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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봉암사 대법회가 시작할 무렵 쏟아지기 시작하는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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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에 이렇게 거센 빗줄기가 쏟아질 줄은…. 잠깐 비가 오고 돌풍과 우박이 쏟아질 수 있다는 일기예보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전날 밤 하늘엔 별도 총총했고 새벽엔 안개도 자욱했다. 누가 보아도 봉암사 대법회가 비로 인해 차질을 빚을 줄을 몰랐다.
그러나 하늘은 대중에게 맑은 날씨를 허락하지 않았다. 행사를 불과 15분 앞둔 10시45분. 갑자기 몰려든 구름은 돌연 굵은 빗줄기를 만들어냈다. 행사 진행을 이끌었던 봉행위원회도 당황했다. 전날 비가 오더라도 준비했던 그대로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결정했었지만 쏟아지는 비는 부슬비 차원을 이미 넘어서 있었다. 거기에 돌개바람까지….
전국 각지에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봉암사로 모여든 1만여 불자들도 순간 당혹감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중진 스님도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 불교가 과보를 톡톡히 받는다”며 깊은 숨을 토해냈다.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온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불자들도 많았다.
11시 정각. 비가 오지만 시간에 맞춰 행사가 진행된다는 봉행위원회의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경내에 흘렀다. 하지만 당초 앉아서 하려는 계획 대신 서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처마 밑에 있던 불자들은 대웅전 앞으로 촘촘히 몰려들었다. 1000여 명의 스님과 9000여 재가불자들은 쏟아지는 비와 마주하고 섰다. BTN, KBS, MBC, SBS, YTN 등 방송사를 비롯해 스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으며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던 수십 명의 기자들도 갑작스런 소나기에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오는 게 아니었어요. 소풍갈 때나 수학여행 때 내가 끼면 그날은 꼭 비가 왔어요. 휴가 때도 그래요. 맑다고 해서 휴가를 정하면 그날 꼭 비가와요. 내가 오늘도 비가 올 줄 알았다니까. 내 사주에 용이 세 마리가 들어있다나 뭐라나.” SBS 기자의 말이었다.
어쨌든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는 11시부터 진행됐다. 봉암사 결사 경과보고를 맡았던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이 예상에는 없던 “조계종은 선거제도를 없애라”는 뜻밖의 강한 발언을 했음에도 염려했던 수좌 스님들의 ‘단지(斷指) 등 돌출행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는 비속에서 행사는 빠르게 이어졌고 이날의 클라이막스로 일컬어졌던 참회시간에는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영진 스님이 비장한 목소리로 참회문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비가 온 탓에 무릎을 꿇고 엉덩이는 든 채 두 손을 모으는 장궤합장 대신 그냥 서서 합장을 한 채 이루어졌다. 이어 청법게 및 짧은 입정에 이어 종정 스님의 법어가 뒤를 이었고 사홍서원으로 봉암사 대법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자 굵은 빗줄기가 금세 가늘어졌고 20여 분 더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따가운 햇살과 청명한 하늘이 봉암사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조금만 일찍 비가 그쳤으면 좋았을 거라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모두 아쉬워했다. 참석했던 스님들과 불자들도, 행사 진행을 맡았던 종무원들도, 또 취재를 했던 기자들도….
하지만 이날의 아쉬움은 정말 날씨 때문이었을까? 만약 날씨야 어쨌든 처음 계획대로 했다면? 나이든 불자님들의 건강을 염두에 두었다면 최소한 스님들만이라도 여법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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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조계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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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오르는 계단 위를 뒤덮은 ‘부처님 法대로 살자’라는 구절은 47년 전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정법의 불씨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시대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직 ‘부처님 법’에 의지해 물러남이 없는 정진을 하겠다는 눈 푸른 납자들의 거룩한 다짐이자 선언인 것이다. 이번 60주년 기념대법회 또한 그 뜻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60주년 기념선언문에서 스스로 밝혔듯 ‘뼈저린 참회를 통해 초심으로 수행과 전법의 본분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의 자리’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날 예정된 장궤합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60년 전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던 당사자이자 法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종정 스님이 법단에 올랐음에도 삼배 또한 올리지 않았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연등불이 진흙길을 걷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깔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던 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면벽 9년의 스승 달마의 마음을 얻기 위해 퍼붓는 폭설 속에서 꼬박 밤을 지새우고 왼쪽 팔까지도 싹둑 잘랐던 혜가 스님의 결연함이 아니더라도, 서슬 퍼런 18가지의 공주규약 중 하나라도 어기면 가차 없이 내쫓았던 성철 스님의 엄격함이 아니더라도…. 이날 진흙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참회진언을 외우고, 진흙바닥에 이마를 대고 법의 상징 앞에 지극한 삼배의 예로써 경배를 드렸다면 이를 지켜보는 현장의 불자들은 물론 방송과 신문을 통해 이날의 광경을 지켜봤을 일반 대중들은 어땠을까?
