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古典散文

나의 이름은

淸潭 2020. 9. 16. 18:17

나의 이름은

 
 
 

요사이 방송가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부캐’이다. 본디 온라인 게임 용어로, 주로 가동하는 캐릭터라는 의미의 ‘본캐’ 이외의 보조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 인물을, 프로그램 내에서 진행되는 에피소드에 따라 예닐곱 가지의 ‘부캐’로 설정하여 각각 이름을 달리 주고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한다. 에피소드에 따라 유명 인물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아 새로운 이름의 인물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어느 ‘부캐’로 분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분장과 의상처럼, 해당 인물은 캐릭터에 녹아들어 연기하면서 역할을 수행해나가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준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부캐’ 열풍은 점차 확산되고 있고 당분간 방송가의 유행이 될 듯하다.

 

‘부캐’가 대중을 매료시키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가 누구인 줄 누구나 뻔히 아는데도 뻔뻔하리만치 다른 사람인 양 연기하는 능청스러운 그 모습에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대중에게 이미 익숙한 존재에 여러 이름을 부여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여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면이 좀 더 본질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로 보았을 때 이름 자체가 존재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지만, 존재에 있어서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할 수 있겠다.

 

이름의 무게에 대해서는 옛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어떤 사람을 부르는 기제가 성명(姓名) 이외에도 자와 호가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 인식이 오늘날보다 더 뚜렷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자(字)는 대체로 이름의 뜻을 뒷받침하는 글자를 가져다 지었기에 어떤 새로운 의미를 담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호는 자신의 호를 스스로 짓든, 다른 사람의 호를 짓든, 대체로 짓는 사람의 바람과 지향을 대상에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대상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 존재가 지향점에 닿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는 1924년에 김택영이 김종기에게 호를 지어주면서 그 배경과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저자는 먼저 대상과 교유를 맺은 계기를 서술하고, 그를 천하의 장자라고 인식하게 된 이유가 자신의 편찬 사업, 그 중에서도 『한사이정』 의 간행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는 맥락상 금전적인 도움이었던 듯하다. 대상에 대한 서술은 간략하면서도 이미지는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저자가 1925년에 지은 「김종기소전(金種驥小傳)」의 내용은 비교적 상세하면서도 차이가 다소 있다. 저자가 단군 이래로 조선까지 근 오천 년 간의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한국소사(韓國小史)』라는 책을 쓸 때 조선 태조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에 대해 사실대로 기술하였고, 이 사실을 기휘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책의 간행을 앞두고 유림의 성토를 받게 되었는데, 금력이 모자랐던 저자가 김종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유림의 성토를 함께 받을까 염려하는 말을 하였으나, 그가 흔쾌히 도와주더라는 내용이다.

 

두 글에서 저자가 편찬했다는 책 제목이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사실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다만 저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김종기소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애초에는 대상을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입전된 사람들처럼 재산을 써서 인의를 행함으로써 한 세상을 호협하게 사는 인물로 인식하였다가, 『한국소사』를 간행할 때에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신 인상여(藺相如)와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의(大義)를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는, 대상이 장량과 같은 은자를 지향하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 바람은 결국 저자 자신에게 향해 있다. 어찌 보면, 조국인 한(韓)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한(漢)에 의탁하여 조국의 원수인 진나라를 멸망시킨 장량의 모습은, 일본에 침략당한 대한(大韓)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국의 문화 계승을 위해 역사와 문학 서적을 간행하는 데 평생을 바친 저자 자신과 닮아 보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가 대상에게 하필 역사 속의 수많은 은자들 중 장량을 본받으라고 한 이유는, 그가 결국 조국의 원수를 갚고 속세를 훌쩍 떠나 유유자적하게 살았기 때문이었으니, 이는 저자의 바람이기도 했으리라.

 

‘독은(篤隱)’이라는 호를 가진 옛 사람은 재물을 써서 인의를 실천하였으면서도, 모르긴 모르겠거니와, 평생 동안 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끊임없이 장량을 바라고 지향했을 것이다. 이름이란,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다른 사람들이 부르고 또 부르기에 더욱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십 번은 더 불렸을 내 이름을 생각하며, 지금 내가 바라고 지향하는 이름은 무엇인가 돌아본다. 그 이름을 되뇌고 되뇌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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