나라의 양춘곡(陽春曲)에 부끄럽다.

 

어기영차 대들보의 동쪽 향해 떡 던져라 / 兒郞偉抛梁東

아름답게 선비 풍모 떨쳐져서 맘 기쁘네 / 喜見彬彬振士風

제자들아 남들이 안 알아줌을 걱정 말라 / 弟子莫憂人未識

누가 힘써 학문하고 공 이루지 못했으랴 / 也誰勤學不成功

 

어기영차 대들보의 서쪽 향해 떡 던져라 / 兒郞偉抛梁西

큰 도 하늘 같건마는 사람 절로 미혹되네 / 大道如天人自迷

성현 되는 참된 길을 알고 싶을 경우에는 / 欲識聖門眞路脈

현관 문의 일환니를 일찌감치 뚫으시게 / 玄關早透一丸泥

 

어기영차 대들보의 남쪽 향해 떡 던져라 / 兒郞偉抛梁南

도가 바로 눈앞 있어 마치 의참한 것 같네 / 道在眼前如倚參

군자들은 예전부터 항상 자중하였거니 / 君子由來恒自重

하늘에다 땅과 함께 삼재가 되었다네 / 才將天地竝爲三

 

어기영차 대들보의 북쪽 향해 떡 던져라 / 兒郞偉抛梁北

대우께선 그 당시에 촌음조차 아끼셨네 / 大禹當年寸陰惜

해와 달은 말달리듯 잠시도 안 멈추거니 / 日月如馳不少留

세월이 안 기다려 줌 슬퍼한들 무슨 소용 / 傷悲歲莫知何益

 

어기영차 대들보의 위를 향해 떡 던져라 / 兒郞偉抛梁上

구부려서 인문 보고 우러러서 천상 보네 / 俯察人文仰天象

삼광 오악 발산하는 정결한 빛 일렁이니 / 三光五岳盪精光

남아 장부 가슴속엔 도량 있어야만 하네 / 男子胸中要器量

 

어기영차 대들보의 아래 향해 떡 던져라 / 兒郞偉抛梁下

밭 갈면서 버려진 들 없다고는 말을 말라 / 耦耕莫道無閒野

혀를 보습으로 삼고 종이를 밭 삼았거니 / 舌爲耒耟紙爲田

《서경》 속에 삼모 있고 《시경》 속에 이아 있네 / 書有三謨詩二雅

 

삼가 바라건대, 대들보를 올린 다음에는 도서(圖書)는 깨끗하여 아름다워지고 잠리(簪履)들은 편안하고 안온하여져, 모범을 따르고 지켜서 사람들이 사도(師道)의 좋음을 알게 하고, 학업을 공경히 하면서 여럿이 모여 즐겨서 선비들이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병통이 없게 하소서. 공고하기는 태산(泰山)이나 황하(黃河)와 같이 나란히 오래가고, 밝고 환하기는 해나 달과 더불어서 함께 밝게 빛나, 후진들이 공경하고 공경하며 엄숙하고 엄숙하게 하소서.

 

[주]심곡서원(深谷書院) : 경기도 용인(龍仁)에 있는 조광조(趙光祖)를 제향(祭享)한 서원이다.

 

深谷書院重建上梁文 在龍仁先生墓傍

人之有道也。莫尙尊師講學之方。文不在玆乎。宜新揭虔妥靈之所。僉謀協順。舊觀增光。文正公靜庵先生。道宗鄒魯。學傳程朱。居家事親。天然孝友之性。進德修業。自以聖賢爲期。淵源夙接於寒暄。踐履日就於眞實。神明可質。士林攸依。豈惟義理精微之間。無事不察。蓋於視聽言動之際。非禮勿爲。當中廟更化之辰。有漢庭薦士之擧。朝家則待以不次。謙遜而進由大科。爰契合而動皆昭融。遂登庸而畀以綱紀。明主之眷。將擬旱作霖雨羹作鹽梅。先生之心。欲使出爲唐虞君爲堯舜。庶幾無匹夫不獲。何難致比屋可封。嗟吾道之不行。痛讒言之罔極。東都處士。憂傷殄瘁之詩。南國騷人哀怨招魂之賦。公論復起。不待百年。斯文再興。尙賴一脈。迺卜靑烏之舊地。仍恢白鹿之新規。南面專祠。宛符兩楹之夢。秋天爽氣。想像亞聖之姿。道固隨世而汚隆。事或因時而擧廢。蕭條兵燹之後。寂莫絃誦之場。俎豆儀容。久輟中丁之禮。師生問學。多乏爲己之誠。儒風以之澆漓。士論莫不傷歎。經營重建。遠邇咸輸。舍舊圖新。去卑湫而就爽塏。賁功程事。嚴繩墨而正規模。升堂室則瞻仰之懷逾勤。視簡策則答問之義斯在。玆實後生景賢衛道之志。抑亦盛朝興學右文之功。將擧脩梁。載涓吉日。頌竊效於晉人張老。才顧慙於楚曲陽春。

 

兒郞偉抛梁東。喜見彬彬振士風。弟子莫憂人未識。也誰勤學不成功。

兒郞偉抛梁西。大道如天人自迷。欲識聖門眞路脈。玄關早透一丸泥。

兒郞偉抛梁南。道在眼前如倚參。君子由來恒自重。才將天地竝爲三。

兒郞偉抛梁北。大禹當年寸陰惜。日月如馳不少留。傷悲歲莫知何益。

兒郞偉抛梁上。俯察人文仰天象。三光五岳盪精光。男子胸中要器量。

兒郞偉抛梁下。耦耕莫道無閒野。舌爲耒耟紙爲田。書有三謨詩二雅。

伏願上梁之後。圖書靜嘉。簪履安穩。循模守範。人知師道之賢。敬業樂群。士無自暴之病。鞏固指山河而等久。文明與日月而俱昭。有來欽欽。其永肅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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