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독서 이십 운(讀書二十韻) / 장유(張維)
淸潭
2025. 5. 12. 17:42
독서 이십 운(讀書二十韻) / 장유(張維)
계곡선생집 제32권 / 칠언 배율(七言排律) 7수(首)
긴긴 여름 외딴 시골 외로이 지내는 몸 / 長夏窮村只索居
오두막 찾는 거마 소리 한 번도 들리잖네 / 絶無車馬過吾廬
남쪽 지방 귤나무 숲 일궈 볼 생각 없이 / 不栽南國千株橘
서쪽 창가 기대어서 서가의 책 뽑아 읽는다오 / 且讀西窓一架書
흥이 나면 이따금씩 그런 대로 고무될 뿐 / 興到有時聊鼓舞
일과(日課)가 삼엄해서 편히 쉴 겨를 없소 / 課嚴無暇得虛徐
사장(詞章)의 원천 막힐세라 늘상 물길 터야 하고 / 詞源底滯常須導
문예(文藝)의 밭 황무하니 호미 들고 김매야지 / 藝圃荒蕪便要鋤
천고의 정화(精華)를 씹어서 음미하고 / 千古精英供咀嚼
백가의 방향(芳香) 숨결 속에 스며드네 / 百家芳潤入呼噓
주정공사 전해 오는 성현의 말씀 / 周情孔思傳群聖
다섯 수레 넘치는 한 당의 시문 / 漢筆唐詩溢五車
칠정 벌려 서 있으나 북극성 향해 돌고 / 七政森羅環北極
뭇 줄기 유달라도 귀허로 모여드네 / 衆川派別會歸墟
술에 잔뜩 취한 듯 진심도 곧잘 털어놓고 / 沈酣好取輸方寸
천지(天地)를 부앙하며 태초를 밝히누나 / 俯仰居然極太初
집 밖에 나갈 필요 있나 우주가 이 속에 있는 것을 / 不出戶庭觀宇宙
취생몽사(醉生夢死) 면하면서 일월(日月)을 마냥 보내노라 / 免敎醉夢送居諸
회심처(會心處) 만나면 해설은 모두 군더더기 / 得逢會意何煩解
망언의 경지에선 혼자 탄식도 하노매라 / 每到忘言或自歔
이웃집 벽을 뚫고라도 공부해야 하고말고 / 鑿壁還須待鄰舍
따비밭 갈면서도 허리춤엔 늘상 경서(經書) / 帶經猶可事菑畬
반 세상 헛된 명성 정말 잘못되었는데 / 虛名半世眞相誤
다생에 걸친 습벽(習癖) 쉽게 없어지지 않네 / 結習多生不易除
영고성쇠 몸 밖의 일 모두 다 내던지고 / 身外榮枯都擺却
책 속의 성현들 가까이 모시고 지내야지 / 卷中賢聖好相於
소라 하든 말이라 하든 마음대로 불러보소 / 風塵一任呼牛馬
죽으나 사나 책벌레나 한번 되어 보려오 / 生死何妨作蠧魚
계자의 육 국 정승 비웃음거리 / 六印由來嗤季子
상여의 천금의 시 부럽지 않소이다 / 千金元不羨相如
공명을 탐내면 창고 속의 쥐와 같고 / 功名自是同倉鼠
장기 바둑 즐기면 목저노(牧猪奴)라 이르리니 / 博奕惟堪屬牧猪
그보단 한가하게 서책을 탐독하다 / 爭似閑人耽簡策
짬이 나면 촌부(村夫)들과 노니는 것이 좋잖겠소 / 更將餘力逐樵漁
조촐한 오피궤 옮겨 가는 처마 그늘 / 烏皮几凈簷陰轉
흰 대사립 기우뚱 성긴 나무 그림자 / 白竹扉斜樹影疎
쓸모없이 크기만 한 박 누가 관심 가져줄까 / 處世誰憐無用瓠
이 몸뚱이 저나무처럼 되기만을 바란다오 / 全身欲學不材樗
보리밥 실컷 먹고 달리 할 일 없으니 / 飽來麥飯無餘事
이제 그저 책장이나 다시 넘겨볼꺼나 / 只有靑編可卷舒
전한(前漢)의 광형(匡衡)이 집이 가난해서 등불을 켤 수 없자 이웃집의 벽에[주-D001] 주정공사(周情孔思) :
주공(周公)의 뜻과 공자(孔子)의 사상이란 말로, 성현의 고상한 정조(情操)를 뜻한다.
[주-D002] 칠정(七政) :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북두칠성은 이른바 선기옥형으로서 칠정을 주관한다.[北斗七星 所謂旋璣玉衡 以齊七政]”고 하였다.
[주-D003] 귀허(歸墟) :
모든 물이 모여든다는 바다 속의 무저곡(无底谷) 이름이다. 《列子 湯問》
[주-D004] 이웃집 …… 하고말고 :
구멍을 뚫어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책을 읽었던 고사가 있다. 《蒙求 上 匡衡鑿壁》
[주-D005] 따비밭 …… 경서(經書) :
한(漢) 나라 예관(兒寬)이 품팔이를 할 적에 늘 경서를 몸에 지니고 밭일을 하다가 휴식할 때면 독송을 했던[時行賃作 帶經而鋤 休息輒讀誦] 고사가 있다. 《漢書 兒寬傳》
[주-D006] 소라 하든 …… 불러 보소 :
세상의 비평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태씨는 자기가 말이 되기도, 소가 되기도 한다.[泰氏 一以己爲馬 一以己爲牛]”는 말이 있다.
[주-D007] 계자(季子) :
전국 시대 때 합종책(合從策)을 성사시켜 6국(國)의 상인(相印)을 찼던 소진(蘇秦)의 자(字)이다.
[주-D008] 상여의 …… 시 :
한 무제(漢武帝) 때 총애를 잃은 진 황후(陳皇后)가 황금 백 근(斤)을 가지고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글을 지어 주도록 간청하여 다시금 총애를 받게 되었다는 ‘천금매부(千金買賦)’의 이야기가 상여의 장문부(長門賦) 서문에 실려 있다.
[주-D009] 목저노(牧猪奴) :
도박꾼의 별칭이다.
[주-D010] 쓸모없이 …… 박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이야기로, 너무나도 뜻이 커서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계곡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주-D011] 저나무 :
고약한 냄새가 나고 옹이가 많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일찍 해침을 당하지 않고 오래도록 수명을 누리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나무 이름이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와 인간세(人間世)에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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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