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요 :
창덕궁(사적122호)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이었다.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 방면에 있다 해서 '동궐'이라고도 했다. 금천교가 세워지고(1411) 돈화문이 건립되는가 하면(1412) 조선 제 9대 성종때부터는 여러 임금들이 여기서 지내 본궁역할을 하는 궁궐이 됐다. 임진왜란 때에는 창덕궁은 불에 타고 만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이에 화가 난 백성들이 궁궐을 방화한 것이다.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 진 것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곳이다.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종 이후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낮은 야산과 골짜기에 원래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 채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손을 댄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정원이다.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불로문, 애련정, 연경당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정자와 샘들이 곳곳에 있다. 특히 가을 날 단풍 들때와 낙엽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모 대학의 대학생이 작성한 리포터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것 입니다
창덕궁이 우리나라 고궁의 최고봉이라는 것을 부끄럽지만 뒤늦게 알게 되었고, 창덕궁이 관광보다 보존이 목적인 빼어난 시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궁궐의 크기에 비해 관리인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창덕궁 보안문제도 그렇다.
그저 안내판에 출입금지라고만 써놓고 별다른 제재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이드의 진행 방식이 조선최고의 궁궐 견학에 어울리지 않았다. 만약 값싼 학생들을 반나절 교육시켜 진행하는 것이라면 전문 가이드나 공무원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쓰는 용어, 표정, 전문성 이런게 있어야지 한복만 입혀놓는다고 퀄리티가 높아지겠는가. 창덕궁은 이미 세계 문화유산이다. 보다 많은 관광객을 확보하려면 창덕궁내에서도 많은 이벤트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관광 코스를 만들고 관광객을 위해 많은 편의시설을 만들고 교통편도 좀 더 편리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창덕궁 과 더불어 다른 문화유산을 세계인에게 알려야 한다. 외국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좀더 창덕궁에 친숙하게 다가갈수있는 창덕궁만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위 학생의 작성한 내용을 보며 기성세대의 안일과 나태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정부의 졸속행정도 안타까움을 통감하며 나 자신부터라도 무엇인가는 해야겠다는 반성을 하며 게시물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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