만약 봉암사 대법회가 이랬다면 이날의 비를 누가 탓했을 것이며, 법회 후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누가 찬탄하지 않았으랴. 결과적으로 이날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는 그저 ‘불교의 과보’였을 뿐 시련을 견디고 일어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부처님의 가피’로는 끝내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조계종에서 조선일보 구독운동이 일어난 것은 10월 5일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의 이를 결의하고, 10월 9일 조계종총무원이 전국 2300여 사찰에 조선일보 거부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조선일보 구독 거부 지침’을 전달하면서부터다. 그리고 곧바로 이 운동은 다른 종단을 비롯한 범불교적으로 점덤 확산돼 갔다. 그만큼 그동안 조선일보가 △신정아 학력위조, 종단과 연관시켜 근거 없는 권력형 비리로 의혹제기 △‘린다김’에 비유하며, 선정적 흥미꺼리로 제기 △“부정한 돈을 지급받은 사찰, 신정아에 사례비 주었다”고 허위사실 유포 △“사찰 관련 인물? 변양균 고급숙소 숙박비 누가” 추측성 음해 보도 △“월정사 문화재보수비, 신정아와 관련된 것”이라는 추측․왜곡 보도 등을 통해 불교계에 도덕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구독 거부 운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선정국에서 특정 대선후보나 정당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는 조계종의 확고한 의지도 담고 있었다.
그러나 10월 19일 문경 봉암사에는 이에 대한 조계종의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계종은 불과 열흘 전 전국 사찰에 ‘조선일보 구독 거부 지침’을 하달했고 그 첫 번째가 ‘법회와 사찰 행사 등을 통해 종단 차원의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의 의미를 알리고 조선일보 구독거부를 실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봉암사 대법회는 ‘법회와 행사’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었음에도 법회 내내 조선일보 구독 거부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두 번째 지침 내용인 ‘사찰 입구에 조선일보 거부 현수막을 부착할 것’이라는 내용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세 번째 지침사항이었던 ‘사찰을 찾는 방문객에게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 홍보물을 나누어 주고 서명 운동을 진행할 것’도 물론 현실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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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법회가 끝나자 맑아진 봉암사의 하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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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은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 구독 거부 내용의 현수막 2장과 스티커를 가지고 갔으며, 대한불교청년회 회원 20명도 이날 서명운동을 전개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총무원 측은 보도자료에서 봉암사 대법회 행사의 배경에 ‘특정 사건을 빌미로 불교계 전체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을 형성하려고 하는 의도를 차단하고, 언론, 정치권 등에 불교도 결집의도를 표명’하겠다고 밝혔었다.
총무원 한 관계자는 그러나 “봉암사 수좌 스님들이 행사 당일 아침에 이 자리는 봉암사 결사를 기념하고 되새기는 자리이기 때문에 조선일보 거부 현수막을 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이에 총무원에서도 그 취지에 공감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50~60년대 ‘불교정화’ ‘불교자주화’의 원천이 되었던 봉암사 결사와 언론․정치권․검찰 등 불교 폄하 의혹 세력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것이 봉암사 결사 정신에 정말 어긋나는 것일까. 또 총무원이 ‘성전(聖戰)’이라는 낯선 표현까지 써가며 강력히 추진했던 이 운동이 정말 정당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이번 봉암사 대법회에서도 이루어졌다면 이번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하나의 분기점이 됐을 거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조계종총무원이 총력전을 선언했다는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은 ‘종립특별선원’ 봉암사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922호 [2007-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