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가볼만한 곳

갈대는 외롭지 않아, 새들이 있으니까

淸潭 2007. 11. 16. 14:14

 

갈대는 외롭지 않아, 새들이 있으니까

 

               천수만
 


 
대한민국이 좁다고 합니다. 변변한 볼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정말일까요? week&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갑니다. 격주에 한 번, 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이 땅의 비경을 만나 보십시오. 이번 주엔 그 첫 번째 순서로 ‘새 박사’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서산 천수만 얘기를 들려드립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시리즈는 문화관광부·한국관광공사가 함께합니다.

 석양에 물든 갈꽃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충남 서산 천수만 간척지. 밀레의 ‘만종’처럼 평화로운 들판에 아연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탐조대의 인기척에 놀란 수천 마리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큰기러기다. 오렌지 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날개 그늘에 가려 한밤처럼 캄캄해진다. 허공을 가르는 요란한 날갯짓, 거친 새 울음소리에 갈대가 놀라 부르르 떤다. 큰기러기의 비상은 무질서의 극치다.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다.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내 잘 훈련된 병정처럼 순식간에 V자로 대열을 정비한다. 그리고 석양을 배경으로 멋진 ‘연하장 그림’을 연출하며 날아간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천수만을 찾았다. 새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동구 밖으로 손자 마중 나가는 할아비 심정이랄까, 찬 서리 내릴 때마다 도지는 고질병이랄까. 나이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새 박사’의 오랜 버릇이다.

 
천수만은 큰기러기와 가창오리 등 40여 만 마리 철새가 모여드는 세계 최대의 철새 도래지다. 생태계 파괴 논란을 빚은 담수호·간척지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새들의 천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특히 30여㎞에 이르는 간월호 제방 주변은 말 그대로 새들의 낙원이다.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는 순백의 백로와 잿빛 왜가리, 오리 사냥에 성공해 모처럼 만찬을 즐기는 매 ……. 주행성인 큰기러기 떼는 들판 위로 우아한 비행을 선보이고, 야행성인 가창오리는 간월호 위를 떠다니며 휴식을 취한다.

 수많은 새가 있지만 최고의 진객(珍客)은 역시나 가창오리다. 가창오리의 고향은 러시아 바이칼 호수. 날씨가 추워지면 먹이를 찾아 따뜻한 남쪽나라, 천수만으로 날아온다. 보통 보름에서 두 달이 걸린다. 첫 기착지인 서산 천수만의 날씨가 추워지면 군산의 금강으로, 금강마저 얼어붙으면 해남의 고천암호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재미있는 건 그 사이 이름이 바뀐다는 것. 바이칼 호 인근에선 작은 오리라는 뜻의 ‘바이칼 틸(baikal teal)’로 불리지만, 북한에선 뺨 모양이 태극무늬와 비슷하다고 태극오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휴전선을 넘으면 비로소 가창오리가 되는 것이다. 맑고 순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뜻이다. 가창오리에게 ‘보석 같은 새’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크기는 작아도 40여 종의 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오렌지 빛 하늘이 암청색으로 변하자 간월호가 부산해진다. 드디어 가창오리의 군무(群舞)가 시작될 시간이다. 선봉대 수백 마리가 수면을 박차자 곧이어 수십만 마리가 동시에 날갯짓을 시작한다.

 가창오리의 군무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예술품보다 감동적이다. 시시각각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점이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인다. 행진하는 군병처럼 3∼4㎞ 대열을 지어 날아가는가 싶으면 한순간 거대한 회오리가 된다. 팽이처럼 돌던 회오리는 불과 2∼3초 만에 거대한 사자로 변신한다. 두 무리로 갈라졌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정면으로 부딪치기도 한다. 가창오리 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같다.

 해 저문 간월호를 무대로 약 15분간 화려한 군무를 선보인 가창오리 떼가 느닷없이 간월호 제방으로 내리꽂힌다. 추수가 끝난 논으로 먹이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귓전을 때리는 요란한 날갯짓 소리. 수십만 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듯 한다. 배를 채운 가창오리 떼는 다시 천수만 상공으로 날아올라 몇 차례 더 화려한 춤을 선보이더니,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자연이 선물한 세계 최고의 공연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천수만 여행=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충남 서산의 천수만까지의 거리는 약 13㎞. 간월도 입구의 간월영농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세계 최대의 철새 도래지인 서산A지구 간척지와 간월호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철새 관찰 포인트는 해미천 하류 2곳과 간월호 제방 중간에 설치된 탐조대. 해가 떨어진 직후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펼치는 화려한 군무를 구경할 수 있다. 해미천 하류에는 노랑부리저어새 등 희귀한 새들이 많다.

천수만철새기행전위원회(041-669-7744)는 25일까지 간월도 일대에서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 기행전’을 개최한다. 철새 도래지의 서식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생태체험관을 비롯해 무논탐조대, 체험학습장, 장터먹거리마당 등이 마련돼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단체탐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 시간 운행된다.
간월암은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 밀물 땐 뭍이 되고 썰물 땐 섬이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휘영청 보름달이 밝은 밀물 때면 암자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신비롭다.

 그 외 서산의 볼거리로는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처형된 해미읍성, 개심사, 안견기념관 등이 있다. 서산시 문화관광과 041-660-3290.

■먹거리=간월도는 대추·호두·은행·굴 등을 넣어 많든 영양굴밥으로 유명하다. 굴밥에 양념장을 살짝 뿌려 비빈 후 어리굴젓을 얹어 먹는다. 간월도회센터(041-664-8875) 등 영양굴밥 전문점이 많다. 간월도어촌계(041-662-4622)에서 판매하는 어리굴젓은 초겨울에 채취한 굴로 만들어 싱싱하다.

◆윤무부 교수는=1941년 거제 출생.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새 박사’로 유명하다. 새를 연구하기 위해 평생 한국의 산하는 물론 바이칼호, 몽골, 태국, 필리핀, 호주 등을 누볐다. 새 사진 60만 장과 30분짜리 동영상 1600여 개, 새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 320개를 소장하고 있다. 새 관련 자료를 전시할 ‘새 박물관’을 만드는 게 꿈. 『한국의 새』 『새박사 새를 잡다』 등 저서 1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