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삼십 운[苦熱三十韻] / 丁若鏞
다산시문집 제2권 / 시(詩)
한 해 한 번 더위를 견뎌왔으나 / 一年一耐暑
금년에는 견뎌내기 너무 어렵네 / 今歲苦難能
툭 트인 난간이야 있긴 하지만 / 縱有風軒敞
물가 정자 오르고픈 마음 간절해 / 偏懷水榭登
마른 마을 샘물이 시름겹고요 / 村愁眢井涸
시든 전답 작물이 일어났으면 / 田祝槁苗興
사마상여 소갈병 가련코 말고 / 暍病憐司馬
서늘한 좌승 누대 그립구나 / 涼臺憶左丞
옷을 풀어헤쳐서 손님 거절코 / 解衣辭熱客
걸상 높이 매달아 친구도 사절 / 懸榻謝親朋
맑고 시원한 야윈 학 부끄럽다면 / 淸爽羞癯鶴
어리벙벙 배부른 매 다름없어라 / 昏沈若飽鷹
차가운 음식 국수가 탐이 난다면 / 冷餐貪素麵
이슬에 누워 비단을 물리친다네 / 露臥却靑綾
멱감는 까마귀 쫓아도 다시 또 오고 / 浴烏驅還至
조는 아이종 깨워도 아랑곳 않아 / 眠僮喝不懲
인간 세상 도무지 열기뿐인데 / 人寰都是熱
하늘 공간 어느 때 맑아지려나 / 天宇幾時澄
기왓장에 붉은 기운 아직 피는데 / 瓦氣游紅縷
처마끝엔 어느새 별들 사라져 / 簷流斷玉繩
풍융은 그야 물론 기가 죽었고 / 豐隆應蹙伏
요귀 한발 오히려 기세가 등등 / 妖魃尙憑陵
새벽녘 가까스로 숨 돌릴 적에 / 殘夜方纔息
아침해가 어느새 둥실 떠올라 / 朝曦倏已昇
자욱한 안개 금방 걷히더니만 / 沈淫俄霧卷
높은 산에 다시 구름 달리네 / 屼嵂更雲騰
아서라 차솥에는 불 때지 말고 / 茶鼎休添火
오이 그릇 번갈아 얼음을 넣자 / 瓜盤遞點氷
황새 울어 들 아낙 기뻐한다면 / 鸛鳴欣野婦
용 게을러 호승은 울화 치밀어 / 龍懶怒胡僧
메마른 매실 살구 당장에 익고 / 梅杏晞仍熟
축축한 버섯류들 데워질 판국 / 芝菌濕易蒸
모기 물어 아침에도 장막을 치고 / 蚊侵朝尙幔
나비 덮쳐 밤에도 등불 아니 켜 / 蛾撲夜難燈
술 따를 제 붉은빛 동이에 뜨고 / 瀉酒霞潮榼
시구 쓸 제 땀방울 종이에 뚝뚝 / 題詩汗滴藤
해가 길어 필묵이 멀리해지고 / 日長疏翰墨
바람 부는 누각이 그리워지네 / 風至戀觚稜
못 위의 연꽃 한창 봉오리 맺고 / 池藕花方蘊
산중의 석류 열매 차츰 영그네 / 山榴子漸凝
소리 질러 기맥의 힘이 지치고 / 叫呼疲氣脈
괴로움에 가슴을 때려보누나 / 辛苦拊心膺
산골 누운 두공부시름겹거니 / 臥峽愁工部
광릉땅 물결 구경 부럽다마다 / 觀濤羨廣陵
답답하여 사탕물 자꾸 마시고 / 蔗獎煩更飮
나른하여 탁자에 몸을 기대네 / 棐几倦相凭
더위 비록 계절의 본색이지만 / 溽暑雖時令
날 항상 맑은 것도 중도 어긋나 / 恒暘舛庶徵
초복 위세 이처럼 혹독하거니 / 上庚威已酷
남은 더위 기승을 더욱 부리리 / 殘暑勢應增
솔소리에 이마를 들고 싶지만 / 松籟思軒頂
방석에서 팔꿈치 베고 있을 뿐 / 蒲團懶曲肱
약간씩 일어나는 먹구름 보며 / 油雲看起寸
한 되 가득 시디신 과일 반기네 / 酸實喜盈升
장중해도 독사엔 놀라고말고 / 莊重猶驚蝮
관대해도 파리에 화를 내누나 / 寬弘亦怒蠅
더위 추위 모두가 번갈아 변해 / 炎涼皆迭變
시절이 서로서로 뒤를 잇거니 / 時序有交承
두렵다 얼음 서리 때가 되어서 / 却恐氷霜至
살을 에는 추위가 오면 어쩌지 / 寒威高一層
[주-D001] 서늘한 좌승 누대 :
좌승은 중서성(中書省) 벼슬 이름으로 당 나라 때 중서령을 지낸 배도(裵度)를 가리킨다. 배도가 벼슬에서 물러나 낙양(洛陽) 남쪽의 오교(午橋)에 꽃나무 만 그루를 심고서 그 중앙에 여름에 더위를 식힐 누대와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집을 짓고 녹야당(綠野堂)이라 이름을 붙인 뒤에 백거이(白居易)ㆍ유우석(劉禹錫) 등 문인들과 모여 시주(詩酒)로 소일하였다. 《新唐書 卷173 裵度傳》
[주-D002] 풍융 :
비를 내리는 일을 맡고 있다는 바람의 신.
[주-D003] 한발 :
가뭄의 재앙을 일으킨다는 신.
[주-D004] 황새 …… 기뻐한다면 :
《詩經》 豳風 東山의 “개미둑에 황새 우니 방안에서 아낙 한탄[鶴鳴于垤 婦歎于室]”을 인용한 것임. 황새는 물을 좋아하므로 날씨가 흐릴 기미가 있으면 운다고 한다.
[주-D005] 용 …… 울화 치밀어 :
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는 신통한 힘을 지녔다는 전설상의 동물이고, 호승은 인도의 중이란 뜻이다. 인도의 어떤 중이 용에게 비를 내리게 했다는 고사가 있을 법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6] 두공부 :
당 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별칭.
[주-D007] 광릉땅 물결 구경 :
《文選》 권34 七發의 “팔월 보름날 여러 공후(公侯) 및 먼 지역에서 사귄 형제들과 함께 광릉의 곡강(曲江)으로 물결치는 것을 구경하러 갔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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